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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정보화시대의 예술적 담론에서 부분과 전체의 관계

이선영

지금, 한국미술의 현장(171)
이선영 / 미술평론가

정보화시대의 예술적 담론에서 부분과 전체의 관계



인터넷을 기반으로 하는 미디어의 발전으로 쌍방향 소통이 실시간으로 가능하게 된 시대, 이제는 제기된 어떤 사안에 대해 누구나 한마디 할 수 있을 뿐 아니라, SNS 등을 통해서 처음의 텍스트보다 더 길고 심도 있게 의견을 개진할 수 있게 됐다. 여기에는 발전된 IT 기술과 고등교육의 보편화가 한몫한다. 매개적 소통은 거대한 거울의 방에서 무한 반사가 이루어지는 반응의 연속이다. 다만 그것이 진정한 대화인지는 의문이다. 정보의 발신자든 수신자든 사람이 아닌 기계와 마주한 독백에 머물 수 있다는 점이다. 

여러 방향으로 뚫려있는 정보와 지식의 통로는 교육을 비롯한 계몽적 관례를 수정해 나간다. 바로바로 업데이트되는 독자 의견란에는 원래의 기사보다 더 흥미로운 내용도 종종 발견된다. 톡톡 튀는 감성이 담긴 즉발적 반응은 물론이고, 기사 내용에 대한 반론이나 보충이 계속 첨가되어, 사안에 대한 복합적 이해가 가능해진다. 여론조작 등 부정적인 경우도 있지만, 이제는 독자 반응을 볼 수 없는 기사는 중요한 것이 빠져있는 느낌이다. AI 시대에 사라질 수도 있는 위기의 직업군 중에 기자가 끼어 있는 점이 이해가 안 갔는데, 각자가 뉴스원이 되어 직접 말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염두에 둔다면 그리 이상하지도 않다. 개인을 재현해 줄 또 다른 대리인에 대한 필요성이 약화되었다는 것이다. 비평의 위축도 상당 부분 작가 스스로가 작품의 대변인으로 자처할 수 있다는 점과 관련된다.


김범중, Oscillo, 2018, 장지에 연필, 100×20cm. 제공 이선영

그렇지만 그 경우에는 작품과 작가의 말이 일치될 수 있다는 가정이 깔려있다. 그것은 말과 행동이 일치될 수 있다는 가정처럼 불확실하다. 어떤 경우든 정보의 순수한 원천으로서의 이상적 발신자에 대한 믿음은 흔들린다. 그래서 처음부터 다중(多衆)의 경험이나 지식으로 완성되어 가는 콘텐츠도 있다. 집단지성이 발휘되는 것이다. 하지만 어떤 내용에 대한 반론이나 보충은 쉬워도 최초의 정립(定立)은 어렵다는 점에서, 여전히 선후 관계는 남아있다. 담론의 생산보다는 소비가 월등히 많은 현상은 시작의 어려움을 말해준다. 시작의 어려움은 커뮤니케이션을 예술에 근접시킨다. 시작은 어렵고 불완전하지만, 이후를 추동하기 때문에 의미있다. 이러한 정보, 또는 지식의 조건 속에서 근대적 의미의 분과과학 전문가나 총체적 비전을 요구받는 지식인의 위상은 낮아진다. 한 명의 전문가가 가질 수 있는 개별적 정보는 인터넷 검색을 따를 수 없고, 르네상스의 인문학자들처럼 전인적인 교양을 갖춘 지식인은 드물 뿐 아니라, 잘못하면 정치가의 허언처럼 신빙성이 없다. 코로나 여파로 전반적인 불황 가운데 스마트 기기만큼은 날개 돋친 듯 팔린다는 요즘, 90년대부터 본격화한 정보 혁명에 의해 이미 조성된 소통조건의 변화가 가속화되고 있다.




문기전, 청각 정보 수집 및 저장 과정에 관한 드로잉 작업, 2019. 판화지 위에 연필, 63×20cm. 제공 이선영

코로나로 학교에 가지 못하고 카페 같은 장소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을 자주 본다. 일단 노트북이나 태블릿 PC, 스마트폰에 기본으로 검색 창을 켜놓고 시작하는 모습이 눈에 띈다. 그들은 책이나 필기 노트에 의지해 나아가기보다는 수시로 검색하면서 공부/소통/놀이한다. 그들은 백색소음이 깔린 곳이 더 잘 집중된다고 하면서도, 교수님 얼굴이 나오는 원격 강의에서만큼은 그리 집중하지 못하는 이중적 모습도 보인다. 요즘처럼 반강제로 화상 소통이 많아진 상황은 실제의 위상을 깨닫게 한다. 예술작품이나 그에 대한 담론이 미디어를 통해 소통될 때 어떤 차원이 첨삭되는지 처음부터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그것은 작품이나 담론을 삼키기 쉽게 가공하는 문제가 아니라, 정보 수용자가 각자 그다음의 과정을 추동할 수 있는 효과적인 인터페이스의 구축, 즉 끌림을 창조하는 문제다. 이를 위해서는 부분과 전체 사이의 이상적인 관계가 설정돼야 한다. 어디를 향하든 예술작품은 최초의 출발, 그리고 갈림길에서의 직관을 제시하는 단편으로 작동한다. 이 시대는 어느 분야도 전체를 담보할 수 없다. 예술이 묻고(또는 현실의 징후를 가시화하고) 정치가 조율하며 과학이 대답하는 것이 이상적인 분업이다.




- 이선영(1965- ) 조선일보 신춘문예 미술평론 부문 등단(1994). 웹진 『미술과담론』 편집위원(1996-2006), 『미술평단』 편집장(2003-2005) 역임. 제1회 정관 김복진이론상(2006), 한국 미술평론가 협회상(이론부문)(2009), AICA Prizes for Young Critics(2014)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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