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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5)내 그림을 경매에서 내가 사들인 사연

노정란

얼마 전 미술평론가이며 미학자인 후배에게서 연락이 왔다. “선생님 그림이 온라인 옥션에 나왔는데, 너무 싸게 나왔어요. 크고 작품도 좋은데요.” 나는 무슨 내용인지 몰라 그 회사에 전화를 하니 현재 미리보기(Preview)를 위해 옥션 회사 갤러리에 걸려 있다고 했다. 가 보니 내 그림이 판화작품들 사이에 걸려있고, 도록에 그림이미지와 시작가, 추정가 등이 인쇄되어 있었다. 한지전지에 아크릴로 그린 1990년작. 나의 서명이 한글과 영문으로 되어있었다. 어떻게 이 가격으로 시작가를 정했을까? 치욕스러웠다.


마음을 가다듬고 화실로 와서, 그 당시 화랑과의 계약기록들을 모두 찾아보았다. 미국 거주 당시 서울의 어떤 화랑에서 초대를 받아 전시했던 작품이었고, 전시 후 그 화랑에 위탁판매로 의뢰해 놓았던 그림 중의 하나였다. 몇 년 후에 그 화랑은 다른 분야로 사업을 무리하게 확장하여 부도가 났고, 채권자 들이 화랑창고에 와서 작품들을 다 가지고 갔다고 전해 들었었다. 그 와중에 내가 맡겨 놓았던 사라진 10여 점의 그림 중의 하나가 경매에 나왔던 것이다. 1990년 전시 당시 화랑과의 계약서를 보니, 매매가(소매가)가 $2500로 기록되어 있었다. 그런데 27년이 지난 2018년 미술시장에 시작가 100만 원 추정가 최대 200만 원으로 나와 있었다. 판화가 아닌 유일한 1점의 회화이다. 한국에서 종이그림은 캔버스그림보다 70~80% 낮게 거래된다고 하더라도 그 시작가는 도저히 납득이 안되었다.


지난 50년 가까운 세월 동안 꾸준히 28회의 개인전 (대여전이 아닌 미술관 기획전 내지 화랑 초대전)과 60여 차례의 국내외 단체전에 초대되었고, 미술관을 포함한 공공기관 16곳, 40여 곳의 국내외 기업체, 300여 명의 미국과 한국의 개인 소장자가 내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공공미술품설치와 미술관 소장은 작품평가와 동시에 가격평가 심의를 통과해야 소장이 가능했다. 작품이 팔리는 해든 안 팔리는 해든 2년에 한 차례 10% 정도의 가격을 화랑과 의논하여 상향 조정해 왔다. 나의 그림들이 꾸준히 이 사회에서 인정되어 온 것을 증명하는 내용이다.


나는 주위의 몇 분께 화랑, 평론가, 화가, 교수, 미술재단 관계자, 미술자료수집 관계자, 소장자 등 이번 경매사태에 대한 조언을 구했다. 반응은 다양했다.


“요즈음 옥션 회사만 돈 벌어요.”


“화랑의 가격을 믿지 않아서 손님들이 화랑에 안 나타나요.”


“경매회사가 상장되어 있어서, 낙찰율을 높이느라고 시작가를 무조건 싸게 내놓는 경우가 많아요.”


“옥션 회사가 진행하는 미술강좌에 강의하러 가면 30대들만 주로 앉아있고 온라인에서 싸게만 구입하고 싶어해요.”


“화랑에는 전시기획자(Curator)가 있듯이 경매회사에는 스페셜리스트(Specialist)와 가격평가팀이 있어서 의뢰인이 내놓는 작품들의 가격을 그들이 결정해요.”


“옥션 회사의 직원 중에 나의 제자들이 졸업하자마자 취직되는 경우가 있는데, 그들이 가격들을 어떻게 알겠어요.”


“의뢰인의 작품을 그 동안 취급했던 화랑에 전화 한 통 없어요. 참고로 도움이 될 텐데요.”


나는 경매회사 담당직원에게 전화를 해서, 내가 그 작가임을 밝히고, 시작가를 어떤 기준으로 결정했는지를 문의했다.


“선생님의 작품이 우리회사에 처음 나와서 기록기준이 없어요. 그리고 종이작품이라 네 모서리가 조금 파손된 것 같고. 액자도 오래 되었어요.” 나는 한지는 한 장 한 장 손으로 만든 종이라 네 모서리가 반듯하지 않다고 설명하니, 사진 몇 장을 보내왔다. 그 상태는 원래 한지가 만들어진 상태이고 문제 삼을 소지가 아니었다. 그것이 가격을 낮게 책정하는 이유 중의 하나라면 도록에 그 내용을 밝혔어야 했다. 나는 경매 마감시간까지 많은 생각을 하였다. 그 그림은 내가 죽자 살자 왕성하게 작업했던 42살때의 그림으로 좋은 그림이었다. 그 가격이 너무 아까웠다. 만일 유찰되거나 낮은 가격으로 낙찰되면 그 기록이 남고, 경매회사의 다음 경매에 참고자료가 될 것이다. 나는 경매회사에 나온 사실을 발견한 그 후배에게 응찰해달라고 부탁했고, 지금 내 화실에 그 그림이 와 있고, 오가며 들여다 본다.


내 그림들을 전시나 소장가들을 찾아서 화실 밖으로 나갈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는 화랑, 공공조형물회사, 미술관 등에 항상 고마움을 느낀다. 요즈음의 경매회사도 그 중 하나일 것이다. 그들은 미술시장에서 꼭 필요한 역할을 하는 분들이다. 어떻게 보면 작가의 작품들을 이 사회에 존재시켜주고 살려 내주시는 분들이다. 왜냐하면 작품들을 유통시키고(Marketing), 금전적인 가치를 만들어주는 (Promotion) 분들이니까. 물론 작가들의 작품이 있고 그 수준과 양에서 미술사업이 시작되지만 수 많은 작가들이 화실에 작품들이 쌓여있는데도 빛을 보지 못한 채 저 세상 사람이 되고 있지 않은가. 그러나 요즈음 작품에만 집중해야 하는 많은 좋은 작가들이 상처받고 혹시나 본인의 작품이 엉뚱한 가격으로 경매에 출현될까 가슴앓이를 하고 있다고 한다.


‘작품경매 시작가 형성과정’에 문제가 있는 것 같다. 작품의뢰인들이 원하는 가격이 있지만, 대부분 경매회사에 가격을 의뢰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경매회사의 스페셜리스트 내지 가격평가팀 들이 아무리 업무량이 많아도, 그 작가의 작품을 취급하는 화랑에 문의 하면 요즈음 그 작가의 현재가격이 어느 정도라는 것은 대강 알아낼 수 있을 것이다. 그 작품의 작가에게 직접 문의 하면 검증 안된 엉뚱한 가격을 제시할 수 있으므로.


선진국의 권위 있는 경매회사에서도 대부분 화랑소매가격의 70%정도나 필요한 경우 60%에서 시작가를 정한다고 한다. 그 참고하는 과정 없이 가격평가팀이 이름이 익숙한 작가거나 나는 믿고 싶지 않지만 혹시라도 경매회사와 관련 있는 화랑에서 전시하는 작가들의 작품들만 시작가를 유리하게 책정한다면 문제가 클 것이다.


한 작가의 작품가격이 화랑가격과 경매시장가격으로 분리되어 이중으로 거래된다면, 어느 누가 미술시장을 믿겠는가? 당분간 이 과도기 과정이 지나 작품가격이 언젠가는 안정될 것으로 기대한다. 그러나 한 나라 한 미술계의 작가, 화랑, 경매회사가 함께 이루는 미술시장이 아닌가.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작품경매 시작가를,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신중하게 책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유시장경제체재라고 하지만 사업에도 상도가 있고 어떤 기준의 윤리는 있어야 한다고 본다. 한 작가를 죽일 수도 있는 경우가 생길 수 있으니까. 경매 시작가를 20%가 아니라 60%를 잡더라도 경매회사의 수수료는 더 올라갈 것이지 않은가?


나는 계속 작품을 하고 발표를 할 것이다. 이 길만이 지난 40여년 간 한 길을 걸어온 나의 삶일 것이고, 소장처나 소장가, 또 내 작품을 거래해주는 화상(Art dealer)들에게 보답하는 길일 것이다. 이번 경매사연은 나를 몹시 불편하고 괴롭게 만든다.



노정란(1948- ) 이화여대 석사, 롱비치캘리포니아주립대 미술석사. 28회 개인전,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수원시립미술관, 선재미술관 등 작품 소장. 홍익대 미술대학원 교수 역임. 재미 한미미술재단 창시자 겸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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