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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한 ‘임기제 큐레이터’의 탄생

류소영


『The New Curator』, Natasha HOARE 지음, LaurenceKing 


2005년, 나는 유학을 목적으로 파리로 건너갔다. 두 번의 미술 관련 석사를 마치고 프랑스계 관련 업종에서 다년간 근무하며 남부럽지 않은 네트워크와 국제적 실무경험을 쌓았지만, 공립미술관에서 일하고 싶었던 내게 프랑스에서의 공립미술관 입성은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것이 프랑스는 공립미술관에서 근무하기 위해 준비학교부터 정해진 학과와 전문학교(INP) 학위, 그리고 국가고시에 이르기까지 그 과정을 다 거쳐도 공립미술관의 큐레이터가 된다는 보장이 없었다.

2012년, 우연히 한국의 임기제 큐레이터 제도를 알게 되었고 파리의 직장을 다니면서 응시한 지방의 공립미술관 경력직 큐레이터 자리에 운 좋게 임용이 되었다. 주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8년의 파리 생활을 하루아침에 정리한 후 한국으로 돌아왔다. 공립미술관의 큐레이터가 된 것이다. 다시 말해, 공립미술관의 ‘임기제 큐레이터’가 된 것이다. 
당시 국내 사정에 어두웠던 나는 ‘임기제’라는 것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공립미술관의 ‘임기제’ 큐레이터는 곧 임기제 공무원이었고, 임기가 제한되지만, 경력과 능력을 인정해 연봉 측정 기준과 성과연봉제도와 같은 일반직 학예연구사들과는 다른 보수제도 등으로 그 전문성을 인정해 주는 직급으로 알려져 있었기에 오히려 만족스러운 부분도 있었다.
잠시 임기제 공무원에 대해 알아보면 임기제 공무원은 전문지식이나 전문기술 등이 요구되는 업무를 담당하도록 일정 기간 임기를 정하여 일반직으로 임용하는 공무원을 말한다. 임기제 공무원이 종전의 계약직과 다른 점은 과거의 계약직은 보수 등급으로 구분될 뿐 명확한 호칭이 없었고, 계약 기간 중에서도 신분보장이 되지 않아 업무 수행 능력이 부족할 경우 언제라도 계약을 해지할 수 있었다. 반면에 임기제 공무원이 되면 사무관·주사 등과 같은 일반직과 동일한 직급명칭이 부여되고, 임기 동안 법이 정한 사유에 해당되지 아니하는 한 면직되지 않는 등 신분이 보장된다’라고 행정학용어 사전에 명시되어 있다. 그리고 5년의 임기가 끝나도 재임용이 가능하며 실제로 많은 임기제 공무원들이 재임용을 통해 정년을 보장받기도 한다.
하지만 ‘임기제 큐레이터’의 실상은 사전에 정의된 것과는 차이가 있다. 전문성을 인정해 주나 그렇지 않아도 임용의 가능성은 열려있고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승진은 없다. 단, 성과평가를 하나 그것 또한 다양한 주관적 의견들이 개입된다. 성과와 상관없이 때마다, 고용의 불안에 시달리며 5년 만기 퇴사 후에 재임용 가능성은 보장사항이 아니다. 그렇게 불합리하게 또는 정당한 근거 없이 전문성을 가진 혹은 가능성을 가진 많은 임기제 큐레이터들이 저평가 되고 지극히 개인적인 사유나 정치적 상황의 희생양이 되어왔다. 그리고 대다수의 큐레이터가 여전히 그런 환경에 노출되어 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난 한국에서 임기제 큐레이터로 살아남기 위해 많은 선택적 방법들이 존재한다는 걸 깨달았다. 정치에 뛰어나거나, 화술이 뛰어나거나 아니면 실력이 뛰어나면 된다. 물론 후자는 인정받기 쉽지 않지만 적어도 혼자만의 자부심은 허락된다.

2017년, 새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공공부문 계약직의 정규직 전환, 공무원 정규직 추가 임용에 관심이 몰리고 있다. 이런 정책에 힘입어 최근 각 지자체의 임기제 공무원들이 제도 개선(임기보장, 재임용절차 간소, 연봉 측정 기준 완화 등)을 요구하며 한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그것 또한 우리처럼 허울 좋은 ‘임기제 큐레이터’는 해당 사항이 없는 듯하다. 그렇다면, 계약직의 사각지대, 임기제의 사각지대에 놓인 우리는 자생하는 방법을 스스로 찾아야 할 것이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임기제 공무원제도만이라도 그 취지에 맞게 양심적으로 운영되길 바랄 뿐이다.


- 류소영(1981- ) 파리1대학 공간장소전시네트워크 석사, 동대학 디자인과 미디어 석사, 파리8대학 현대미술이론 석사 수료. Galerie Pierre-Alain Chailler(Paris), 대구미술관 근무. 현 부산현대미술관 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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