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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7)한국예술계에 엘리트주의가 필요하다

홍가이

한국인의 DNA에는 ‘사대주의 성향’이 새겨져 있다? 미국에서 동아시아 역사연구에 자주 인용되는『 동양 문화사(A History ofEast Asian Civilization)』(1960)는 하버드대 교수 3인이 공저한 책으로 대부분의 분량에서 중국과 일본을, 2개의 짧은 챕터에서 한국을 다룬다. 이 챕터의 마지막에서는 중국에서 유래된 주자학이 한국에서는 광신화 되었음을 지적한다. 조선 600년간 유지된 소중화사상(小中華思想)은 어쩌면 당나라로 유학했던 최치원이 활동하던 통일신라 때부터 이어졌는지도 모르겠다. 현대에도 일부에서는 강성국가로의 조기유학에 목을 메고 있는 실정이다.

동양 철학자인 서훈 선생의 저서『 천부경으로 성리학을 시비하다』에 의하면, 최치원은 젊어서는 친중화(당시 친당)였지만, 신라에 귀국 후 자주적인 사상과 그 계보학적 발전에 대해 연구를 하였다고 한다. 오늘날의 유학인들은 유학 국가에 대한 사대주의에 물든 것만이 아니라, 한국에 귀국해서는 영미권 문화를 한국에 이식하는 전도사이며 교과서적으로 편식한 학문을 이식하는 거간꾼 노릇을 한다. 엘리트를 자처한 이들이 대학교수니 문화사업가로, 정부의 눈먼 돈을 싹쓸이하기에 여념이 없는 경우 가 많다.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면 영미권에 조기 유학을 했다면서도 실상 그 곳의 가장 엘리트한 학교에서 치열하게 경쟁하면서 공부한 흔적이 없다. 대부분 이·삼류 고교, 대학에서 졸업장을 받고, 박사학위도 가장 좁은 기술적인 영역에 관한 논문으로 겨우 받고 돌아오는 것이다. 때문에 그들에겐 자신들이 유학한 국가·사회·학문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을 기를만한 교육과 지적 훈련이 있었을 수가 없다. 그러니 사대주의자가 되어 돌아오는 수밖에….

예술 분야도 다르지 않다. 우선 한국의 전위나 현대 예술을 한다는 대다수 작가가 영미권에서 학위를 받았고, 또 수많은 이들이 프랑스, 독일, 일본 등에서 예술가로서 국제적 위상을 인정받고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며 국내 신문에서 크게 떠든다. 내용을 들여다보면, 서구 중심부의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전위”라는 이름의 “예술을 하기 게임”의 법칙을 충실하게 따라 그 게임을 잘 하고 있다는 평판이다. 한국 사람들은 새로운 게임과 함께 그 게임의 법칙을 고안해내지는 못하지만, 누가 만들어준 게임은 잘 한다. 김기춘이나 우병우 등은 서울법대를 대학이 아니라 고시학원처럼 다니면서 마치 전쟁하듯이 머리 싸매고 죽기 살기로 육법전서를 외워 고시 합격하고 외골수로 권력을 추구하였다. 그들은 고시는 합격했지만 제대로 된 교육도 교양도 없는 ‘법 기술자’로서 극히 한정된 시야로 법을 해석하고 집행할 능력뿐인데, 그런 작자들이 엘리트로 받아들여지는 현실이 어처구니없지 않은가. 예술 분야에서도 한국의 수많은 예술가는 기술자로서의 예술가에 불과하다. 한국의 법조인, 예술가나 과학자들처럼 철학과 학문적, 법철학적, 예술철학적 비전이나 교양도 세련미도 없는 경우가 드물 것이다. 옛날 2차 대전 때 독일에서는 고등학교(Gymnasium)에서 훌륭한 기초교양의 교육을 해 대학을 안 다녔어도 토마스 만이나 헤르만 헤세는 영미권의 일류 대학 출신들보다 더 학식있고 사려깊은 책을 쓰지 않았던가? 솔직하게 현대음악의 철학을 논한 소설이 토마스 만의『 파우스트 박사』(1947) 만 한 저서가 있나?

글로벌 예술의 역사적 상황을 냉철하게 거시적(Macro-level)으로 그리고 비판적으로 보고, 한국의 예술가들이 갈 길을 제대로 짚어주는 그런 예술계의 대표인(Statesman)은 한국사회에 존재나 하는 것인가? 바뀌는 정권마다 한국의 문화선진국 도입을 위해 국가 예산을 팍팍 쓰겠다고 하면서, 그런 예산집행의 책임을 질 자리에 임명되는 인사들의 면면은 또 어떠한가? 무슨 딴따라 출신에, 방송유명인 등 얼굴 팔린 사람들일 뿐이다. 문화는 무식한 사람들도 잘 할 수 있다는 말인가? 문화예술이야말로 기술자로서는 안 된다. 엘리트라는 말이 나쁜 것이 아니다. 명문 학교는 어느 국가 사회도 필요하다. 좋은 인재를 발굴하여 좋은 교육으로 훌륭한 지성인이요 문화인이요 전문과학자요 예술가로 만들어야 세계 무대에서 국제적인 경쟁력이 있을 것이다.

무조건적 엘리티시즘을 배격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본다. 사회주의나 공산주의 사회에서도 지성적인 엘리트, 과학기술의 엘리트는 명문 대학을 만들어서 잘 훈련시킨다. 명문 학교라는 것이 서민 정서와 갈등할 이유가 없다. 진정한 명문대학에서는 순전히 능력과 가능성의 두 가지만 본다. 전 세계에 모인 비슷한 수준의 학생들과 치열하게 경쟁하면서 천부적인 재능을 갈고닦게 된다. 보석도 닦아야 빛이 난다.


- 홍가이(1948- ) 미시간대 수학·물리학·철학 박사, 이탈리아 우르비노대 국제기호학과 언어학연구소 학위 취득, MIT 철학박사. 이화여대, 와그너대, 프린스턴대, 케임브리지대 처칠칼리지, MIT 및 한국외국어대 교수 역임.『 현대미술문화비평』(미진사) 및 『Nostoi: Children of Prometheus』(Space Publication, 1988) 등 다수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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