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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6)시간강사가 사라지는 한국의 미술대학

정연심

지난 5월 26일, 홍콩 페로탱갤러리에서 이승조 회고전시가 개최되었다. 같은 날 홍콩 아시아소사이어티에서는 아시아의 아방가르드 심포지엄이 개최되었다. 나는 여기서 발표한 글을 다시 정리하기 위해 오리진의 창립멤버였던 서승원 선생님께 인터뷰를 요청했다. 선생님은 60년대 당시 시간강사로 홍익대에 나오셨던 최순우, 김수근, 김환기 등 다양한 분들이 당시 젊은 작가들에게 미친 영향을 언급했다. 일부는 전임교수로서 홍익대에서 가르치기도 했지만 현장에서 일하는 수많은 시간강사들이 청년 작가들에게 새로운 에너지를 불어넣었다고 했다. 당시도 시간강사들은 힘들었겠지만 요즘 시간강사들은 강의조차 구하기 어렵다. 왜일까.

2017년 6월 21일 자『 교수신문』에 흥미로운 칼럼이 실렸다. 나는 이 신문에서 부경대 남송우 교수가 쓴「시간강사문제, 어떻게 할것인가」라는 제목의 논설기사를 읽고 많은 부분 공감했었다. 작년부터 시간강사들의 처우 문제 등이 언론에서 산발적으로 다뤄지고 있다. 2003년 서울대 시간강사가 자살을 하면서 촉발된 시간강사들의 처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치권에서는 ‘시간강사법’을 제정했지만 지난 4년간 현장의 반발로 유예되었다. 정작 시간강사들은 이 법을 반기지 않는다. 적어도 내가 만난 미술 분야 시간강사들은 이 법에 반대했다. 정치권에서 이 법을 제정하면서 시간강사 및 대학 측과 함께 공론장을 마련해 정책연구를 진행하며 강사법 제정에 따른 현실적 어려움을 다각적으로 고민한 것 같지도 않다. 강사들의 처우를 개선하기 위해서 한 강사당 9시간을 강의하게 하고 4대 건강 보험 혜택을 주려는 취지는 좋지만, 이렇게 되면 다수의 시간강사가 집단해고 될 수밖에 없다.

미술대학의 경우에도 전문가가 가르쳐야 할 특별한 전공 영역이 있다. 실기와 이론도 마찬가지이다. 미디어아트 과목은 미디어 아트를 가르칠 수 있는 전문가에게 강의를 맡겨야 하고, 사진비평은 사진비평을 공부한 사람에게 맡겨야 학생들도 양질의 교육을 받을 수 있다. 미술대학이 처한 이러한 특수성을 감안하면 어떤 전문가에게는 한 과목만 배정할 수밖에 없는 현실적인 어려움 도 있다. 한 사람이 모든 과목을 두루두루 잘 가르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전문성을 내세운 대학원 교육은 다양한 자질과 능력을 가진 시간강사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현재 강사법은 내년으로 유예되었지만 강사법이 통과된다면 가뜩이나 어려운 미술현장에 실기와 이론을 공부한 작가들이나 박사학위 소지자들이 대학에서 강의할 기회도 얻기 어려울 것이다. 또한 시간강사법이 통과된다면 일부 강사에게 수업을 몰아주어야 하니 많은 강사가 여러 대학에서 가르칠 기회를 박탈당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실기를 가르치는 대학도 어려울 수밖에 없고 미대학생 또한 그 피해를 겪을 수밖에 없다. 물론 가장 큰 피해를 보는 이들은 시간강사들이다. 정치권에서도 시간강사 문제는 다른 현안에 밀려서 아직 다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박사학위를 받은 많은 연구자들은 몇 년 동안은 시간강사로서 여러 학교에서 강의를 할 수밖에 없다. 나도 맨해튼에서 새벽 기차를 타고 뉴저지까지 가서 강의하기도 했고, 여러 학교에서 강의를 하면서 각기 다른 학생들을 만나기도 했다. 실기 강사들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강사 자리를 구하기가 이렇게 어려워진다면 젊은 미술학도들이 더욱 생활하기 어려울 것이다. 시간강사들을 더욱 어렵게 만드는 현재의 강사법은 폐기되고 다른 방식으로 시간강사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장기적 정책 연구도 필요하다. 많은 대학들은 내년에 시행될 강사법이 가져올 혼란을 줄이기 위해, 올가을에는 강사를 줄여나가는 정책을 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문제가 있다고 해서 강제적으로 법을 통해 해결하고자 한다면, 그것은 실패를 예고한 법이다. 또한 미술현장에서 일하는 많은 미술인이 시간강사로서 대학에서 가르치는 현 상황에서 내년에 시행될 ‘시간강사법’에 대한 논의가 미술계 내에서 거의 없다는 점도 놀랍다.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 309동1201호 저, 은행나무, 2015

대학 시간강사가 재직 중에 커뮤니티 ‘오늘의 유머’와 
인터넷매체 ‘슬로우뉴스’에 연재한 대학원생과 시간강사의 삶 
우리나라 대학사회의 맨 얼굴을 고스란히 담은 보고서이다.


- 정연심(1969- ) 뉴욕대 예술행정 석사, 미술사학과(Institute of Fine Arts, NYU) 박사. 뉴욕주립대 FIT(SUNY/FIT) 미술사학과 조교수 역임. 현재 홍익대 예술학과 교수, 광주비엔날레재단 이사.『 현대공간과 설치미술』,『 세상을 바꾼 미술』,『 비평가 이일 앤솔로지』 외 다수 지음, 현재『 한국의 설치미술』 집필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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