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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4)상식과 통념, 그리고 소통

최승현

필자는 단언컨대 혈통 있는 진보주의자도 아니고, 내 손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다는 잔 다르크의 후예도 들으면 누구나 알고 있을 만큼 손에 꼽히는 용자의 후손도 아니다. 필자는 다만 ‘상식’이 ‘통념’이 되는 세상에서 살고 싶을 뿐이고, 그것을 위해 미약하나마 작은 보탬이라도 되어보는 것이 그저 보람이라고 여기며 살아왔다. 그러나 요즘 필자는, 어떤 행위나 판단에 있어 ‘상식’이라고 여기는 범주가 사람마다 어지간히도 다를 수 있다는 사실을 피부 속 겹겹이 느끼고 있다. 적어도 필자의 생각에 따르면 이러한 혼란은 대체로 본인이 속해 있는 신분, 세대, 문화 등에 의해 특징지어지는 다양한 부분 사회의 통념을 상식이라고 믿어버리는 것에서부터 빚어지는 것 같다.

현재 필자가 일하고 있는 곳은 개관한 지 채 2년이 되지 않은 신생 아트센터다. 그리고 지금까지 가장 큰 에너지와 노력을 쏟아 해오고 있는 작업은 모기업의 상식과 통념에 대한 분석과 고찰이며, 이는 내가 지닌 것과 사뭇 다르다. ‘고품격’이라는 표현을 예로 들어보자. 자고로 품격이란 그 근본과 내용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필자는 교육받으며 성장했고, 또 그렇게 믿고 있다. 따라서 그 대상이 무엇이 되었든 본질에 대한 성찰과 비전이 담겨있어야 품위와 격이 생성되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문화예술 사업이 아닌 사교육 사업으로 성공 가도를 달려왔던 모기업의 입장에서는 유명한 해외 건축가가 설계한 건물이라는 점과 그 시설에 대한 철저한 관리가 기관 품격의 핵심이라 여기고 있다. 이는 결국 콘텐츠의 질과 가치, 기관의 운영 방향 및 정체성을 강조하는 필자의 입장과 콘텐츠의 외형과 건축물, 전문적 포장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기관주의 입장 사이에 만만치 않은 벽이 존재하고 있음을 말한다. 어느 한쪽이 절대적으로 정당하거나 옳다고 말할 수 없으나, 서로 답답한 것은 마찬가지일 것이다. 필자가 ‘기업가들이기 때문에’라는 전제로 상대를 이해하려고 애쓰는 빈도 만큼이나 자주 ‘예술계 사람들’이라는 그들의 거친 분류 방식에 필자 역시 쉽게 걸려들고 만다. 양측이 모두 스스로의 입장이 상식에 의한 것이며, 사회적 통념에 부합하는 것이라 믿고 있는데, 도대체 무엇이 이러한 상황을 만드는 것일까.

한국 사회는 근래에 무조건적인 ‘소통’을 다소 폭력적으로 강요해 오고 있다. ‘소통’이 무엇인지에 대한 근원적 질문을 던지는 사람은 매우 적은 데 비해, 많은 사람이 ‘소통’을 강조하며, 대부분 기관들은 ‘소통’을 품위 유지를 위한 필수 덕목 중 하나로 제시한다. 이는 곧 ‘소통’이 시대성을 지닌 키워드라는 사실을 보여줌과 동시에, 우리 사회에서 가장 결핍된 요소 중 하나임을 반증한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사랑을 받아본 적 없는 사람에게는 사랑을 베푸는 것도 어렵다고 했던가. 우리는 사실 역사적으로 제대로 된 ‘소통’을 경험해 본 적이 거의 없다. 소수의 특정 주장을 다수에게, 혹은 피권력자의 요구사항을 권력자에게 관철시키는 일을 소통이라고 착각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따라서 어떤 방식으로 접근해야 하는지, 또 무엇을 위한 것인지 알지 못한 채, 우습게도 ‘소통’을 ‘성취’의 대상으로 삼고 공격적으로 대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구심이 든다. 현재 우리가 일상에서 쉽게 접하게 되는 ‘소통’은 주로 그것을 성취하고자 하는 주체의 ‘일방적’ 성향을 띠고 있다. 스스로의 기준에서 ‘좋은 것’ 혹은 ‘합당한 것’을 우선은 던져 놓고, 그 반응을 지켜보거나 본인이 의도한 방향으로 끌어다 붙이는 것이 대부분이다. 심지어 그 반응의 데이터를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데 밑거름으로 쓰기보다는, 자신이 던져 놓은 것에 대한 이해도가 있는 무리와 없는 무리를 구분하는 기준으로 삼고, 결국에는 또 다른 편 가르기의 기반으로 여겨버리기도 한다. 즉, 긍정적 반응을 보이는 대상은 품위나 인격이 있는 집단으로, 그렇지 못한 대상은 수준에 못 미치는 집단으로 구분 지어 버리는 것이다. ‘소통’은 계층과 분류의 쌍방향 벽 허물기로부터 시작되어야 마땅한데, 일방적인 보여주기 방식으로 ‘해결’하려 하다 보니, 결국은 또 다른 계층과 분류를 만들어 내고, 기득권자들의 대중에 대한 배려와 선의의 코스프레로 이용되고 마는 것이다.

요컨대, 상식과 통념에 대한 왜곡과 변질은 소통의 실패에 기인한다. 그리고 소통의 실패는 ‘소통’에 대한 왜곡되고 변질된 상식과 통념에서 온다. 그렇다면, 이미 왜곡되고 변질된 상식과 통념에 의해 불합리한 소통을 시도하고 있는 우리가, 또 다른 우리와의 성공적인 소통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예술의 힘을 믿는 ‘우리’의 이 짧은 생에서.


- 최승현(1976- ) 숙명여대 의류학과·독어독문학과 졸업, 동대학원 미술사학 석사, 독일 라이프치히대 미술사학·일본학 수학. 2010 부산비엔날레 전시팀장, 국립현대미술관 고양레지던시 매니저 역임. 현 JCC아트센터 책임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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