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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1)구술사의 매력, 숨은 기록 찾기

윤혜준

     
 

아방가르드양화연구소, 맨 뒷줄 오른쪽에서 네 번째 김병기, 앞 줄 왼쪽 두 번째 김환기, 1935~1937년경

권옥연

(1923~2011)

송혜수

(1913~2005)

1938년 동경학생예술좌

유치진 각색의 춘향전

백영수

(1922~)

유영국

(1916~2002)

1

1936

동경학생예술좌 에서 장식을 맡았던 김병기

김병기(1916~)

20041123일 내수동 작업실에서

촬영 : 김철효

김종하

(1918~2011)

이대원

(1921~2005)

創作2, 1936

표지 김병기

斷層3, 1938

표지 김병기

이유태

(1916~1999)

장우성

(1912~2005)

1939년 동경학생예술좌 축지소극장 6주년기념공연을 앞두고

 

1936년 동경학생예술좌 제1회 공연을 마치고, 오른쪽 끝 김병기 



2016년 12월 원고 청탁을 받고 고민하던 중 삼성미술관리움에서 이구열 선생님을 오래간만에 뵐 기회가 있었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엔 1998년 11월 4만 5,000여 건의 방대한 선생님의 기증자료를 끌어안고 지냈던 안국동 한국미술기록보존소에서의 2년여 시간이 자연스레 떠올랐다. Dewey Decimal Classification, Reference code, Metadate, 비도서와 관련된 지침 도출, 게다가 입력방법 문제까지, 미술사와 문헌정보 사이에 공중부양 상태로 지냈던 그 시절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시간이 즐거웠던 이유는 두 가지였다.

하나,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던 귀한 우리 근대미술 자료들을 보는 즐거움
둘, 일제강점기, 해방공간, 전쟁을 몸으로 이겨낸 작가들의 살아있는 이야기들을 듣는 즐거움.

이구열 선생님의 자료가 어느 정도 정리되고 체계가 잡히자 2000년 초 당시 자료실 실장이었던 김철효 선생님은 본격적인 ‘한국근대미술 구술채록’을 제시하였다. 1998년 여름부터 원로작가 인터뷰를 조금씩 시도한 터라 ‘구술채록’ 방법론의 가능성에 대한 확신 하에 단순히 작가를 만나는 것에 그친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주제를 가지고 접근하자는 제의였다. 우리는 흔쾌히 받아들였고 일제강점기 미술교육을 받았던 작가들, 동경미술학교 출신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조명을 받지 못했던 제국(帝國)미술학교 출신들에 대한 기록물 수집과 좌담회를 우리의 첫 프로젝트로 정했다. 2000년 5월 24일 한국미술기록보존소 첫 좌담회 참가자는 권옥연, 김종하, 김형구, 송혜수, 이구열, 이충근, 홍종명이었고 이세득, 황염수는 개별 구술하였다. 이 소식이 월간미술에 실리고 어느 날 고운 할머니 한 분(이산옥)이 찾아오셨다. 여자미술학교 출신이라던 그분은 1930년대에 동경에서 함께 공부했던 옛 동료들의 소식이 너무 반가워 오신 것이다. 이미 예정되어 있었던 것처럼 우린 자연스럽게 여자미술학교 출신들을 구술채록하였고 나아가 일본 무사시노미술대, 여자미술대와 교류하며 한국 유학생 기록들을 기증받았다. 이 모든 일이 2000-05년 사이에 이루어졌고 김병기(1916- ) 선생님도 같은 시기 18번의 구술채록을 하였다.

이구열 선생님을 통해 활자 기록들을 보았다면 김병기 선생님을 통해서는 살아있는 기록을 들었다 하겠다. 제국미술학교 좌담회나 작가들의 개별 구술채록에서 들을 수 없었던, 그야말로 미술은 물론 음악, 문학, 연극 등 1930년대 동경에서 활동했던 문화예술인들을 한눈에 보는 듯 생생했다. 그 중 동경학생예술좌 이야기를 듣고 김철효 선생님과 아단문고를 찾아갔다. 작가의 구술이 사실인지 확인하고자 하는 의도보다는 당시 유학생들이 만든 잡지에서 관련 기록을 찾고픈 마음에서였고 『막(幕)』 1호(1936)에 축지소극장 무대에 올린 유치진의 < 소>, 주영섭의 <벌판>, 유진 오닐의 <지평선> 공연 사진이 온전히 실려 있었다. 그리고 스태프로 참여한 김병기의 기록도 남아있었다. 그렇다면 이 사진 속 어딘가에 선생님이 있단 말인데 20살의 김병기는 어떤 모습일까? 연기자들과 스태프들의 기념사진을 선생님께 보여드리자 

“야! 이런 데 내가 나올까 봐 겁이 나요. 머리가 굳어서(뻣뻣해서) 넘어가지 않아요. 그래서 에! 모르겠다(하고) 내렸었어. 그거 나올까 봐 겁이 난다고. (웃음) 이렇게 자른… 사진이. 무대 제일 끝에 어디 있을 거라구”,

“그 당시 후지타 츠쿠지[후지타 쓰구하루(藤田嗣治)] 단발머리처럼 오카빠(おかっぱ)를 했어”라고 이야기하셨다.

바로 그 머리를 하고 수줍게 맨 끝에 서 있는 앳된 소년을 발견했다. 아방가르드양화연구소와 문화학원에 다닐 시절이었고, 유방 김찬영의 아들임이 확실했다.
김병기 선생님을 생각하니 또 다른 이야기들이 생각난다, 할아버지 소싯적 이야기들이...


- 윤혜준(1966- ) 성신여대 대학원 미술사학과 석사, 前 삼성미술관 한국미술기록보존소 근무,『한국미술기록보존소 자료집』1-6호,『한국미술기록보존소 구술녹취문집』1-44호(김병기, 권옥연, 김창렬, 권영우 외) 기획·편집, 예술자료원「김천두」,「심죽자」,「박돈」,「손장섭」구술채록연구 외. 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예술자료원 구술채록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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