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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8)우리가 모르는 우리와 #미술계_내_폭력

강수미


미술계 내 성폭력 아카이브 트위터 계정


미술계의 남자들에게 성폭력을 경험했다는 여자들의 고발이 SNS를 타고 쏟아져 나왔다. 대통령을 위시해 일명 ‘비선 실세들’이 대한민국 국정을 농단한 사상 초유의 국기 문란사태가 온 나라를 뒤흔들고 있다. 미국 대선에서는 결국 도널드 트럼프가 승리했다. 누구도 진짜 일어나리라 믿지 않았던 일들이 지뢰처럼 마구잡이로 터지며 우리의 정신세계를 괴롭히고 모든 일상을 붕괴시키고 있다. 

이것이 미술인가? 어떻게 그 인간들은 별것도 아닌 미술계 위세로 그리 후지게 여성의 몸과 정신을 착취하고, 타인의 사회적 삶과 공공영역을 막가파식으로 망가트리면서 활개쳐왔는가? 이것이 나라인가? 어쩌자고 한 국가의 대통령이라는 사람이 사리사욕에 미쳐 날뛰는 자들과 함께 국정 전반을, 국가 전체를, 국민의 고혈로 쌓아 올린 사회문화를 농락해왔다는 말인가? 이것이 민주주의인가? 어디서부터 잘못되면 여자들을 노골적으로 혐오하고, 인종차별 발언을 서슴지 않으며, 이슈마다 상식과 정치적 올바름을 파괴하며 대중의 지저분한 관심을 끌고 더러운 권력을 모은 문제적 인물이 미국의 대통령, 국제사회 대표자가 되는가? ‘세상 어느 때는 안 그랬나’ 하고 넘어가기에는 그 정도가 심각해 기가 막히고 그 양상이 얽히고설켜 실체파악이 힘든 사태들. 이해를 해보려 해도 그 몰상식과 비리와 부정의 정도에 숨이 턱 막히고, 게다가 사람들이 이 아수라 지경에 점점 무뎌지고 심지어 전염돼가는 것 같아서 제정신인 이들이 오히려 돌아버릴 지경인 현실. 그래서 충분히 힘든데, 해당 인간들에게 인과응보나 법적 처벌은커녕 여론이 이상한 방향으로 흐르며 피해자와 가해자가 역전되고 외려 불건강(不健康)과 비행이 승승장구하는 막장극 전개 앞에서 우울함과 두려움이 커지는 나날들. 지금 우리 마음과 신체가 이리 너덜너덜하다. 

아니, ‘우리’라고 말했지만 이는 나와 당신, 이 세계가 올바른 기반 위에서 이성적으로 대화 가능하고 합리성으로 이어져 있을 때(적어도 그리 믿을 수 있을 때)나 타당한 호칭이다. 사실은 누가 제정신인지, 누가 이런 병리적이고 불의한 현재, 한국, 사회, 문화계, 미술계에 분노하고 바꾸려고 나서는지, 아니면 이 기회를 틈타 자신의 과거 치부를 숨기고 싸우겠다며 앞에 나서 허명을 떨치고 피해자를 돕겠다며 외려 자기 이권을 챙기려는지 분별하기 어렵다. 트럼프 당선 직후 폴 크루그먼 경제학 교수는 뉴욕타임스 기고에서 “우리” 즉 “나와 같은 사람들과 뉴욕타임스 독자 대부분”이 옳다고 믿고 지켜온 민주적 규범과 법의 지배, 현실원칙과 이상을 깽판 치는 이들이 “우리” 안에 있음을 지적했다. 그들이 잠복해 있다가 민주주의의 허점을 노려 위력적으로 출현한 결과가 2016 미국대선이며, 거기서 진실은 “우리가 모르는 우리나라(Our unknown country)”라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지금 여기 미술계 성폭력 사태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도 바로 “우리가 모르는 땅”에서 서로를 “동인”이라 부르며 왕따식 권력효과를 탐했던 치들, “형님, 언니, 딸, 도와준 인연” 등으로 부르며 일반의 상식과 보편의 윤리를 조롱하고 끼리끼리 작당했던 자들의 사특한 악행으로 봐도 무리가 없다. 그들이 구사한 기교는 타자를 향한 근거 없는 무시의 언사/행위, 약자 갈취적 욕망의 과시 및 그를 통한 광신적 팬덤 형성, 결정적으로 기형적이고 편법적인 권력을 향한 끔찍한 부지런함과 실행력이다. 성적 취향, 직책, 부, 가족의 비극사 등등 그 중 뭐라도 끌어다 스스로를 소수자, 약자, 외롭고 상처를 가진 자로 포장하며 오히려 배제와 차별의 모략을 구사해온.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 우리 사회는 각종 제도 및 문화형식에 정치적 올바름을 도입하고 스스로도 봉건 가부장적/독재적 행위 인식 틀을 벗어나 변화해온 부모/기성세대와 그것을 물려받은 자녀/청년세대가 “우리”로 공존하는 곳 같았다. 하지만 IMF, 세계금융위기로 고통받던 바로 그 시기에 사실 우리가 모르는 우리 안에서 독버섯들이 함께 싹 텄다. 현재 ‘일베’가 사회 전반의 드러난 독버섯이라면, 미술계 타이틀을 이용해 비틀린 언행과 심리적, 물리적 폭력을 일삼아온 치들은 양성과 음성 사이의 두 얼굴을 은폐한 채 잔존하는 기회주의적 독버섯이다.


- 강수미(1969- ) 홍익대 대학원 미학과 박사. 광주비엔날레 이사. <비평페스티벌> 창립 및 총괄기획자. 발터 벤야민 미학, 현대미술 구조분석 및 비평 연구. 『비평의 이미지』, 『아이스테시스: 발터 벤야민과 사유하는 미학』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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