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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7)혼혈하는 ‘제8기후대’ 공론장에서 ‘네리리 키르르 하라라’

김재환

2년 전 광주비엔날레 총감독을 맡은 제시카 모건은 ‘터전을 불태우라’는 다소 파격적인 슬로건으로 시선을 끈 바 있다. 전시 내용을 떠나 그 주제만으로 충분히 이슈였던 이 슬로건은 예술의 저항정신과 도전, 창조적 파괴와 같은 굵직한 화두를 던졌다. 예술이 예술로서 존재하기 위해서는 자기부정이 필수적이기에 이러한 화두는 꽤 진지한 고민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2년이 지난 지금 우리의 터전은 파괴의 힘은 고사하고 오히려 더욱 단단한 울타리로 스스로 영역을 확장하고 있는 모양새다. 매년 가을이 되면 기금을 받은 창작자들이 결과 보고를 위해 각종 공연과 전시를 펼쳐 보이고 예술계 사람들은 품앗이 정신을 발휘해 지인들의 공연장과 전시장을 쫓아다니고 있으니 말이다. 짝수 해인 올해는 비엔날레풍년까지 겹쳐 서울, 대구, 부산, 광주, 청주, 안양, 창원 등등 전국을 돌아다녀야 하는 수고스러움이 덤으로 붙어버렸다. 미술계 내부의 전시 물량은 점점 커지는데 정작 일반 관람객들의 증가세는 체감할 수 없으니 이 울타리가 성벽이 되는 건 아닐까 싶다. 그렇다고 이 성벽 안에 사는 예술인들의 삶이 경제적으로 풍요로워졌느냐 하면 그게 또 그렇지도 않다. 국가 경제규모가 커져도 국민은 여전히 가난하듯, 예술 시스템의 규모가 커져도 예술인들의 삶은 그저 팍팍하기만 하다.



펑홍즈, God Pound Busan, 2016, 부산비엔날레 설치작품



이런 저간의 사정을 알아서일까. 올해 광주를 비롯해 부산과 서울은 ‘예술 공동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라는 교집합을 우연히 만들어 냈다. 광주는 ‘제8기후대’로 예술의 역할을, 부산은 공론장으로 예술의 가능성을, 서울은 동시대 예술가의 상상력을 동원, 미지의 예술계를 모색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미래 예술에 대한 희망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가 없었다. 심지어 현재에 이르러 예술은 그 가능성조차도 의문에 부쳐지는 듯하다. 그것은 아마도 각 비엔날레가 던지는 질문들이 개념적 엄밀성에서 시작하기보다는 수사적인 차원에 머물러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슬프게도 지금의 비엔날레가 더는 새로운 담론과 동력을 제공해주지 못한다는 이야기는 어느 술자리에서나 들을 수 있는 흔해빠진 가십거리가 되어 버렸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대규모 비엔날레 시스템은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비엔날레 시스템은 여러 이해관계와 엮이면서 더욱 더 그 덩치를 불려 나가고 있다.


비엔날레는 재생산/생산을 반복하는 거대한 생명체

지역 및 국가의 개발 이데올로기와 비엔날레는 신기하게도 궁합이 잘 맞다. 어찌보면 신기한 일도 아니다. 예술의 저항성은 지난 반세기 동안 여지없이 자본에 의해 포섭되어 상품화되기 일쑤였으니까. 재주는 예술이 부리고 돈은 건물주가 버는 젠트리피케이션도 이런 궁합의 연장선에 있을지 모른다. 맥락은 좀 다르지만, 제주에서도 서서히 비엔날레의 바람이 불 조짐을 보인다. 생각해보면 제주야말로 예술적 가치를 활용한 지역 개발 정책이 필요한 곳이 아닌가. 비엔날레 공화국은 비단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니다. 2017년에는 남극비엔날레가 개최된다고 한다. 담론 생산의 한계에 부딪힌 비엔날레가 이제 미지의 세계를 물리적으로 개척하려하고 있다. 정말이지 이쯤되면 비엔날레는 그 자체로 재생산/생산을 반복하는 거대한 생명체로 느껴진다. 그리고 이 생명체에서는 자신의 생명을 유지하고 확장하기 위해 주변의 모든 생명을 빨아 당기는 원령공주의 사슴신 냄새가 난다.


관성과 관례를 파괴하고 새로운 감각과 사유를 제시하는 게 현대미술의 목적 중 하나라면, 비엔날레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대규모 미술 전시는 그 목적과 반대방향으로 가고 있다. 안타까운 건 이것이 비엔날레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거다. 시스템을 유지하고 규모를 확장하고자 하는 욕망은 이제 어디에나 만연해있다. 피에르 부르디외의 말을 원용하자면, 예술의 장은 터전을 불태우라는 수사적이고 기만적인 깃발을 들고서 자신의 자본을 증식하는 ‘거꾸로 된 경제 시스템’이 되었다. 살아도 산 것이 아닌 아우슈비츠의 무젤만들이 가득한 세상. 아니 어쩌면 산 자도 죽은 자도 아닌 좀비로 가득 찬 부산행 기차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기차를 폭파해야 하나? 백신과 바이러스를 개발해야 하나? 그냥 좀비가 되어야 하나? 아니 모두를 좀비로 만들어야 하나?



김재환(1973- ) 영남대 미학미술사학과 박사과정 수료. 미술문화잡지 『비아트』 편집위원, 지리산프로젝트 협력큐레이터『. 비판적 예술이론의 역사』(백산서당, 2003) 공저. 제5회 이동석전시기획상 수상. 현 경남도립미술관 학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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