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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4)권익위의 문건, 전문성에 대한 불편한 부정

박영택

얼마 전에 국민권익위원회(이하 권익위)가 국공립미술관의 전시 계획, 작품 구입에 외부 전문가 참여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는 사실이 보도되었다(문화일보 2016.8.1, 한국일보 8.2). 권익위의 이른바 ‘미술품 및 문화재 전시회 등 운영관리 투명성 제고 방안’에 따르면 전시회 운영 관련 전문가 풀(서양화·한국화·조소 등 12개 분야 20여 명씩 총 300여 명)을 구성해 이 전문가 풀이 전시 작품 및 작가 선정 심사를 하게 돼 있다. 또 작품 구입 전문가 풀도 구성해 작품 구입을 심사토록 하고 있다. 쉽게 말해 전시 계획, 진행과 작품 구입을 공개하고 외부에 맡기자는 것이다.

권익위는 추진 배경에 대해 국공립 미술관·박물관이 주최하는 전시회 운영과정과 미술관·박물관 소장품 구입 및 심사과정이 불투명하다는 문제 제기에 따라 미술품, 문화재, 전시회, 작품 구입, 보관관리 등 운영관리의 투명성을 제고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또한, 소장품 구입이 내부 관계자 중심으로 이뤄져 국민의 다양한 기호와 취향을 반영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불투명한 심사 과정과 회계 처리로 문제가 불거질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미술관과 박물관이 기획하는 전시가 주로 담당 큐레이터 주관으로 이루어지고 따라서 여기에는 관장이 개입할 여지가 높다는 점을 들어 특정 분야로의 쏠림 현상이 나타날 수 있으며 또한 내부 인력에 의해 제한된 작품 선별이 결과적으로 국민 권익을 침해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관련 진흥법과 내부 규정을 내년 6월까지 개정해 미술관 운영에 외부 인사의 참여 범위를 확대하는 방안을 담고자 한다는 것이 현재 알려진 내용이다.

물론 아직 검토단계에 있고 시행 여부는 미지수지만 미술계 일각에선 이를 ‘행정만능주의적’에서 나온 개선 방안이라고 지적하고 있으며 아울러 그 전문가 풀이라는 것이 과연 어떤 대표성을 지닐 수 있는지도 우려된다고 말하고 있다. 어쨌든 이번 일의 행간에는 모종의 음모 같은 것이 깃들어 있다는 생각이다. 우선 권익위의 추진방침의 저간에는 기존 국공립미술관에서 이루어지는 일련의 전시 계획과 작품 구입의 절차나 과정을 신뢰할 수 없다는 깊은 의구심이 내재되어 있다. 쉽게 말해 국공립미술관·박물관이 내부 인력 중심으로 운영되는 것이 문제라는 지적이다. 그러니까 권익위는 기관 내부에서 이루어지는 일의 전문성에 딴지를 걸어야 할 필요성이 있었다는 점이다.
여기서 핵심적인 사항은 권익위가 발표한 바로 “소장품 구입이 내부 관계자 중심으로 이뤄져 국민의 다양한 기호와 취향을 반영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불투명한 심사 과정”이란 대목에 있다. 짐작하건대 이 문제를 제기한 측은 기존 시스템 안에서는 기획 전시나 작품 구매 등에서 선정되기 어려워서 또 다른 방편을 마련해야 할 필요성이 커졌을 것이다. 당연히 작품의 질이 떨어지니까 심사를 통과할 수 없는 것이다. 그 불만을 전문성 부족, 불투명한 심사제도, 편협성, 특정 분야 쏠림현상, 국민권익침해 등의 수사를 동원해 미술관과 전문인력, 그리고 심사위원 등을 겁박하고 있다. 이는 미술관의 기본 기능이자 고유 영역인 작품 구입과 전시 기획을 무력화하려는 시도이자 문화예술 분야 기관의 전문성에 폭력을 가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그간 보수 정권이 들어서면서 문화예술정책 역시 급격히 보수화되고 관주도의 입김이 거세지고 있는 형편에서 이번 권익위의 문건 역시 그와 궤를 같이하고 있다고 보인다. 미술작품의 질에 대한 평가 역시 전문가에 맡기는 대신 자신들의 입맛에 맞은 대로 처리하고 싶다는 욕망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시도로 보인다. 그리고 이는 예술적 성취도나 질적 수준, 안목에 대한 전문성 같은 것을 매우 불편하고 번거로운 것으로 여기는 태도에 다름 아니다.

그동안 여러 심사에 참여해본 필자의 경우도 일부 정치인들의 후광에 기대어 압력을 가하는 작가나 단체를 접한 예가 있었다. 담당 공무원이나 관계자가 윗선에서 특별히 부탁한다는 식으로 심사위원들에게 은근한 압력을 가하는 그런 것인데 사실 오늘날 이런 시도는 정신이 온전히 박힌 심사위원들의 경우라면 먹힐 리가 없다. 사정이 이러다 보니 실력이 안되는 작가들이 선정될 수 있는 확률은 드물다. 그러니 그런 작가들이 권익위를 동원해 기관이나 전문가집단을 흔들려고 할 수도 있다. 혹은 정부 측 입맛에 맞는 작가, 작품을 통제하려는 시도일 수도 있다. 향후 권익위의 이 문건이 어떤 식으로 전개되어 나갈지 귀추가 주목된다.

- 박영택(1963- ) 성균관대 미술교육학과 학사, 동대학원 석사. 전 금호미술관 큐레이터 역임. 저서 『한국현대미술의 지형도(2014)』,『애도하는 미술(2014)』 등. 현재 경기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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