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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미술책, 우뇌를 마사지하다

정민영

국내 미술출판은 오랫동안 ‘내부자들끼리만 아는 이야기’로 일반 독자를 소외시켜왔다. 이런 상황이 눈에 띄게 개선된 것은 2000년대 들어서면서부터다. 신자유주의의 확산과 각종 정보기기의 보급으로 출판지형에도 변화가 불가피해졌다. 미술출판에서도 일반 독자를 고려한 기획이 증가하고 좌뇌에서 우뇌로, 머리에서 가슴으로, 이성보다 감성에 호소하는 대중서가 출판의 대세를 이룬다.

2000년 이후 우뇌 공략에 나선 미술출판의 특징으로는 먼저, 대중서 기획의 강세다. 미술사나 미술이론, 작품에 대한 전문적인 내용으로 ‘보디빌딩’한 책들은 상대적으로 판매가 저조한 현상을 보였다. 반면에 일반 독자의 욕구에 응답하는 기획이 확산되면서, 인터넷에서 얼마든지 확인 가능한 객관적인 미술 이야기보다 독자의 감성을 건드리는 주관적인 미술 이야기가 호응을 얻었다. 이에 따라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하기 위한 전술로서 주관적인 서술, 에피소드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글의 비중이 높아졌다.




두 번째, 미술전공자가 아닌 이들의 활발한 저술이다. 비전공자로서 미술책을 출판하는 저자들에겐 공통적으로 일정한 독자층이 형성되어 있다. 이는 독자가 미술전공자의 시각과는 다른 이야기를 원한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다르게 보면, 비전공 저자의 두각은 전공자의 글이 독자와의 소통에 실패했다는 뜻이 된다. 그 지점의 공백을 비전공자들이 미술에 대한 열정과 탄탄한 글솜씨로 메워주고 있다. 전공자는 스토리에 약하다. 스토리는 주장과 다르다. 주장이 메시지를 일방적으로 전하는 것인 반면, 스토리는 듣는 사람과의 공감을 전제로 한다. 그래서 스토리텔링이 중요하다. 비전공 저자의 글에는 탄탄한 스토리로 마음을 움직이는 감성의 힘이 있다. 미술사나 미술이론 전공자처럼 팩트와 논리만으로 독자를 설득할 수는 없다. 세상에 넘치는 수많은 정보도 흥미진진한 스토리로 엮어내지 못하면, 독자의 마음을 얻지 못한다. 전공자도 독자와 소통을 원한다면 스토리텔링에 신경 쓸 필요가 있다.

세 번째, 트렌드를 반영한 미술책의 활약이다. 미술을 자기계발, 심리치유, 위로, 창의성 같은 트렌드로 숙성시켜 일반 독자에게 크게 어필했다. 이와 관련하여 온·오프라인 서점에서도 미술책을 ‘미술’ 코드로만 분류하지 않고, ‘비소설’ ‘자기계발’ ‘인문’ 코드로 분류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이는 잠재적인 독자의 개발은 물론, 미술이 미술인만의 세계가 아니라 우리 삶의 다양한 부분과 연계된 세계임을 일깨우는 부대효과를 낳았다.

네 번째, 교양물의 일종으로 접근한 미술 출판 현상이다. 미술전문출판사에서는 미술이 출판 종목의 전부이지만 일반출판사에서 미술은 여러 출판 종목 중의 하나가 된다. 따라서 미술전문출판사가 전문서 위주의 근엄한 기획방식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한다면, 일반출판사는 접근 방식부터 다르다. 경영서나 심리서, 여행서를 기획하듯이 미술을 주무른다. 편집에서도 독자의 낯가림을 덜어주기 위한 발랄한 디자인이 구사된다. 그 결과, 『그림 읽는 CEO』, 『미술관 옆 인문학』, 『다, 그림이다』, 『혼자 가는 미술관』 같은, 타깃이 분명한 책들이 ‘VIP 대접’을 받고 있다.

이런 특징의 공통점은 깊이보다 미술의 장벽을 제거하여 독자에게 작품 감상의 재미를 찾아준다는 점이다. 덕분에 미술 대중서는 국내 출판시장에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그런 만큼 이제는 대중서의 업그레이드 버전 격이자 전문서보다 힘을 뺀 ‘경전문서’(예컨대 소설에서 장편소설보다 페이지 부담이 적은 ‘경장편’같은)의 활발한 출현이 요구된다. 편의상의 조어인, 경전문서란 저자의 사적인 이야기의 부축을 덜 받으면서도 대중성을 유지한 채 전문성을 살린 것으로, 전문서는 부담스럽고 대중서는 싱거워서 외면하는 독자를 고려한 책이 되겠다. 이는 각자 자기분야에서 전문가인 독자에게 더 깊이 있는 미술세계를 선사하기 위한 전략적 처방이다.
도판 저작권 사용료 부담에 따른 제작비 증가 등이 미술출판의 여전한 걸림돌이지만 전문성과 대중성을 겸비한 경전문서들이 들판의 개망초꽃처럼 흐드러지게 피었으면 한다.


- 정민영(1964- ) 계명대 미술대학 서양화학과 졸업. 월간 『미술세계』 편집장, 계간  『이모션』 편집인 역임. 저서 『편집자를 위한 북디자인(2015)』, 『정민영의 미술책 기획노트(2010)』 외 다수 공저. 현 (주)아트북스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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