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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미술, 사회 협업(協業)의 산물

김미정


미술품 유통 투명화 및 활성화를 위한 세미나, 2016.7.7


최근 천경자에서 이우환으로 이어지는 위작 논쟁이 사회를 떠들썩하게 하고 있다. 경찰이 국과수에 작품 분석을 의뢰하고 검찰이 국립미술관을 압수 수색하는가 하면, 문화체육관광부는 미술품 유통 규제를 위한 법제화에 강한 의지를 표현하고 있다. 미술품 위작 사건은 이제 저널리즘의 가십이나 문화계 이슈를 넘어, 시장 불투명이라는 국가의 경제 사안으로 부상하고 있는 듯하다. 미술시장의 난맥상을 정부가 시급하게 생각한 것은, K-팝에 이어 미술시장의 성장가능성 그리고 그 문화적 파급력에 대한 인식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이러한 마당에 미술의 자율성, 혹은 시장의 파이를 먼저 키운다는 명분으로 미술 유통업체들이 국가개입을 반대만 할 수 없는 처지에 이르렀다.


지난 7월 7일과 8일 양일간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재)예술경영지원센터가 주관한 ‘미술품 유통 투명화 및 활성화를 위한 세미나’가 열띤 관심 속에 이루어졌다. 프랑스와 미국 감정협회 관계자가 초대되어 오랜 미술시장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프랑스와 민간의 규율이 강력한 미국의 감정 시스템에 대한 발표가 있었고, 이어 우리의 법제화 시안이 발표되었다. 민감한 사안에 촉수를 세운 방송 관계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토론 테이블에는 화랑협회, 감정가협회뿐만 아니라 금융과 저작권 관련 변호사가 참여하였고, 방청석은 행정 공무원부터 큐레이터, 관련 분야의 학생들까지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미술은 이미 문화산업이라는 국면으로 진입하였고, 급변하는 내외적 상황에 위기를 느낀 정부는 미술시장에 선택적 개입을 선언하는 자리였다. 필자가 한국현대미술을 공부한 미술사가로서 양일의 토론에 질의자와 사회자로 참여한 소감은 아이러니하지만, 현재 상황이 위기이기보다는 희망의 국면처럼 보였다. 미술을 매개로 반목하거나 소원했던 다양한 구성의 주체들이 논의와 협상의 테이블에 함께 하게 된 것이 그 징조라 할 수 있다. 더불어 이러한 협업의 분위기가 미술품과 현장 미술에 대한 미술사학계의 관심으로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이 들었다.


그간 미술품 진위의 논란에서 학계의 목소리는 찾기 힘들었다. 사실 한국에서 미술학이나 미술사는 미술계의 현장과 실제 작품을 다루는 실증 학문이기보다는 대학에서의 제도 학문으로 성장해왔다. 특히 미술의 독창성을 해체하는 포스트-모더니즘 담론이 팽배했던 1990년대 이후 성장한 미술사가(美術史家)에게 미술품의 진위는 완전히 관심 밖 논란이었다. 일반적으로 미술사학자 사이에는 시장(Market)에 대한 배타적 정서가 지배적이다. 그러나 동서양을 막론하고 미술사의 구축이 결국은 시장사(市場史)와 무관하지 않다는 역사성은 차치하고라도, 학계와 시장이 공존하고 또 견제해야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학자는 상업 취향에 대항하며 미술의 실험적인 전위성에 가치를 부여할 수 있는 전문가 주체이기 때문이다.


사실 미술과 미술 작품은 복잡한 속성을 갖는 다면체이다. 미술은 그 자체의 본유적 가치로 정의되기도 하지만, 동시에 대학, 전람회, 미술관, 화랑과 경매하우스 등 그것에 관여하는 다양한 기관과 제도로써 규정된다. 전통적으로 미술은 시장보다는 문화와 교육의 영역으로 인식되었다. 그러나 문화 산업이라는 관점이 강조되면서 점차 금융, 법과 행정과 같은 비문화적 분야와 더욱 긴밀해지고 있는 형국이다. 특히 국제 미술시장 역시 거래의 자유화와 표준화라는 시장질서의 재편에서 벗어날 수 없다. 필자가 2015년 해외 감정프로그램 참가 리서치사업의 일환으로 미국 미술품감정협회 활동을 참관한 짧은 경험으로도, 자율성이 강한 미국시장에서 민간 미술감정 시스템이 엄격한 윤리규정과 자체 규율을 통해 법적 공신력을 확보해가는 노력을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동시에 법률과 비즈니스, 교육계의 긴밀하고도 발 빠른 협력의 현장을 보며 미국 미술시장의 저력을 절감했다. 


미술과 시장, 정부의 협업이 도래한 시대, 그러나 여전히 중요한 사실은 미술 창조의 가장 핵심 주체는 미술가라는 점이다. 예술의 가치는 그것을 창조하는 예술가의 삶에서 나오며 미술의 감동은 보편성과 휴머니티에 바탕을 둔다는 점을 필자는 이중섭 카탈로그 레조네 사업을 하면서 실감하고 있다. 무엇보다 관습을 거부하는 예술가의 혁신은 미술의 필요조건이자, 숨 막히는 현대사회의 최소한의 해방구이다. 모 가수의 불미스러운 대작 사건은 이러한 오래된 진실을 여실히 드러내 주었다.



김미정(1964- ) 홍익대 대학원 미술사학 박사. 한국근현대미술사학회 이사, 한국미술가 전작도록사업 ‘이중섭 카탈로그 레조네 연구’ 상임연구원. (재)예술경영지원센터 지원 ‘차세대 감정가 양성프로그램’ 참여(2012- ), ‘해외 감정프로그램 참여 및 리서치 지원’ 결과보고(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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