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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한국 대안영상의 어제와 오늘

김장연호



김세진, 일시적 방문자, 2채널비디오, 6분 53초, 2015, 미디어극장아이공 2015 전시


1990년대 중반의 한국은 신사회 운동이 일어나고 개인의 자율성과 공공성이 성장하면서, 개인 컴퓨터와 디지털 캠코더의 대중화가 이루어지던 시기였다. 당시 개인 컴퓨터와 디지털 캠코더의 대중화가 이뤄졌다 해도 검열과 억압된 사회였다면, 아마도 개인이 작업한 비디오 영상물들이 그렇게 많이 쏟아져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이 시기 기존 미디어 문화에서 소외되었던 여성, 소수자, 노동자, 이주민, 퀴어, 예술가 등 다양한 아젠다를 가진 디지털 영상물들이 등장하였다. 1968년 전후 미국, 유럽, 일본에서 이러한 영상물들이 먼저 등장하였다면, 한국은 디지털 환경에 접어들었던 1990년대 중반이 되어서야 이러한 영상물들을 수용할 수 있는 문화적 기반이 형성되었다. 한국에서 활용되는 대안영상이라는 용어는 이러한 흐름과 맥을 같이 한다. 1970년대 저항문화의 일환으로 비디오매체를 혁명적 도구로 활용했던 공동체 비디오 그룹들(개미농장, 레인댄스, 인민비디오극장)과 마사 로슬러, 린다 벤글리스, 조안 조너스, 바버라 해머 등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다’라는 캐치프레이즈로 다양한 대안적 비디오를 제작했던 페미니즘 비디오 문화가 그렇다. 또한, 정치적 비디오에 속하는 제3세계 대안비디오운동 역시 대안영상과 맥을 같이 한다. 처음 시작부터 비디오매체예술의 속성은 텔레비전의 지배구조에 대한 저항문화로 시작되었기에 ‘텔레비전:주류미디어:국가:자본가’에 반하는 ‘비디오:비주류미디어:인민:노동자’ 등식이 자연스럽게 내재되어 정치성을 형성하였다. 

이러한 대안영상의 정치성은 매 순간 발달하는 매체의 속성을 탐구하는 미학적 가능성에 의해 더 대안문화로서의 가치를 가진다. 정치성이 창작자의 사회참여적 욕구가 발현된 것이라면, 미학성이라 일컫는 형식 해체는 기존 사회 관습과 규범의 균열 가능성을 시사하기 때문이다. 개인적인 견해로, 서구의 비디오문화가 정치적 비디오에서 미학적 비디오로 힘이 실리며 주류미술에 안착하였다면, 한국 비디오문화는 서구와는 반대로 미학적 비디오에서 정치적 비디오로 달리는 듯한 인상이다. 이러한 경향도 한국 사회정치 성향과 무관하지는 않을 것이다. 1990년대 중반의 초기 한국 대안영상에서 매체탐구, 자전적 나르시시즘 비디오, 답습적 비디오 경향의 개인 작품이 주류를 이루었다면, 2005년 전후부터 서서히 대안적 아젠다를 내포한 대안영상과 다양한 탈장르 작품이 수면 위로 등장하였다. Full-HD가 등장하였던 2010년 전후부터 오늘날까지 대안영상 작품은 스케일이 커지고, 개인에서 그룹작업으로 형태가 많이 변모했으며, 영화와 미술의 경계에서 실험하고 있는 예술가의 활동이 더 두드러지고 있다. 


제16회 서울국제뉴미디어페스티벌 포스터
오리지널: 김두진, Ken MOODY and Robert SHERMAN, 2012, 디지털 프린트, 150×200cm)


그러나 아직도 미술 진영에서는 소개하는 영상이 ‘영화’인지 아닌지에 대한 잣대로 의심을 보내는 경우가 많다. 영화라는 용어는 ‘무빙이미지’의 또 다른 용어에 불과하다. 영화(映畵)란 용어는 팔딱사진, 움직사진, 활동사진으로 쓰이다가 약 1930년대부터 일제에 의해 활동사진이라는 용어가 탈각된 채 영화란 용어로 활용되어 왔다. 영화는 한자 비칠 영(映), 그림 화(畵)의 뜻을 지닌 ‘빛에 의해 비춰지는 그림’이란 의미니 오늘날 영상예술과 같은 맥락의 용어라 할 수 있다. 한국 최초의 전위영화로 알려진 김구림 화백의 <1/24의 의미(1969)>는 영화사에서보다 미술사에서 더 중요한 작품이다. 그러나 영화라는 이유로 미술계에서 그동안 중요성을 인정받지 못했었다. 타계하신 김점선 화백의 초기 전위영화는 현재 원본과 사본 모두가 사라졌다. 남아있는 사진 몇 점이 전부다. 한국 영상미술사에서 볼 때 아주 큰 손실이다. 1990년대 디지털 비디오아트 또는 대안영상 작품들 역시 자료화의 부재를 안고 있다. 매년 대안영상을 소개해온 제16회 서울국제뉴미디어페스티벌에서 올해도 어김없이 홍대 앞 공간들을 중심으로 8월 4일부터 12일까지 약 100여 명의 작가 작품이 소개된다. 그러나 100여 년이 지난 후, 김점선 화백의 작품처럼 사진으로만 이 작업들을 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니 마음 한쪽이 쓰리기만 하다.


- 김장연호(1974- ) 중앙대 문화연구학과 박사과정 수료. 서울국제뉴미디어페스티벌 집행위원장·예술총감독(2000-16),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출강(2005-12), 미디어시티서울 평가위원(2012), 우수논문상 수상(2005, 영화진흥위원회).『디지털영상예술코드읽기』(총기획, 2003), 『카메라를 든 여전사』(총기획, 2005). 현 미디어극장아이공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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