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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후배가 미운 선배들

함영준


서울시립미술관 ‘서울바벨’ 전시장



2014년경부터 서울 시내 곳곳에 작은 미술 공간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났다. 정규 미술 교육을 막 마친 1980년대 중후반생 젊은 미술가가 주축이 되었다. 서울 변두리에 산재한 이 공간은 기존의 미술계가 작동하는 원리와는 여러 점에서 차이를 두었다. 이 때문에 기존 미술계의 논리로 이 현상을 설명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갤러리는 아니라는데 작품을 판매하고, 비영리 공간도 아니라는데 수익을 내지 못하고(오히려 돈을 쓰고 있고), 특히 누가 대안공간이냐고 물으면 아니라고 손사래를 치며 부정하지만, 운영방침이나 목적을 들어보면 1990년대 말의 대안공간과 별 차이가 없어 보였으니까 말이다. 이들은 보도자료를 돌리고 기자를 만나서 전시를 설명하는 등, 기존의 매체를 활용하는 홍보를 잘 하지 않았다. 기존의 매체에 실리는 것을 적극적으로 피한 공간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그걸 어떻게 하는지 몰랐으며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대신 그들은 트위터나 페이스북 같은 SNS를 통해 전시를 알리고 관객을 모았다. SNS의 특성상 자연스럽게 비슷한 취향과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모이게 되었고, 그렇게 전시를 보러 다니다 보면 눈에 익은 얼굴끼리 통성명을 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렇게 아는 사람만 알던 (하지만 약간의 발품을 팔면 충분히 알아차릴 수 있었던) 활동이 눈에 띄기 시작한 것은 ‘굿-즈 2015’라는 행사 때문이었다. 아트페어의 형태를 띠고 있었지만, 일반적인 모습은 아니었고, 그렇다고 전시라고 하기에는 공간 안에서 판매가 이루어지는 한편의 거대한 퍼포먼스였다. 게다가 운 좋게 공공기금을 지원받아 사대문 안에서 행사를 진행했으니 규모와 입지 모두 눈에 띄기 좋았다. 그리고 뒤이어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서울바벨’이라는 호기로운 전시가 열렸는데, ‘굿-즈 2015’에 참여하지 못한 나머지 신생 공간을 싹 쓸어 담은 모양이었다. 아무튼, 두 개의 행사를 통해 서울의 신생전시 공간이 (기존의 미술계가 인정하는) 역사 속에 겨우 이름을 남기게 되었다.


꽤 많은 방문객이 관람하고 직접 참여하면서 이 두 개의 행사는 겉으로 보기에는 왁자지껄한 파티처럼 성공적으로 진행되었다. 그런데 한 가지 이상한 점이 있었다. 그건 바로 미술계 선배들 대부분이 일제히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는 것이다. ‘굿-즈 2015’에는 직접 작품을 판매하는 것이 천박하다는 선배 미술가의 비난과 시장의 질서를 어지럽힌다는 갤러리의 비난이 동시에 일었다. ‘서울바벨’은 주요 미술관에서 열린 행사였으므로 공식적인 경로를 통해 훨씬 더 적나라한 비판을 받았다. “…전시는 번잡스럽다는 인상이 강했다. ‘공간’이라는 공통의 테두리 밖에서 보자면 어느 팀 어떤 작가의 작품인지 헤아리기 힘들 정도로…”, “…예술계의 법칙에 적응하려 한다면 동호회 활동과의 차이(우위)도 증명하는, 즉 미학을 가시화하는 책임을 고민해야…” 등.


그런데 나는 어떤 비난에서도 타당한 이유를 찾을 수 없었다. 작가가 직접 작품을 판매한 것을 퍼포먼스의 일종으로 이해해볼 수 없었을까? 뻥 뚫린 공간 안에 장황하게 쑤셔 박아 번잡스러워 보였다면, 일부러 번잡스럽게 전시를 설계한 것은 아니었을까? 이처럼 대부분의 비판은 눈에 보이는 것을 이해해보려는 일말의 노력 없이, 그저 미워서 하는 비난처럼 들렸다. 정치나 미학 같은 거대한 목표를 직접 보여주지 않는 경향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요즘 애들…”하며 혀를 끌끌 차는 수준 이상은 아니었다. 옛날에 그랬던 것처럼 밤새 술을 격렬하게 마시며 강령을 만들어 발표하고 동인이나 학회로 모여 활동하지 않는, 스마트폰을 통해 형성된 느슨한 공동체라고 해서 쉽게 평가절하해버리는 이유는 뭘까? 자신의 미학적 투쟁은 역사적 당위를 얻었지만, 후배들이 꼬물거리듯 진행하는 지금의 젊은 미술은 현실과 맞닿아 있지 않아 보이기 때문에 무책임해 보이는 것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답은 나오지 않고, 후배가 밉다고 이유 없이 비판하는 선배는 되지 말아야지 하고 생각하게 될 뿐이다.



- 함영준(1978- ) 2007년 상업갤러리 코디네이터로 미술 현장 활동시작. 2011년 공연장 로라이즈 공동운영자로 활동하며 비정기 문화잡지 『도미노』 공동 창간 후 현재까지 7권 발간. 2013년부터 2년간 미술공간 커먼센터 운영자로 ‘오늘의 살롱’ 등의 전시 기획. 현 일민미술관 책임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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