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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남서울예술인마을에 있는 예술가들에게 작업실이란?

정연두

남서울예술인마을 오픈스튜디오 후 파티 전경


내 작업실 앞 버스정류장 이름은 예술인마을이다. 실은 이 동네 슈퍼마켓 이름도 예술인슈퍼이고, 미장원 이름조차 예술인미장원이다. 그다지 특별히 예술적이지 않은 평범한 관악구 남현동 까치고개 일대를 예술인마을이라 사람들이 부르는 데는 1980년대 실패한 국책사업 덕분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예술인마을 앞 정류장에서 버스를 내릴 때 기분이 좋다. 왠지 모두가 내가 그 정류장에 내리는 것을 공식적으로 인정해주는 착각이 들기 때문이다. 내 작업실은 그 버스 정류장에서 불과 10m 떨어진 ‘남서울예술인마을’ 11개 스튜디오들 중 하나다. 


이 스튜디오들은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에서 운영하는 레지던시 프로그램이 아니다. 월세나 전기세도 내야하고, 반년이나 1년이 지나면 나가야 하는 일시적 공간도 아니며, 운영하는 프로그램이나 관리자가 있는 것도 아니다. 이곳의 작가들은 길게는 10년, 짧게는 3, 4년씩 이곳에 작업실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다. 나 또한 이 작업실에서 12년째 작업을 하고 있다. 구성원은 중구난방이어서 소위 중견 작가와 신진 작가가 뒤섞여 있다. 이곳 ‘남서울예술인마을’은 예술가들의 작업실들이 자생적으로 모여 있는 마을공동체 같은 곳이다. 이곳의 많은 작가들은 1년에 2번 정도 작업실 문을 열어 손님을 맞이한다. 이를 우리는 ‘오픈스튜디오’라 부른다. 작업실 문을 열기 싫은 사람을 뭐라 하는 이는 아무도 없다. 횟수가 거듭될수록 손님이 늘어나 4회에 이르러서는 200여 명의 손님들이 찾아왔다. 그 중에는 옆 건물 회사원들도 있었다.


예술가들에게 작업실이란 무엇인가?

예술가의 가장 큰 문제점은 대부분 흰색 캔버스를 마주할 때 느끼는 막막함과 같은 것이다. 어느 순간에 갑자기 문들 열고 들이닥칠 큐레이터와 비평가 또는 호기심 많은 콜렉터에게 부끄럽지 않게 문을 열어줄 수 있는 그럴싸하게 꾸며진 스튜디오를 갖게 되고 나면, 과연 백색 캔버스를 대할 때와 같은 막막함이 없어질까? 한 손에 들고 튀기는 공처럼 창작이란 언제 내 손을 떠나 중심을 잃고 다른 쪽으로 굴러갈지 모르는 역동적인 운동에너지가 넘쳐나는 상태에서 시작된다. 바닥에 정갈하게 정돈되어 놓여있는 사물들과는 사뭇 다르다. 왜냐하면 불안정하기 때문이다. 예술가는 자고로 이러한 불안정한 아름다움을 즐기고 향유하는 부류의 사람들이다. 


예술가는 성공과 더 훌륭한 작품을 갈구한다. 좋은 창작공간은 이러한 예술가의 긴장감을 늦추지 않으면서도 적절한 화합의 장을 자율적으로 만들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해주는 곳이다. 예술가가 작업실을 통해 어떠한 자극을 받을 것인가가 한 작가의 성공여부를 판가름한다. 그리고 이러한 자극 중 가장 큰 자극은 공간보다는 사람과의 교류에 의해 이루어진다. 그곳에서 어떤 부류의 사람들을 만나고 어떤 행위들을 하고 어떤 대화가 그들 사이에서 오가는지에 따라 작가에게 다른 결과를 만들게 한다. “아! 저 사람도 나와 똑같이 고민하고 있구나.”, “나만 그런 게 아니었군.”과 같은 동질감 “아! 저렇게도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독특한 방법이 있었군.”, 다름에 대한 이해, 예술 공동체는 예술가에게 훌륭한 사회성을 키워주는 장소인 것이다. 그래서 예술인마을공동체는 사교(Socializing)와 예술창작(Art Making)이 중요한 요소를 이루는 것이다. 


대부분의 레지던시 프로그램들은 작가들을 즐겁게(?) 해주려 무단한 노력들을 한다. 공짜로 주는 작업실과 항상 준비된 상태에서 문을 두들기며 찾아오는 큐레이터들과 반드시 만나야 하는 옆방 작가들, 과연 그들은 이것을 고마워하는가? 내가 가만히 있으면 고립될 것 같은 위기의식을 과연 그들은 느끼는가? 자기 동네의 아는 작가가 잘 하고 있는지 걱정 되서 챙겨주는 이웃집 작가라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 ‘남서울예술인마을’은 이런 취지에서 만들어졌다. 작가들간의 교류는 다분히 자의성에 의해 만들어진다. 제목에서와 같이 마을처럼 서로에 대한 관심과 챙겨주는 인간관계에 의해 이루어지는 결속이기를 바란다. 고립된 스튜디오 컴플렉스가 아닌 일정기간 채우고 나가는 레지던시 프로그램도 아닌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이웃 예술가 네트워크를 만들고 싶은 이들의 바람의 결과이기도 하다.



정연두(1969- ) 서울대 조소과 졸, 런던 센트랄세인트칼리지 수료, 런던 골드스미스대학교 석사. 대안공간루프, 국제갤러리, 국립현대미술관, 플라토 등에서 국내외 개인전 및 단체전.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 선정(2007), 문화관광부 올해의 젊은 예술가상(2008), 미국 미술잡지『Art+Auction』 ‘가장 소장가치 있는 50인의 작가’ 선정(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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