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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우리 현대미술의 한 단면으로서 단색화, 평면과 입체예술의 미래

김복영

이승조, <핵(核) Nucleus 75-11>, 1975, 130 × 130 cm

이건 가히 여신의 축복이라 할 것이다. 우리 현대미술의 한 장르인 이른바 ‘단색화’가 세계 미술시장의 이목을 끌자 모두가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구겐하임을 필두로, 올해는 상하이와 베니스를, 머지않아 파리를 비롯한 세계 굴지의 화랑가를 노크할 기세다. 일찍이 1980년대 영국의 테이트미술관이 우리 미술을 소개한 걸 시작으로 지금은 세계 곳곳의 관심사가 되고 있다. 공식적으로는 1979년 5월 당시 한국문화예술진흥원(현,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이 개최한 ‘한국미술:오늘의 방법전’을 시작으로 치면 36년 만의 일이다.  

이러한 정황인 지라 1세대 원로작가들과 지근거리에서 단지 강단 평자의 한 사람으로 동행했던 필자가 기획한 ‘물성을 넘어, 여백의 세계를 찾아서전’(8.14-9.29 가나아트센터)은 근자의 이벤트로서 스케일과 내용 면에서 빅쇼가 될 수 있도록 온 힘을 다하였다. 이 기획은 1940년대에 출생한 7인의 작가(이승조, 박석원, 김인겸, 이강소, 오수환, 김태호, 박영남)를 포함해서 이들의 회화와 조각이 지향해온 정체성을 탐색하려는 데 목적을 두었다. ‘한국 현대미술의 눈과 정신 1’이라는 표제가 이를 함축한다. 

거두절미하고 이때를 우리 현대미술의 절체절명의 승기로 격상시켜야 하지 않을까? 문제는 우리가 우리 현대미술의 진실을 잘 모른다는 거다. 기껏해야 서구미술이 그러니 우리 또한 그렇지 하는 정도다. 우리의 더 밝은 미래와 후세대를 위해서는 이러한 인상주의적 시선은 더는 곤란할 것이다. 시급한 건 우리 현대 미술에 내포된 그 무엇이다. 일컬어 정체성이다. 이걸 모르고서 더는 앞으로의 진전을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정체성의 문제는 비단 단색화에만 국한된 건 아닐 것이다. 이번 가나아트 특별전에서는 이점을 크게 부각시켰다. ‘서문’에서 밝혔듯이 우리 현대미술의 각 장르가 기반을 두고 있는 차별성을 크게 두 가지로 정리하였다. 이에 이번 7인 작가들의 정체를 예단하고 이들을 잇는 미래 세대들이 이 두 가지를 정신적 자산으로 삼을 걸 기대하고자 하였다. 

첫째는 우리의 눈과 정신을 지배하는 무와 총체성의 시선이다. 이것들은 우리 현대미술을 아르테 포베라·아르 콩크레·미니멀 아트 같은 세계의 동시대 양식과 차별화하는 데 필요한 정신적 자산이다. 서구인들이 우리 미술을 볼 때 우선 ‘편안함(穩)’을 느낀다고 말하는 것의 진원이다. 왜 편안함을 느끼는지는 마땅히 물어야 할 것이다. 서구가 있는 것(有)과 보이는 것(物)으로써 관객에 도전하고자 하는 데 반해, 우리 미술은 이와 반대급부로 예나 지금이나 관객과 작품이 하나로 어우름으로써 그들에게 편안함을 주고자 한다. 여기에 당연히 ‘무’가 원인으로 작동된다. 그래서 ‘무’가 ‘무’인 건 있는 것이거나 없는 것이거나를 총체성의 풀(Pool)로 간주하는 데 있다. 둘째는 비물질성과 여백충동이다. 이것들은 무와 총체성 아래 물질을 만지고 다루면서 물질 이전, 그 너머를 응시하는데 소요되는 항목들이다. 물질의 너머를 구현하기 위해 우리 미술은 채워진 것보다는 비어 있는 걸 강조한다. 이는 우리 선대가 물질적 형식의 완결성을 절하하고 인위적 작위와 무위를 하나의 밈풀(meme pool)로 용인했던 문화의 형질적 전통과 무관치 않다. 

이러한 우리만의 형질들을 가장 확실하게 보여준 게 근자에 관심의 붐을 이루고 있는 단색화와 평면회화다. 여기에는 1960-70년대의 준비기와 1970-90년대에 이르는 적어도 한 세대의 시간이 소요되었다. 이렇게 해서 이 양식이 마침내 세계의 시선을 끌고 있다. 이는 지역적 가치를 강조하는 글로벌리즘의 잣대로 보아서는 당연한 일이라 할지 모른다. 그러나 이 양식이 성공했던 이유의 핵심은 세계성(근대성)과 한국의 지역성(자국 정체성)의 균형을 망각한다면 큰 잘못이라 할 것이다. 


- 김복영(1942- ) 철학박사. 전 홍익대 예술학과 및 동대학원 박사과정 주임교수, 서울예대 석좌교수, 동대학 예술한국학연구소장, 현 김스시각언어과학연구소장. 『현대미술연구』, 『눈과 정신:한국현대미술이론』, 『이미지와 시각언어:21세기 예술학의 모험』외 다수 저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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