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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미술과 문학

전준엽

현대미술은 어렵다. 쉽게 이해할 수가 없다. 미술 자체의 문제로 너무 깊숙이 들어가 버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언저리에 있는 사람들끼리만 즐기는 전문적 집단 언어로 바뀐 느낌이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2014 그림으로 보는 한국문학 공모전 대상작

전영은, <금당벽화>, 화선지에 수묵담채, 65.1x54cm


미술이 하고자 하는 말을 버렸기 때문이다. 말이 없어진 미술은 감상하기가 어렵다. 내용이 없기 때문에 보는 이가 이해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감상하는 미술에서 생각하는 미술’로 바뀐 셈이다. 미술의 주된 관심사가 ‘무엇을 그렸느냐’에서 ‘어떻게 그렸느냐’로 옮겨간 것이다. ‘무엇을 그렸는지’는 감상을 통해 내용을 찾아내면 이해가 되고 때론 감동을 받기도 한다. 그러나 ‘어떻게 그렸는지’는 표현 방식의 문제로, 열심히 관찰하고 작가나 미술평론가의 도움을 얻어야 이해할 수 있다. 이런 가이드라인에 들어서서 작품의 재료나 방법을 찾아내고, 이것이 이론적으로 타당한지 혹은 미술사적으로 가치가 있는지를 따져보는 것이 현대미술에 한 발짝 다가설 수 있는 길이다. 


이처럼 미술이 특정 이야기(내용)를 포장하는 수단에서 벗어나 포장 자체에만 관심을 갖게 되면서 다양한 포장술이 등장했고, 그에 맞춰 포장의 방법과 사용한 재료를 설명하는 매뉴얼이 따라 붙게 되었다. 이 매뉴얼이 미술 평론인 셈이다. 따라서 현대미술은 매뉴얼을 모르면 이해할 수가 없게 된 것이다. 그러나 미술은 탄생 이래로 꽤 오랫동안 이야기를 전달하는 방식으로 진화돼왔다. 신의 말씀을 전하는 이야기부터 신들의 활동상이나 영웅이야기 혹은 왕의 업적을 실감나게 전달하는데 초점을 맞추어 미술은 변화해온 것이다. 동양의 미술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오히려 서양 미술보다 더 오랜 시간 동안 이야기를 중심 삼는 미술이 양식의 변화도 없이 계속돼왔다고 하겠다. 옛 선인들의 교훈적인 이야기나 지혜, 역사적 사실이나 시대적 현실을 담아내는 것이 동양 미술의 주요 관심사였다.


문학을 미술의 주제로 삼는 미술도 있었다. 영국 빅토리아 시대 미술 양식으로 통하는 ‘라파엘 전파’가 그것이다. 미술과 문학의 만남의 가장 성공적인 사례로 평가되는 라파엘 전파는 당시 유럽 미술의 흐름과는 사뭇 다른 행보를 보여준다. 19세기 서양미술사 주류를 틀어쥔 곳은 프랑스였다. 현실 자체를 사진처럼 그리려 했던 사실주의와 빛이 만들어내는 순간적 이미지를 추적하려 했던 인상주의가 새로운 흐름으로 자리 잡아 가던 시절이었다. 보이는 현실을 어떤 방식으로 그릴 것인가 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그런데 영국의 젊은 미술가들은 보이지 않는 세상을 탐구했다. 머릿속에 있는 세계를 그리려고 노력했던 것이다. 그들이 생각으로 품은 것은 르네상스 이전 중세의 회화 어법이었다. 그래서 그룹 이름으로 르네상스 회화의 상징적 화가인 라파엘을 내세웠다. 즉 라파엘 이전의 회화 양식을 당시의 감각에 맞게 발전, 계승하겠다는 뜻으로 ‘라파엘 전파’라고 붙인 것이다. 현실감 물씬 풍기는 사실주의 기법으로 비현실의 세계인 신화나 정신세계인 종교 그리고 문학을 회화의 주제로 삼았다. 따라서 이들의 회화에는 묘한 환상성이 나타난다. 또한 이야기가 풍부한 상황을 하나의 장면으로 압축하기 때문에 상징과 비유가 많이 동원됐다. 특히 셰익스피어 같은 고전 문학은 라파엘 전파의 인기 주제였다. 


서양미술사 주류에서는 다소 비껴난 흐름이었지만 미술과 문학의 절묘한 조화를 보여준 중요한 미술이다. 그래서 시대적 유행과 상관없이 현재까지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다. 이야기를 중심에 둔 이런 미술은 20세기 중후반을 넘어서면서 새로운 흐름으로 다시 떠오르고 있다. 독일의 신표현주의나 미국의 뉴페인팅, 프랑스의 신구상회화 그리고 이탈리아의 트랜스아방가르드 같은 미술 운동이 그것이다. 미술에서의 문학성 부활은 우리 미술계에서도 주목 받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문학의집-서울(이사장 김후란)이 주최하는 ‘그림으로 보는 한국문학’ 공모전은 미술계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국문학을 회화로 표현하는 특이한 성격의 전시회로 올해로 네 번째 행사를 치뤘다. 미술이 잃어버렸던 인문적 시각의 복구와 감성적 에너지를 충전해줄 수 있는 귀중한 기획이기 때문이다.



전준엽(1953- ) 중앙대 회화과, 한남대 교육대학원 졸업. 제 5회 한국미술작가상 수상. 성곡미술관 학예실장 역임. 저서『화가의 숨은 그림 읽기』(2010, 중앙북스)『익숙한 화가의 낯선 그림』(2011, 중앙북스)『나는 누구인가』(2011, 지식의 숲)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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