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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미술관의 가치 증명

임근혜


영국 테이트미술관 총관장 니콜라스 세로타경이 3월초 서울을 다녀갔다. 그의 방문은 테이트모던 터빈홀의 초대형 설치미술 프로젝트 후원에 대한 현대자동차와의 협약체결에 이은 답례 형식으로 알려졌다. 최근까지 다국적 기업 유니레버가 후원했던 이 프로젝트는 끊임없이 관람객 수를 늘이는데 큰 기여를 해왔다. 역으로, 2012년도 530만 명이라는 경이로운 관람객수를 기록한 테이트모던의 인기는 새로운 후원자에게 어필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였을 것이다. 이렇듯 ‘현대차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전기를 맞게된 터빈홀은 기업 후원 없이는 불가능한 예술가의 상상력을 실현해주고, 불확실성을 감수하면서 현대미술을 지원하는 기업의 이미지는 브랜드 가치와 함께 상승할 것이다.

이에 앞서, 현대자동차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도 향후 10년간 120억 원을 지원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문화선진국인 미국이나 유럽에서나 가능할 것 같던 일이 이 땅에서도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그간 우리나라 국공립미술관은 거의 100% 정부 예산으로 운영되었다. 그러나 지난해 말 국가 또는 지자체가 설립한 미술관에서도 기부금의 접수가 가능하도록 박물관법을 개정함에 따라 기업 및 개인 후원의 가능성이 열리고 있다. 공공미술관에 대한 사회적 기대와 요구가 늘어감에 따라, 그 외연을 확장하기 위해 다양한 자원을 확보해야하는 상황에서 앞으로 미술관과 기업의 파트너쉽은 더 활발하게 전개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즉각적인 효과를 기대하는 경우, 후원은 양날의 검이다. 가치 기준을 정할 수도, 결과를 산출할 수도 없는 미적 체험 대신 수치로 측정 가능한 경제효과 및 홍보효과가 미술관의 성공을 가늠하는 가장 중요한 척도가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가운데 점차 가시적 성과가 좋은 대형 미술관과 스타 아티스트에게만 후원이 몰리는 결과도 예상된다.

국가와 기업 이전에도 미술사의 걸작 뒤에는 중세의 교회나 귀족 등의 후원이 존재했고 여하한의 정치적 경제적 영향력을 미쳐왔다. 오늘날의 국가나 기업의 후원 역시 미술의 고유한 가치를 넘어서는 ‘임팩트’를 요구하고 있다. 다시 영국의 예를 들면, 테이트는 테이트모던 개관을 준비하면서 마케팅 전문기업을 고용하여 미술관이 지역 경제에 미칠 영향과 관광수익을 역설했으며, 복권기금 등 전례없는 지원으로 현대미술을 성장시킨 노동당은 미술관이 다문화 및 소외계층 포용 등의 정책을 반영하도록 유도했다.

미술관은 스스로 다양한 가치생산이 필수
거의 100% 정부의 지원을 받고 있는 우리나라 국공립미술관도 해마다 성과지표를 정하고 그에 맞추어 실적을 평가받아오고 있다. 세금으로 운영되는 만큼 명확한 목표를 가지고 투명한 예산집행에 의해 소기의 성과를 산출해야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그 목표와 성과지표가 미술관 고유의 가치가 아니라 인사, 재정, 관리영역과 관람객수, 관람객 만족도, 사업 횟수 등 수치로 환원가능한 지표에 한정되어 있어, 본질과 무관한 부분에 미술관의 자원이 과잉 투입되기 쉽다. 물론, 이는 국공립미술관이 소속된 행정 기관으로서의 극히 일부 기능에 관한 것일 뿐, 예술이 주는 감동과 미적 경험은 수치로 환원할 수도 그럴 필요도 없다.

그러나, 미술관의 펀딩 소스가 다원화되고 다양한 후원처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미술관 스스로가 다양한 가치를 생산해야 한다. 경영효율을 강조하는 공공기관의 제도 개혁 흐름 속에서 영국의 미술관이 생존해올 수 있었던 비결은, 끊임없이 미술 안팎의 영역과 논쟁하고 타협하며 미술관의 존재이유를 설명하고 가치를 증명해왔기 때문이다. 이는 머릿수나 보도횟수를 세는 단순한 방법으로는 불가능하다. 영국 박물관협회나 대학의 관련 학과에서는 관람객 포커스 그룹 스터디 등의 심층적인 방법으로 미술이 대중의 삶에 미치는 영향과 미술관의 존재가 지역 사회에 지니는 의미를 지속적으로 연구하고 있다. 공공미술관은 정부와 기업과의 다양한 파트너쉽을 통해 예술적 상상력을 실현하고 그 이익을 사회에 환원하는 연결고리이다. 따라서, 미술관 고유의 업무라 할 수 있는 큐레이터십뿐 아니라, 대중과 후원자의 기대를 읽고 예술의 중요성을 설득시키는 소통 및 경영 기술 또한 공공미술관의 전문성으로 인식되어야 한다


- 임근혜(1971- ) 큐레이터, 미술관학 런던대 골드스미스 콜리지 큐레이터쉽 석사, 레스터대학 박물관학과 박사과정 중. 서울시립미술관 큐레이터를 거쳐 전시과장으로 재직.『 창조의 제국 : 영국 현대미술의 센세이션』(지안북스, 2009) 저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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