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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한국현대미술에 대한 오해와 진실

정현

다시 비엔날레의 해가 돌아왔다. 거대 규모의 국제전을 통해 세계적 수준의 시각예술의 흐름을 관찰할 수 있는 기회이다. 무엇보다 전시감독이 제시하는 주제와 이에 따른 큐레이팅의 전략 그리고 어떤 작가가 참여하게 될 지 대개의 미술인들의 관심이 모아지는 게 사실이다. 21세기가 시작된 지 십 년이 훌쩍 지났다. 그 사이 대기업의 산업경제기반에 힘입어 한국의 경제 위상은 높아졌고 예술문화행정도 경영 논리와 유사하게 그 규모를 키우는 데 집중했고 무엇보다 더 선진화 된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에 무게를 실었다. 크고 작은 비영리 국제미술행사를 비롯한 아트페어도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고 국공립 창작스튜디오는 물론이고 사립 레지던시의 수도 늘어났다. 세계 어느 도시에서도 서울처럼 쉴 새 없이 전시가 열리는 곳은 많지 않다. 겉으로 보면 매우 생산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실상은 지나치게 많은 미술대학과 그곳에서 해마다 배출되는 예비 작가들, 논문 심사를 위한 전시 등 경력이나 대학 기관의 성과를 위한 경우의 몫을 무시하기 어렵다.


예술인 공동체에서 민주주의의 틀 안으로 잠시 과거로 되돌아가 보자. 1990년대 전후 미술계가 구체적인 시스템을 갖지 못했던 시절, 인사동은 관광지가 아닌 전시의 중심이었고 그곳엔 작가들의 일상과 애환이 함께 했다. 정부 기관의 정책에 의해 작가가 배출되는 것이 아니라 이른바 예술인 공동체가 자발적으로 생산하는 창작의 기운이 미술계를 작동시킨 셈이다. 물론 우리는 시간을 되돌릴 수 없으며 향수의 시선으로 미술계를 진단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시대의 패러다임은 바뀌었으며 경제 중심의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미술은 예전처럼 순진하지 않다. 어느 시대에도 나름의 흐름과 유행이 있듯 현재도 마찬가지지만 실제로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과거의 흐름에는 시스템이 크게 작용할 수 없었고 자본의 의존도도 오늘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적었다. 오늘날 창작은 오롯이 작가 개인의 재능과 역량에 의해 완성될 수 없다. 국공립 창작지원시스템의 의존도는 해가 갈수록 높아지고 일 년 단위로 설정되는 방향성에 따라 작가는 물론이고 행정가, 기획자, 교육자는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다. 다시 말해 한 해의 정책적 방향은 예술의 형태, 주제, 방식 등을 주도하게 된다. 정책을 산출하는 방식은 민주주의의 틀 안에서 이루어진다. 소외된 계층을 (예술의 힘으로) 구원하기 위해, 동시대적 화두와 그 형식을 개발하기 위해, 예술의 공공성을 실천하기 위한 공적 서비스는 민주주의의 정신을 구현하려 한다.



하지만 이러한 정책이 과연 민주주의의 본질일까? 예를 들어 전시의 결과는 관람객의 숫자, 전문가와 비전문가의 비평과 같은 성과 위주의 수치로 통계화 된다. 자크 랑시에르(Jacques Rancière, 1940- )는 민주주의적 합의에 의한 사회를 정치적 공동체라 부르는데, 이 공동체는 결국 획일화 된 ‘윤리적 공동체’가 되어 이방인 혹은 타자가 본질적으로 존재할 수 없는 사회로 분석한다. 이러한 현실은 단순하지 않다. 전 세계가 자본주의의 노예로 전락중인 상황에서 독립적인 개인이 자신의 가치관을 공유하는 공동체의 일원으로 산다는 것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정치적으로 환대받는 다양한 공동체의 삶은 실재라기보다는 기획된 허구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 한 예로 창작스튜디오의 경우, 아직 경험과 경력이 부족한 작가 지망생에게는 좁디좁은 문에 불과하다. 심지어 일부 특정 작가들은 한국의 주요 창작스튜디오를 거의 다 섭렵하는 경우도 종종 발견된다.


한국현대미술에 대한 자문

물론 어느 정도 이름이 난 작가들의 삶이라 해도 경제적 여유나 창작적 환경이 풍요롭지 않다는 사실을 모르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연 예술가를 위한 사회 시스템이 어떤 철학을 가지고 설정되었는지 궁금하다. 랑시에르는 오늘의 윤리학이 수많은 이견들의 합의하는 장치가 아니라 반대로 그 차이를 드러내는 데에 있다고 주장한다. 즉 한국현대미술의 현장에서 생산하는 다양한 사건들(정책, 창작스튜디오, 기획, 전시, 담론, 미디어 등)은 사실 그들이 주장하는 것과는 달리 그것을 감추거나 혹은 민주주의적 이상향이 가능하다는 착시 현상을 만드는 것일 수 있다. 미술에 대한 결과론적 의미를 따지기 전에 ‘진정한 윤리’가 무엇인지 자문해 본다.



정현(1968- ) 파리1대학 팡테옹-소르본느 예술학 박사. 테이크아웃드로잉 아트디렉터 역임. 현 동아대, 성신여대, 한양대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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