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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6·25와 한국미술에 대한 단상

박응주

한국전쟁 60주년을 맞이한 올해에는 정전협정이나 DMZ 붐이라고 할 만큼 전시들 -‘리얼 디엠지 프로젝트 2013 : 보더라인’ (7.27-9.22, 강원 철원 DMZ 지역 외), ‘백령도 525,600 시간과의 인터뷰’ (8.14-10.6, 인천아트플랫폼), ‘기억·재현, 서용선과 6.25’ (6.24-8.25, 고려대박물관), ‘DMZ 평화의 길을 가다’ (8.13-8.18, 수원미술전시관)-이 줄을 이었다. 갑자기 사회적 도덕감이 예술가들을 엄습했고 그래서 사회적 미술들이 한국미술에서 중요하게 떠오른 걸까? 이렇게 물었다 하여 필자가 이들 사회적 미술의 붐 사태 자체를 시비 걸자는 건 아니다. 더 설명하라면, 오히려 ‘일상’이 되어야한다는 쪽이며 어떤 연유에서 각 전시들이 기획되고 개최되었는지는 모르나 어딘가 당장 눈앞에 주어진 상황을 인식과 판단의 결정적인 조건으로 간주하는 ‘프레임 안’에서의 수고가 될지도 모른다는 일말의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산을 내려와 돌아가는 길이 될지라도 각론이 아니라 총론, ‘붐’을 둘러싸고 있는 상황과 역학을 살펴보는 일은 유의미할 것이다. 그것은 단연코 한국전쟁의 기원과 그로인한 우리 사회의 주형(鑄型)에 대한 고찰이 될 것이다. 

 

정치학자 박명림에 의하면, 지금까지 우리 (남·북의)사회를 60년간 관통해온 최고 최대의 이데올로기를 만들어온 것은 6·25를 둘러싼 기억전쟁이었다(『한국전쟁의 발발과 기원 Ⅰ·Ⅱ』, 나남, 1996). 예컨대 “누가 먼저 전쟁을 일으켰느냐?”만을 기억하려는 6·25담론, 6·25기억체제는 공식적 담론으로서 이와 다른 여타의 모든 해석을 차단하는 억압의 무기로 쓰였으며 이에 도전하는 세력은 ‘빨갱이’(북한에서라면, ‘반동’)라는 낙인을 찍어 배제해나갔고, 이를 두려워하는 사회 전체를 옥죄는 기제는 정치나 경제, 사회, 문화, 이념 등 모든 국면에 있어 기형적인 사회, 보수 일변도의 사회를 틀짓게 했던 것이다. 이것이 남북 체제 모두의 정치적 실정이나 오류를 정당화하게 해준 편리한 방패막이로 쓰여 졌던 것 또한 불문가지이다. 그 토대에 둥지를 틀고 있는 관념은 그 행태에 걸맞지 않은 고귀한 이름을 갖고 있는데, 그것은 ‘순정주의’, 상대에 대한 가장 강력한 반대만이 나를 가장 정당한 것이 되게 하고 가장 순수한 것이 되게 하리라는 ‘순결주의’이다. 이승만의 북진통일, 김일성의 남진·무력 통일론의 출발점이자 “너 때문에 동족상잔의 전쟁이 일어났고 민족의 단일성이 파괴되었다.”고 서로를 비난하는 스산한 막장으로 치닫게 했던 것도 바로 이것이었다. 



우리의 이 모순들의 뒤얽힌 양상이란 무엇이 먼저랄 것도 없이 그야말로 뒤엉켜있는 듯하다. 국제적으로 불리했던 처지를 마침내 분단이라는 최악의 형태로 봉인하고야 말았던 한국민들의 어리석은 지혜와 전략이 먼저인가, 만인에 대한 만인의 적대에 육박할만큼 강퍅한 배타적 집단동일성을 만들며 살아가고 있는 오늘날의 우리 모습을 조각한 분단 기억체제를 독점한 그 시스템이 먼저인가? 악의 재생산 구조인 이곳에서 대체 우리가 알고 있는 건 무엇일까? 


우리 예술이 이 무지로부터 책임 면제되어 저 혼자만 유유자적 즐거울 권리는 그 어디에도 없다. 우리 예술이 어려울 수밖에 없는 것은 이 때문인 것이다. 그것은 이 한국사회의 주형으로부터의 ‘탈주’에 가까운, 실로 쉽지 않은 일을 감당해야 하는 무겁고 신산한 길일 수밖에 없을 것이 분명하다. 이는 예비된 미학, “자, 사회가 중요합니다.” “아니, 예술이 중요합니다.”들은 아직 우리 것이 아니라고 실토하는 일이기도 하다. 실증주의적 르포르타주처럼 ‘사실 조서’로서만도, 순수한 감정의 언어로 스스로를 긍정하는 영혼의 순박한 언어로서만의 것도 우리의 ‘전체’를 성찰하기엔 어딘가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예비된 미학, 그것은 늘 편취되고 매매되고 팔아넘겨 질 간계를 가면 뒤로 숨긴, 그 잘난 우리 역사라는 궤도 열차 안에서의 ‘이 길이냐 저 길이냐’의 허무한 논쟁일 뿐이곤 했기 때문이다. 요점은, 궤도 열차에서 뛰어내려야 하는 것이다. 우린 상처를 입을 것이다. 그 상처로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그곳에서 우리는 제 2의 세계가 튀어나오기를 바란다. 추하고 손상된 폐허의 대지 안에는 가해자로서의 세계가 각인되듯이 역사적 경험들의 농축이 본질을 촉발시키는 풍부한 이미지로서 드러나게 하는 힘같은 것을 말함이다. 모든 기성의 관념을 의심하고 모든 명명된 이름들을 다시 물어가는 길, 그리하여 우리 질문의 행렬 어디쯤엔 ‘이 나의 조국이 국가이기는 하는가?’(로베르토 볼라뇨,『칠레의 밤』, 열린책들, 2010)라는 물음에 다다를 수 있기를 기대한다.



박응주(1964- ) 홍익대 예술학 석사. 고암학술논문상 우수상(2001) 수상. 경기문화재단 심사위원 역임. 현 서울문화재단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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