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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부산으로 나들이 간 화랑미술제

서성록

1960년대 초의 일이다. 한 조각가가 서울에서 학업을 마치고 고향으로 내려갔다. 동네사람들에게 조각을 전공했다고 했더니 한번은 이웃이 찾아와 “그럼 내 도장을 파줄 수 있겠네”하더란다. 그 조각가는 말문이 딱 막혔고 그 뒤로 조각단체를 만들어 그 고장사람들을 계도(啓導)하는데 앞장섰다. 남의 이야기니까 웃으면서 말하지만 당사자로서는 아연실색했을 것이다. 지금도 형편이 이러하다면, 문제가 심각할 것이다. 미술인들의 노력과 지자체의 미술 프로그램, 그리고 미디어의 발달로 미술에 관한 이해가 예전보다 높아졌다고 믿고 싶다. 그래도 서울에 비하면 여전히 낙후되어 있는 것이 우리나라 지방문화의 현주소다.


아트페어를 부산 벡스코(BEXCO)에서 열기로 한 화랑협회의 결정은 ‘모험’에 가까웠다. 서울이야 어느 정도 미술애호가와 컬렉터가 형성되어 있다고 하지만 부산의 경우는 다르다. 부산은 아직 컬렉터 층이 뚜렷이 형성된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사실을 무시하고 화랑미술제가 나들이를 나가 예상 외의 성과를 거두어들였다. 행사(3.6-3.10)가 진행된 단 5일 만에 무려 650여 점이 팔려나갔고 입장객도 서울행사보다 1.7배나 늘어난 2만 1천 여명이 방문했다. 눈앞의 숫자보다 중요한 것은 부산 미술시장의 잠재력을 확인시켜 주었다는 점이다. 사실 지방이 잠잠한 것은 그들의 요구를 만족스럽게 충족시키지 못해서이지 미술에 무관심해서가 아니라는 걸 깨닫게 해주었다. 미술인구의 저변을 넓혔다는 긍정적 평가 외에도 화랑관계자들에게는 앞으로 지방에서 열릴 화랑미술제에 대한 낙관적 시각을 안겨주었다.



화랑미술협회는 이번 아트페어를 착실히 준비해왔다. 우선 양적인 면에서 5백여 명의 작가가 무려 2천여 점을 출품하였다. 리히텐슈타인, 도날드 저드, 신디 셔먼, 앤디 워홀, 데미안 허스트와 중국, 일본, 베트남의 해외 화가들, 김환기, 손상기 같은 작고작가, 김종학, 김창열, 박서보, 이우환, 송수남, 이강소, 곽훈 같은 국내의 원로화가들, 그리고 김덕기, 김은진, 안윤모, 손진아, 박형진, 정보영, 홍경택, 정연두, 임만혁, 장태묵, 이정웅 같은 젊은 화가들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었다. 또 한운성, 차명희, 강익중, 김영세, 석철주, 김복동 같은 작가들이 방문객을 맞아주었다.


화랑미술제의 두가지 특징 

전시를 둘러보면서 두 가지 특징을 확인할 수 있었다. 첫째는 획일적인 모티브에서 다양한 모티프로의 변모다. 화랑미술제 말고도 여러 이름의 ‘아트페어’에서 통상 접하는 것이 상투적인 꽃그림이다. 종래의 꽃그림에서 벗어나 인물과 풍경, 그리고 추상 등 그림경향이 다채로와진 것은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두번째는 극사실 양식이 게걸음을 걸었다는 것이다. 그간 미술계는 ‘무더기 극사실’의 출몰로 우려를 자아냈다. ‘창의력’을 우선해야 할 젊은 작가들이 앞 다투어 극사실에 뛰어들었으니 말이다. 이런 우려를 감안한 탓인지 자기만의 목소리를 담아낸 작품들을 심심찮게 만날 수 있었다. 하지만 ‘극사실의 뜀박질’이 멈춘 것인지는 아직 속단할 수 없다.


부산에서 열리는 행사이니만치 부산과 대구를 거점으로 활동하는 작가들이 부각되었다. 부산지역의 공간화랑, 조현화랑, 마린갤러리, 피카소갤러리, 갤러리 몽마르트, 코리아아트, 가나아트갤러리, 도시갤러리 등 8곳에서 대표작가를 선보였고, 대구 지역에서는 갤러리 소헌 & 소헌컨템포러리, 갤러리신라, 공산갤러리, 동원화랑, 봉성갤러리, 석갤러리, 송아당화랑, 신비화랑, 예송갤러리, 영천의 갤러리미루나무에서 각각 대표 작가를 참여시켰다. 또 이번 미술제에 차세대 유망주를 발굴하기 위해 특별히 '아트 人부산'전을 마련한 것은 의미있는 시도로 평가된다. 이번 일회에 그치지 말고 이들에게 꾸준한 관심과 기회를 주어 역량있는 작가로 키워갔으면 한다. 다른 나라의 예처럼, 기왕이면 미술애호가들을 위해 ‘작가와의 만남’이나 ‘미술교양 프로그램’도 넣었으면 어떨까 싶다. 끝으로, 올해 27회를 맞이한 화랑미술제가 그림을 유통할 뿐만 아니라 미술이해를 돕고 나누는 모임으로 발전할 때, 우리 곁에 더 가까이 있게 되리라 생각한다.



서성록(1957- ) 홍익대 미학 석사. 월간미술 미술평론부문 대상(2001) 수상. 국립현대미술관 책임운영위원 역임. 현 안동대 미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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