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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리얼리즘으로서의 커뮤니티 아트

최범

예술은 진실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 그것이 고대의 ‘선미일치(善美一致, Kalokagathia)’사상에 따른 것이든 19세기의 리얼리즘이든 20세기의 ‘시네마 베리테(Cinema Verite)’이든 간에 예술의 역사에는 진실한 것과 아름다운 것이 동일하다는 관점이 이어져 오고 있다. 물론 이런 경향에 반대되는 예술관도 있다. 예술과 윤리는 다른 것이며 예술이란 어디까지나 형식적인 완전함과 감성적 만족이 중요한 것이지, 그 아닌 것을 추구하는 것은 예술의 순수함을 해친다는 관점이다. 보통 앞의 것을 내용주의, 뒤의 것을 형식주의라고 부른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요즘 주목받고 있는 커뮤니티 아트는 내용주의에 속한다. 내용주의란 말 그대로 형식이 아니라 내용이 중요하다는 입장이다. 내용이란 물론 여러가지일 수 있다. 그것은 윤리일 수도 있고 이데올로기일 수도 있으며 또 다른 어떤 것일 수도 있다. 예술 사조에서 내용주의를 대표하는 것은 리얼리즘이다. 리얼리즘이란 어떤 의미에서든 예술은 현실이라는 내용에 충실해야 하며, 그럴 때 진실과 아름다움을 얻을 수 있다고 믿는다. 나는 커뮤니티 아트가 미학적 개념으로나 예술적 계보로 볼 때 리얼리즘에 속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러한 나의 주장은 상당히 의외로 받아들여질 것이다. 왜냐하면, 통상 커뮤니티 아트란 예술의 실천 형태의 하나이지 리얼리즘이니 모더니즘이니 하는 미학적 개념과는 무관한 것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커뮤니티 아트야말로 리얼리즘 예술의 계보를 잇는 것이며, 그중에서도 가장 핫(Hot)한 실천 형태라고 판단한다. 왜? 그것은 오늘날 커뮤니티라는 것이 예술의 리얼한 대상이 되었으며, 이에 접근하는 것은 전통적인 리얼리즘 예술이 추구해온 미학과 진실의 일치라는 이념을 본질적으로 계승하는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물론 리얼리즘 미학에서 말하는 리얼한 것, 즉 현실은 시대에 따라 계속 바뀌어왔으며, 커뮤니티라는 현실 역시 과거 그대로의 것은 아니다. 그런데 바로 그 지점이 오늘날 커뮤니티 아트를 가장 대표적인 동시대의 리얼리즘 예술로 만드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민족미술인협회의 연례전인 ‘조국의 산하’가 아니라, ‘아트인시티’와 같은 공공미술 프로젝트가 리얼리즘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다시 커뮤니티 아트가 리얼리즘인 이유를, 나는 지금 이곳의 커뮤니티가 ‘문제적 현실’이라는 점에서 찾는다. 18세기 영국에서의 풍경화의 탄생이 풍경의 파괴를 증언하는 것처럼, 커뮤니티 아트에 대한 관심은 지금 이곳의 커뮤니티에 뭔가 중대한 문제가 발생했음을 증명한다. 바로 이러한 문제 상황이 커뮤니티에 대한 관심을 반사적으로 불러일으키고 있으며, 이러한 문제 상황을 문제로 삼는 예술이 이른바 커뮤니티 아트가 아니겠는가. 그래서 커뮤니티 아트는 리얼리즘 예술이다.



커뮤니티 아트는 두 가지 측면을 가진다. 하나는 대상의 측면이고 다른 하나는 태도와 방법의 측면이다. 커뮤니티 아트는 먼저 커뮤니티를 대상으로 하는 예술 활동으로 인식될 수 있다. 그러나 커뮤니티를 대상으로 한다고 해서 모두 커뮤니티 아트라고 할 수는 없다. 커뮤니티 아트가 커뮤니티 아트이기 위해서는 커뮤니티와 예술을 보는 일정한 태도와 고유한 방법이 있어야 한다. 커뮤니티 아트는 무엇보다도 먼저 예술의 한 태도이며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커뮤니티를 대상으로만 삼을 뿐 커뮤니티를 보는 태도와 고유한 방법이 없는 작업이 너무 흔하다. 그것은 커뮤니티를 리얼한 것으로, 즉 살아 있는 현실로 보지 않기 때문이다. 커뮤니티의 구체성을 무시하고 서로 다른 커뮤니티에 획일적인 방법을 기계적으로 적용하는 것이다. 이것은 커뮤니티를 죽은 현실로 보는 것이며, 커뮤니티 아트를 리얼리즘이 아니라 형식주의 미학의 희생양으로 삼을 뿐이다.


커뮤니티 아트는 대상을 고유하게, 구체적인 것으로, 살아 있는 것으로 접근해야 한다. 모든 커뮤니티는 공동체적이면서도 개체적인 것이며 공통적이면서도 구체적인 것이다. 커뮤니티의 이러한 성격에 섬세하게 반응하는 것이 커뮤니티 아트의 출발이 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모든 예술적 작업이 대상의 섬세한 결을 읽어내는데서부터 시작하듯이, 커뮤니티 아트 역시 대상을 고정되게 파악하지 않아야 하며, 하나하나 다르게 접근해야 한다. 커뮤니티 아트는 커뮤니티를 대상화하지 않는 하나의 태도이자 방법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럴 때 커뮤니티 아트는 커뮤니티라는 살아 있는 현실에 대한 반응이자 리얼리즘의 한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최범(1957-) 홍익대 미학과 석사. 월간디자인 편집장,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 예술감독 역임. 현 디자인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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