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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미술계의 ‘직함 해저드’

김복영

우리 미술계의 지금과 같은 양적인 확장일로의 모습은 건국이래 처음보는 일일 것이다. 이를 뒷받침할 관리체제의 정비 또한 시급한 문제가 아닐까 하는 염려가 앞서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직함의 남발이나 남용을 걱정하게 되는 것도 그 하나의 일환이라 할 수 있다. 비근한 예를 하나 들어보자. 시장경제 체제의 도입 후 재래시장이 퇴조하면서 크고 작은 시장이 새로 등장했던 것을 기억할 것이다. 당시는 초기시절인데다 일천한 경험 때문에 아주 난센스 같은 일이 있었다. 동네 구멍가게를 칭하는 이름으로 ‘큰 시장’이라는 뜻의 ‘슈퍼마켓’을 사용한 것이다. 이 명명방식은 당시만 해도 분명히 작은 것을 큰 것으로 과장함으로써 일반의 주목을 끌려고 한다는 치졸한 발상임을 일반에게 상기시켰다. 지금껏 대안 이름을 제시하지 못한 채 같은 이름을 사용하고 있지만, 이 이름을 허용했던 당대의 심리가 앞으로 우리의 문화예술을 관리하는데서도 그대로 연장된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우려하는 목소리가 크다.


이 우려를 현재 우리 미술계를 관리하고 운영하는 기존의 매체나 기관의 명칭, 나아가서는 이들 업무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직함에서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예컨대 일부이긴 하나 갤러리를 호칭함에 있어 00갤러리라 하지 않고 00미술관이라는 명칭을 사용한다든지, 갤러리의 주인(사장)을 미술관의 관장과 혼용해서 사용하는 경우는 이미 다반사가 되었다. 구멍가게만한 갤러리의 사무원을 미술관에 종사하는 학예원과 동급으로 부르는 등 ‘직함 해저드(title‐hazard)’현상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예술감독, 평론가의 남용

작금에는 ‘예술감독’이라는 신종 직함이 급부상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예술의 전당이 이 직책을 도입하면서부터가 아닐까 싶다. 외국에서는 스포츠계의 구단 이외에 감독이라는 명칭을 사용하기는 베니스비엔날레가 전시 총감독을 임명하면서부터 이다. 이 경우는 국제기구다운 명칭일 뿐만 아니라, 이에 걸맞는 직함의 역사와 명성을 착실히 쌓아오고 있는 중이다. 이 직함의 권위는 이제 각종 비엔날레, 트리엔날레, 도큐멘타 등 국제성을 띤 전시기구를 대표하는 이른 바 네임밸류의 정당성과 역사성을 크게 부각시키는 데 이르렀다. 그러나 앞의 사례에서와 같은 국내외 대형기구가 아닌, 아주 작은 규모의, 이를테면 지방자치기구 산하의 소규모 전시관이나 심지어 갤러리 수준의, 그것도 단순히 상업을 목적으로 운영하는 기구가 산하 직책명을 감독이라는 이름을 사용한다면 —현재 이미 나타나고 있다— 이는 엄청난 직함 해저드라 할 수 있다. 좀더 과장해서 말해 국내외 공인 명칭을 도용(?)하는 것임에 진배없다.


직함 해저드 현상은 미술행정 현장에서도 과거보다 현저하게 나타나고 있다. 이를테면 학예원이 자신들을 곧 평론가로 자임한다든지, 평론의 경우 몇 번쯤 취미 삼아 기사를 쓴 경험을 과대평가해서 스스로를 평론가로 자임해버리는 직능 해저드는 근자에 이르러 가중일로를 치닫고 있다. 문제는 직함, 다시 말해서 직책의 이름 자체가 아니라 그 이면에 도사리고 있는 우리의 문화마인드의 정체성이다. 정체성은 한 번의 해이로, 경우에 따라서는 영원히 회복되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이 경우 ‘해이(hazard)’란 전문지식과 정직성을 외면하고 침소봉대(針小棒大)해서 사안을 짐짓 비전문성적 사이비근성이나 우연에 맡기려는 발칙한 행동을 뜻한다. 모처럼 문화중흥기를 맞아 작지만 문화경영체계의 정통을 위협하는 요인이 아닐 수 없다. 사실로 말해, 심각한 직함도용이거나 오남용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제 우리는 이러한 일이 우리의 미술계의 발전체제에 어떠한 해악을 끼칠 것인지 한번쯤은 심각하게 되돌아보아야 한다. 일의 규모와 내용이 작으면 작은대로 직함 또한 순박하고 수준에 맞는 호칭을 선택하고 이를 소중하게 사용할 줄 알아야 한다. 그래서 우선은 우리의 직함문화를 우리 나름의 정당성과 정통성을 갖는 위치에다 자리매김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우리의 의식부터 달라져야 한다. 우리 스스로가 어렵게 구축한 현대미술의 정통성을 어리석게도 직함의 오남용, 나아가서는 침소봉대로 해이시키는 우를 범해서는 안된다. 우리의 정통성을 위해 각자의 역할기대가 무엇인지에 따라 정(正)한 이름을 붙일 줄 아는 작은 일부터 추스릴 수 있어야 한다. 작은 것을 크게 보이려는 과대망상증을 당장 버려야 한다. 작으면 작은대로 크면 큰대로 사실을 정직하게 보고 정확하게 이름을 붙일 줄 아는 성실성을 가져야 한다. 모두가 자제해야 한다. 부질없는 용처를 정리하고 과중한 명칭일 경우에는 이를 정정할 줄 알아야 하며 그 자리에 앉혀야 할 사람 또한 마땅히 그럴만한 경륜과 자질을 갖고 있어야 한다. 그럼으로써 구멍가게를 슈퍼마켓으로 부르는 난센스가 우리 미술계의 경영관리 체제에서 재연되지 않도록 해야한다.



In art arena title-hazard


As our interests in culture and art are expanding quantitatively now, we can see a peculiar look for participants in their competence concerned to use their title very irrelevantly. It is the case that there is reason to exaggerate the name of their roles according to our time honored not good habit to overstate themselves. Some of so bad examples are to besuggested as follows. First is the case to over title the name of agency or medium, for an instance, gallery as museum. Second is the case to over name the practicioner in the field, e. g. clerk of the gallery as curator of museum. Recent one is to call local authorities.



김복영(1942- ) 서울대 미학과 석사. 현 한국예술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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