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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대안공간의 변화 '역동'이 필요하다

김성희

대안공간 풀, 루프, 프로젝트스페이스 사루비아다방이 동시에 개관했던 1999년 당시만 해도 어색했던 ‘대안공간’은 이미 우리 미술계에 익숙한 단어가 됐다. 최근 몇 년간 큰 숫자로 급증한 대안공간들이 사단법인 비영리전시공간협의회를 조직했으며 점점 안정적인 운영의 틀을 잡아가고 있다. 이러한 시점에서 대안공간을 살펴본다고 하는 것은 그 역할과 방향에 대한 중간 평가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의 대안공간은 그 뿌리를 두고 있는 미국의 것과 조금은 다른 문맥에서 생겼다고 하는 것은 이미 주지하는 사실이다. 미국의 대안공간은 1960년대 저항정신이 일구어낸 반문화운동의 일환인 대안운동을 수용하는 공간의 의미로서 미술가들의 공간, 미술가들의 조직이라고도 불렸다. 그러나 한국의 대안공간의 태동은 1996년 IMF이후에 두드러진 미술계의 불황으로 인한 작가들의 창작활동 침체와 그 동안 인맥과 학맥위주로 운영된 미술계 행태, 기존의 공간들의 작가와 수용자들이 만나는 장소로서 그리고 다양한 미술 활동의 근거지로서의 역할 부족 등의 문제점을 극복하고자 하는 절실한 필요성에서 출발했다. 장르에 구분 없이 인맥과 학맥의 관계성을 배제한 공정한 심사와 전시에 대한 적극적인 후원을 표방하는 프로젝트 스페이스 사루비아다방과 복합문화를 수용하는 열린 공간으로서의 기능수행에 목적을 두고 있는 루프, 다양한 만남과 상호교육의 장소로서의 역할에 중점을 두었던 대안공간 풀 등은 우리 미술계가 앉고 있는 문제점을 그대로 반영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태동된 대안공간들은 비제도권 작가들에게 전시공간을 제공해 줌으로써 잠재력있는 작가들의 작품세계와 사조를 화단에 알릴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주거나 지원해 주는 제도적 장치로서의 역할을 목적으로 7년간이라는 세월을 질주해왔다. 제도란 일종의 사회를 움직이는 프로그램과 같은 것이기 때문에 한국의 대안공간이라는 제도적 장치는 미술계에서 창작이라는 에너지를 발굴해 내는 쎈서 역할을 충분히 수행해 왔다. 그 결과 한국 대안공간은 제도권 미술과 상업갤러리의 여러 활동적 유형 및 프로그램에도 영향을 끼치게 되어 결국 비주류에 의한 주류의 개종이라는 역전된 상황도 가져왔다. 현재 대안공간 출신 젊은 작가들의 눈부신 활동 역시 이것을 검증해 주고 있으며, 요즈음 젊은 작가들의 미술시장 장악 속도를 통해서도 이를 충분히 느낄 수 있다.


대안공간의 변화

그러나 대안공간의 활동이 과연 지금에 보여준 화려한 성과에만 안주할 수 있느냐 하는 점이다. 이러한 문제제기는 1970년대부터 30여 년간을 풍미했던 미국의 대안공간들의 현 상황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들이 표방했던 당시의 실험적인 미술들 미술사의 주류로 편입되었고, 복합문화적이고 실험적인 젊은 미술가들도 어느 정도는 미술관 영역에서도 소개되는 등 예술적 여건이 예전과는 상당히 달라졌으며 New Museum of Contemporary Art와 P.S. 1처럼 몇 몇 대안의 공간들이 대형화되면서 자체 컬렉션을 가지고 미술관의 체제를 갖추게 되면서 대안적 임무에 모순되는 공간의 위계화된 조직화가 대안공간의 영역 안에서 재영토화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낳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은 현재 한국미술계에 유사한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 말하자면 대안공간 출신 젊은 작가들의 급속한 상업화와 그로 인한 미술계 세대 간의 이질화 현상과 대안공간이 제도권과 유사한 하나의 권력으로 자리 잡아가는 부분에 대한 우려이기도 하다. 또한 현재 대안공간을 표방하면서 상업갤러리의 운영체제를 일부 도입하는 애매한 절충식 대안공간들이 늘어나면서 대안공간이 초기에 지녔던 비영리성의 개념과 취지가 유지될 수 있느냐하는 문제도 제기되고 있다.


어려움에 처했던 대안공간들의 운영이 안정돼가는 이 지점에서 문제점을 부각시키는 것이 적절한 것인지는 재고해 봐야하겠다. 그러나 ‘대안’이 지니는 원래적 의미가 동시대 미술과 미술가들 나아가서는 사회구성원들의 여러 억압 조건들을 개선시키는 것이라고 볼 때 이 시대가 지니는 문제점에 대한 대안을 끊임없이 탐색해 가야 한다는 것 또한 매우 중요한 과제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대안의 의미가 '정체'가 아니라 '역동'의 개념에서 출발했기 때문이다.



김성희(1958- ) 이화여대 조형예술학부 박사. 갤러리서미 디렉터, 미디어시티서울 국제심포지엄 디렉터 역임. 현 홍익대 미술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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