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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만들기는 쉬워도 부수기는 어렵다

윤범모

공공미술
우리들은 쉽게 생각한다. 만드는 것은 어렵다고. 그럴지도 모른다. 만드는 것은 창조가 아닌가. 음, 창조라면 얼마나 어려운 일일까. 그런데 세상에 만드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파괴가 아닐까. 왜 부수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가. 사실 부셔 본 적이 있었던가. 공공미술 분야를 두고 하는 말이다. 거리를 걷다보면 만나게 되는 졸작과 나쁜 의미의 문제작들, 이름하여 공공미술품이란다. 미술이란 허울을 쓴 이들 시각공해를 어떻게 할 것인가. 언제까지 참고 살아야 할까. 사실 손을 뗀 작품을 부수기는 쉽지 않다. 개인 작업실에서도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좋은 작품은 무수한 실패와 파괴 속에서 나오는 것이 아닌가. 명작은 실패라는 밥을 먹고 나오는 결과물이다. 과감하게 부실줄 아는 작가가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있다. 그런데 화랑가를 순례하다 보면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경우가 많다. 완성은커녕 습작을 내걸고도 작품 발표라고 우기기 때문이다. 참으로 안타까운 풍경이다. 자원 낭비에 시각공해인줄도 모르고 전시회랍시고 열면서 주변을 시끄럽게 한다. 이와 같은 개인 작업의 연장선상에서 이름도 좋은 공공미술과 만나게 된다.


개인 작업은 글자 그대로 개인적 차원에서 처리할 수 있어 문제의 심각성이 약할지 모른다. 하지만 공공미술 분야는 공공성 때문에 개인의 차원을 넘어선다. 하여 함부로 건립할 수 없는 것이 공공미술 분야이다. 우리는 그동안 악명(?)도 높은 1%법 덕분인지, 아니면 급상승한 문화의식(?) 때문인지, 공공장소에서 이른바 환경 조형물을 쉽게 만날 수 있게 되었다. 거리의 곳곳마다 미술품으로 장식되어 있다. 아름다운 우리의 도시이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이들 조형물들은 문제투성이다. 건물주야 건축허가라는 사업성과 연결되어 그렇듯 조악한 물건(작품)을 빌딩 앞에 세웠는지 모르지만 거기에 ‘납품’한 작가들은 누구인가. 과연 걸작은커녕 작품으로 내놓은 것인가, 돈벌이 수단으로의 상품을 내세운 것인가. 도대체 무슨 물건인가. 세우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우리 미술계에서 커다란 문제점의 하나는 양적 팽창이다. 천천히 만들어도 된다. 무엇이 그리도 급한가. 여유 있게, 그러면서도 치밀하게 조성하는 분위기가 중요하다. 우리 세대에 어렵다면 다음 세대로 넘기는 것도 미덕이다. 대형 건물에 설치해야 하는 조형물, 그것의 폐해는 너무나 크다. 이를 중앙 집권화하여 또 하나의 권력기관을 만들기에 앞서 우리가 할 일은 바로 이들 시각공해물의 사후처리이다. 어떻게 할 것인가. 우리 세대에 세운 공해는 우리 세대가 책임져야 할 것 아닌가. 후세로 넘기면 문제는 더욱 복잡해진다. 만드는 일에 가담한 자들이 살아 있을 때 사후 처리까지 맡는 것이 순리이다. 이 대목에서 공론화 작업이 필요하다. 시민운동이라는 것이 있다면 이와 같은 분야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환경조형물 실태 조사서 필요 
현재 우리가 필요한 것은 환경조형물의 실태조사이다. 백서와 같은 충실한 자료집이 절실하다. 그리고 본격적인 평가 작업이 뒤따라야 한다. 조형물 관련의 문제점을 오늘에 이르기까지 확대시킨 것은 본격적인 평가 작업이 누락되었기 때문이다. 냉정한 비판이 있는 곳에 아름다운 창조의 꽃이 핀다. 우리는 평가 작업을 통하여 우리 시대 최선 혹은 최악의 조형물 목록을 만들 수 있다. 그야말로 철거 대상의 조형물 목록을 작성할 수 있다. 실질적으로 철거에 앞서 이 같은 작업은 커다란 교훈을 줄 것이다. 함부로 만들지 말라. 돈벌이라 하여 함부로 조형물을 세우지 말라. 역사는 그대들의 행동을 평가한다. 이 같은 교훈을 얻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환경조형물의 백서 발간과 평가 작업에 본격적으로 착수해야 한다. 특히 동상이나 영정과 같은 기념조형물의 실태조사는 매우 중요하다. 동상은 공공성이라는 차원에서 더욱 신중하게 접근해야할 부분이다. 거리에 넘쳐나는 수준 미만의 기념조형물들, 이를 어떻게 할 것인가. 친일미술가가 만든 항일지사의 동상, 언제까지 방관만 할 것인가. 공공장소를 차지하고 있는 철거 대상의 졸작과 문제투성이의 기념상들, 언제까지 방치할 것인가. 4.19혁명 당시 이승만동상이 시민의 손에 의해 철거되었듯이 우리는 진정 혁명을 필요로 하는가.

현 단계의 우리에게 절실한 것은 ‘만들자의 방법론’이 아니다. 그동안 너무나 많은 조형물을 세웠기 때문이다. 이제 호흡을 조정하면서 새로운 길을 모색해야 한다. 하여 현황 파악을 위한 조형물 실태조사와 평가 작업 그리고 폐기대상 작품의 선정과 사후 처리, 이 같은 어려운 일을 고민할 때이다. 우리 세대만이 동상을 건립할 수 있고 영정을 봉안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굳이 1%법을 두어 악순환의 졸작들로 금수강산을 폐품 강산으로 만들 필요는 없으리라. 정말 만들기는 쉬워도 부수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과연 누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 것인가.


- 윤범모(1950- ) 동국대 미술사학 박사. 예술의전당 미술부장, 우리미술문화연구소 소장, 호암갤러리 큐레이터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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