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컬럼


  • 트위터
  • 인스타그램1604
  • 유튜브20240110

연재컬럼

인쇄 스크랩 URL 트위터 페이스북 목록

(85)사진의 나라, 대한민국

최연하

지금, 소통과 표현의 수단으로 사진만큼 쉽고 강력한 미디엄(Medium)이 있을까. 예술의 전 장르에서 생산자와 향유자가 이만큼 일치하는 분야도 드물 것이다. 가히 사진천국의 시대라 할 만하다. 사진을 찍고, 보고, 받고, 보내는 일은 이제 일상이 되었다. 한 장의 사진에 한 개인의 삶의 공간과 시간들이 차곡차곡 쌓여가고 디지털파일로 정리된 ‘e-photo diary’를 보며 지난 시간을 회상하는 풍경도 보여 진다. 개인의 내밀한 기록의 도구, 혹은 먼 나라에서 일어나는 사건·사고를 실시간 공유할 수 있는 저널리즘의 매개, 혼신으로 담아낸 레이어가 풍부한 한 점의 사진작품까지 이 친숙한 미디엄의 활개는 더욱 넓고 화려해지고 있다. 이처럼 사진은 강력한 대중성과 예술성을 무기로 고공행진 중이다. 사진의 민주화시대를 개화시킨 데에 DSLR(Digital Single Lens Reflex)카메라 기술의 눈부신 발달과 함께 해파처럼 촘촘한 인터넷 망을 들 수 있을 것이다. 그 사용자가 400만여 명을 웃돈다니 대한민국은 카메라에 의해 발굴되고(당하고) 노출되고 있다고 할만하다. 이제껏 지금과 같이 많은 사진작가들이 목소리를 높였던 적도 없었다. 우리나라에서 사진이 미술계에 활발하게 편입된 시기가 10년 안팎임을 생각하면, 지금 사진은 놀라운 변화를 거듭하며 전체조형예술에서 가장 기초이자 중심이 되고 있다.



사실 90년대 중반까지 한국사진은 사진의 ‘사실성’과 ‘기록성’을 근간으로 한 작품들이 주류였다. ‘사진은 만드는(Make) 것인가? 찍는(Take)것인가?’의 논란이 뜨거웠던 이유이다. 스트레이트하게 찍는 사진과(Take) 오리고 붙이고, 포토샵으로 합성한 사진(Make)의 작품성을 놓고 지금은 무색한 공방전이 일어나기도 했다. 그 발단은 ‘사진, 새 시좌전’(워커힐 미술관, 서울, 1988)으로부터 시작된다. 이후 우리 사진계는 ‘현대’ 한국 사진의 정체성 찾기에 분주했다. 봇물 터지듯 탐색, 수평, 관점, 미래, 위상 등 단어의 의미에 치중한 사진전들이 개최되었다. 근현대 사진에 대한 담론도 형성되지 않은 상황에서 80년대 말부터 90년대 중반까지 해외유학파들의 귀국 전시가 우후죽순으로 개최되며 ‘새로운 사진’들이 보여 졌다. 당시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탈근대 담론의 유입으로 한국 사진계는 무정부적인 혼돈상태에 빠지기도 했다. 이 모두 불과 10년 전 일이다.


사진 큐레이터 기획력이 절실히 필요한 때

그렇다면 지금 우리 사진의 풍경은 어떠할까. 소위 ‘컨템포러리(Contemporary)’를 풍미하는 사진들은 어디서 생겨난 것일까. 물론 디지털 기술의 발달도 한 몫을 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찍느냐, 만드느냐’의 의미에 ‘하다’, 즉 ‘사진행위’에 대한 작가들의 시각이 한층 넓어지고 견고해진데서 이유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왜 사진 미디엄이어야 하는지, 작가의 콘셉트가 뚜렷해졌다는 의미다. 이 말은 곧 작가의 분명한 콘셉트야말로 ‘컨템포러리’ 사진 장(場)에서는 필수이고 이는 사진전공자 뿐만 아니라 전체 조형예술 전공자들이 사진을 기본으로 활동반경을 넓히게 되며 더욱 풍요로와졌다.


현대 사진이 이처럼 다채롭고 다성적인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데는 사진을 둘러싼 환경의 변화를 살펴야 한다. 미디어와 갤러리의 무한 관심은 사진 작품의 질과 양을 다양화시킨데 일조했다. 또한 저널리스트를 포함한 다큐멘터리 사진가들의 작업이 당연히 갤러리에서 전시되고, 미술 컬렉션에 수용될 목적으로 작품을 발표하는 일은 다큐멘터리 사진에 대한 전반적인 검증 및 반성의 계기를 불러왔다. 6년 전까지만 해도 그것은 제도적, 재정적 측면에서 선구적인 사진작가들이 기대할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실질적인 목적에도 부합하지 못했다. 이처럼 인화된 사진을 거래하는 상업적인 미술시장의 등장과 학계와 출판계, 미술관, 갤러리 등의 관심이 증대되면서 비서구권 사진작가들의 작품이 미술계의 전면에 부각되는 호황을 누리고 있다.


자, 이제부터다. 우리 사진이 더욱 탄탄하게 뿌리내릴 수 있는 기회는 호황을 누리는 바로 이 시기다. 내 생각에 사진은 너무 복잡하다. 사진의 정체성을 말하려면 사진시장, 사진행위를 둘러싼 모든 관습, 인문사회과학 및 인간 삶의 역사와 사진의 관계를 끊임없이 고찰해야 한다. 작가들은 자기 작업에 대해 치열하게 성찰할 일이며, 그 사진을 제대로 보고 분석할 수 있는 평론의 깊이와 다양성, 1차, 2차, 3차 갤러리의 수용능력, ‘사진이 어떤 담론을 형성할 것인지 큐레이터들의 기획력’등이 절실히 필요한 때다. 결국 사진이 대중매체시대에 얼마큼의 문화적, 미학적 가치를 갖는가는 사진이미지를 제대로 생산하고, 수용하고, 읽어내는 활발한 사진 장(場)을 형성하는 과제로 넘어간다.



최연하(1974-) 중앙대 사진학 석사. 서울국제사진페스티벌 큐레이터, 한겨레신문 전시디렉터 역임. 현 독립큐레이터, 사진비평가.


하단 정보

FAMILY SITE

03015 서울 종로구 홍지문1길 4 (홍지동44) 김달진미술연구소 T +82.2.730.6214 F +82.2.730.9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