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컬럼


  • 트위터
  • 인스타그램1604
  • 유튜브20240110

연재컬럼

인쇄 스크랩 URL 트위터 페이스북 목록

(83)전통문화에 대한 관심과 새로운 문화환경

김상철

10월 하순 성북동 간송미술관 앞길에 긴 줄이 늘어섰다. 봄, 가을에 정기적으로 열리는 간송미술관 가을전시인 ‘풍속인물화전(10.16-10.30)’ 관람객이다. 연례행사지만 올 가을 전시에 몰린 인파의 행렬은 예사롭지가 않았다. 2-3시간은 예사로 기다려야 하는 수고에도 불구하고 줄은 좀처럼 줄어들지 않았다. 더불어 열린 국립중앙박물관의 ‘초상화의 비밀(9.27-11.6)’과 리움미술관의 ‘조선화원대전(10.13-2012.1.29)’에도 만 명 단위의 인파들이 몰렸다. 조선시대 미술의 정수를 만끽할 수 있는 중요한 전시들이 동시다발로 열려 안복(眼福)이 터진 셈이다. 세태로 본다면 현대미술이 극성을 부리고 고미술을 비롯한 전통미술의 부진, 그리고 한국화의 위기까지 거론되는 상황에서 이러한 인파는 의외일 수밖에 없다.



사실 이러한 인파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문화특구로 지정된 인사동에는 주말이면 인파로 넘쳐나 보행이 불편할 정도이고, 지난 2009년 <몽유도원도>가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되었을 때도 이른 아침부터 관람객들이 장사진을 이루었다. 공전의 기록을 세우며 스터디 셀러로 자리 잡은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열풍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고, 공중파 방송에서도 전통미술과 문화에 대한 프로그램이 낯설지 않다. 오늘의 우리사회는 무엇인가에 절실히 목말라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것은 “우리의 것은 좋은 것이야.”라는 새삼스러운 말일지도 모른다.


지난 세기는 획일적 가치에 의한 문명의 주도가 두드러졌다. 그것은 서구문명에 의한 일방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디지털로 대변되는 인터넷은 그간 작용하였던 시공을 해체해버렸다. 그간 절대가치처럼 인용되던 ‘세계화’라는 말은 이미 죽은 말이 된지 오래이다. 실시간, 동시대라는 말은 바로 오늘의 새로운 시공을 가장 효과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단어가 되었다. 이제 문화는 단일한 가치에 의한 획일적 기준이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특수성과 차별성이 새로운 가치로 인정받는 세상이 되었다. 공적인 가치보다는 개인의 개성이 우선시되고, 특정한 기준에 부합하는 것이 덕목이 아니라 여하히 다른 개성을 표출해낼 것인가가 새로운 가치로 대두되고 있다. 이는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현실이자 문명의 새로운 상황이다.


우리 민족의 새로운 이정표를 세워야 할 때이다

이러한 문명의 새로운 상황은 특정한 세력이나 정책에 의해 주도되는 것이 아니라 시대와 사회가 그것을 요구하고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이미 사회 각 분야에서는 우리 것에 대한 관심이 날로 확대되며 나타나고 있다. 붐을 이루고 있는 찜질방 문화는 바로 전통적인 아랫목 문화의 재현일 것이며, 외면되었던 국악이나 민요 등은 우리문화의 상징으로 인식되고 있다. 한복은 이미 정식 예복이 되었으며, 김치, 발효식품 등 한식은 세계화를 의욕적으로 추진할 만큼 각광받고 있다. 이렇듯 의식주를 비롯한 문화전반에 불고 있는 우리 것에 대한 열풍은 단순한 현상이 아니라 오늘의 우리사회를 견인하고 있는 분명한 흐름이 되고 있다. 이는 바로 정체성에 대한 확인이자 발현이다. 정체성은 일정한 단계에 이른 문화에 있어 필연적으로 제기되는 가치이다. 즉 성숙된 의식을 바탕으로 획일적인 가치에 대한 추종에서 벗어나 스스로의 가치를 조망하고 인정하며 확인하고자 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그것은 바로 자신감의 표현이다. 지금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현상들은 바로 문화에 대한 갈망과, 이를 통해 부단히 정체성을 확인하고자 하는 사회적 열망이 표출되고 있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와 분명한 흐름의 조짐을 보다 관심 있게 바라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는 단순한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사회발전에 따른 문명의 새로운 이정을 알리는 신호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작게는 우리문화에 대한 정체성 확인에서부터 보다 범위를 확대하면 아시아적 가치의 재발견 등은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가치로 주목받고 있다. 우리는 전에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문명질서의 개편을 목전에 두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것은 고루한 국수주의적 입장이나 민족주의적 편협한 시각이 아닌 보다 개방된 사고와 확장된 시공을 통해 해석되고 수용됨으로써 새로운 시대를 견인하는 동력으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이다.



김상철(1958-) 대만 타이페이 문화대 예술대학원 석사. 월간 미술세계 편집주간, 공평아트센터 관장 역임. 현 동덕여대 회화과 교수.


하단 정보

FAMILY SITE

03015 서울 종로구 홍지문1길 4 (홍지동44) 김달진미술연구소 T +82.2.730.6214 F +82.2.730.9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