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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미술계의 승부조작

최광진

얼마 전 운동선수들의 승부조작 실태가 드러나면서 축구계가 발칵 뒤집혔다. 국가대표급 선수를 포함하여 무려 50여 명의 선수와 관계자가 영구제명을 당했고, 죄책감을 이기지 못해 자살하는 선수까지 나왔다. 우리가 스포츠에 열광하는 이유 중 하나는 우리 사회에 비해 룰이 분명하고 평가가 투명하기 때문이다. 축구계의 이번 조치는 룰과 투명성이 무너지면 설 땅이 없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과거 1960-70년대 프로레슬링은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였지만, 그것이 각본에 의한 쇼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사양길로 접어들었다. 투명성과 객관성이야 말로 모든 분야를 존재하게 하고 발전시키는 근본 토대이다. 우리 미술계는 어떠한가. 미술의 룰과 평가기준은 스포츠보다 훨씬 주관적이고 전문적이어서 전문적인 승부조작이 용이한 분야이다. 작품성에 대한 진지한 검증 없이 명예나 정치력, 혹은 인맥과 상술에 의해 승부가 결정된다면 그것이 바로 주관성을 빙자한 승부조작이 아닐까. 박수근의 대작 <세 여인>이 1957년 국전에서 낙선한 사실이 공정한 것인가. 백남준이 한국에서 활동했다면 우리는 그를 대가로 인정할 수 있었을까. 지금 우리 미술계도 알게 모르게 전문가들의 조작이 이루어지고 있지는 않을까. 만약 축구계처럼 엄격한 잣대로 미술계의 승부조작 가담자를 색출한다면, 여기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인정받는 작가와 인정하는 평론가

작가는 자신의 잠재된 창의성을 발휘하여 우리 시대의 경직된 관습과 편협한 사고에서 벗어나 본질과 미래를 사유하는 사람이다. 작가에게 전시회는 자기 분야의 문제를 해결할 특허기술을 발표하는 장과 같다. 특허는 반드시 남이 하지 않은 독창적인 것이어야 하고, 미래에 활용가치가 클수록 영향력을 줄 수 있다. 요즘 삼성과 애플의 특허전쟁은 작가들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자신이 발표할 작품이 기존의 양식과 중복이 안되는지, 그리고 그 차이가 우리 삶에 어떤 의미 있는 변화를 줄 수 있는지를 검토하는 것은 작가의 기본이다. 만약 이런 작품성의 조건들에 근거하지 않고 정치력과 인맥으로 지위와 명성을 얻고 있다면 그는 승부조작의 가담자일 수 있다.


평론가는 작가의 특허를 검증하고 심사하는 사람이다. 다른 작가와의 관계 속에서 독창성의 여부를 판단하고, 그것의 역사적 의미와 영향력을 진단해주는 사람이다. 그는 판사처럼 객관적 위치에 있어야 한다. 판사는 국가에서 월급을 받지만, 평론가는 원고료에 의존한다. 평론가로 먹고 사는 것이 힘들기 때문에 결국 작가교수들이 진을 치고 있는 대학에 그들의 심사를 거쳐 들어가야 한다. 소속이 생기는 순간 평론가는 객관성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특허를 신청하는 사람과 심사하는 사람이 한 집안 식구라면 객관성을 유지할 수 있을까? 평론가로서 자기 시각을 갖는 것도 어렵지만, 생존을 위해 그물망처럼 쳐 놓은 인맥의 끈에서 벗어나는 것은 더 어렵다. 만약 객관적 기준 없이 인맥에 의해 특정 작가를 옹호하는 평론가가 있다면 그는 승부조작의 공모자일 수 있다.


대학은 학생의 개성과 독창성을 끌어내어 자기만의 철학과 양식을 가질 수 있도록 지도해야 한다. 독창적 양식은 우리 시대, 삶과 예술로부터 문제의식을 갖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조형적인 기술은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어야 한다. 문제의식의 적합성과 시사성을 질문하지 않고 조형적으로만 학생을 교육하는 교수들, 또 자신의 양식적 경향을 따르지 않는 학생들을 미워하고 이상한 기준으로 학생을 평가하는 교수가 있다면 그는 승부조작을 훈련시키는 조련사일 수 있다. 갤러리는 작가를 대중에게 소개하고 콜렉터에게 작품을 판매하는 역할을 한다. 좋은 작품과 팔리는 작품은 일치하지 않는다. 좋은 화상은 콜렉터를 끌고 가지만, 나쁜 화상은 작가를 조종한다. 단순히 시각적 쾌락을 쫓는 콜렉터에 맞춰서 판매에만 급급한 화상은 화학조미료로 맛을 내는 음식점과 같다. 만약 화상이 평론가의 역할까지 대신하여 잘 팔리는 작품을 좋은 작품으로 가격을 뻥튀기 한다면 그는 승부조작의 브로커일 수 있다.


작품에 요구되는 것은 작품성

승부조작의 근본적 원인은 결국 돈이다. 만약 돈줄을 쥐고 있는 콜렉터들의 수준이 높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콜렉터들이 집에 걸기 좋은 작품 대신 작품성을 요구한다면 작가들은 긴장할 것이고 작품성으로 당당히 승부를 펼칠 것이다. 문제는 작품성으로 정면 승부를 펼치면 잘 안 먹히고, 조작을 해야 잘 먹히는 우리 현실에 있다. 정직하고 진지한 작가들이 고독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런 현실에서 승부조작을 근절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 예술도 좋지만 일단 먹고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월가처럼 너무 탐욕을 부려서는 곤란하다. 궁극적인 목적에 도달하기 위해서 전략적으로 현실과 타협하는 것은 필요하다. 그러나 목적과 수단이 전도되어서는 곤란하지 않겠는가. 힘들더라도 멀리보고 역사의 심판을 믿어 보자.



최광진(1962- ) 홍익대 박사. 성곡미술대상 전시기획공모부문 대상 수상. 삼성미술관 학예연구원 역임. 현 이미지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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