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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예술 아카이브, 어디까지 왔을까?

박상애

언제부터인가 아카이브라는 용어가 심심치 않게 자주 들리기 시작했다. 컴퓨터를 공부하시는 분들이야 워낙 예전부터 많이 사용했던 단어이겠으나, 기계와 거리가 있는 삶을 사는 일반인들도 이제는 어디선가 한 번쯤 들어본 듯한 기억을 가지게 되었다. 아카이브(Archive)는 어떤 뜻일까? 사전을 찾아보면 ‘기록보관소’ 혹은 ‘기록을 보관하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나온다. 특정한 사건이나 인물, 일상의 소소한 것들을 기록으로 남기고 보존하는 것이 그 의미인 듯 보인다. 기록물 보관과 활용은 인류가 생성된 이래 지속적으로 행해졌던 활동이 아니였던가. 이 평범하고 오래된 활동이 왜 근래에 회자되기 시작한 것일까. 아카이브라는 단어가 주는 어감적 매력 탓이 아닐까 잠시 생각해본다. 전시나 퍼포먼스의 타이틀에서 이제 자주 볼 수 있는 아카이브, 아카이빙은 기록을 보존한다는 근원적 의미를 현대적 예술작업 혹은 퍼포먼스로 구현하는 하나의 방식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기록관리 측면에서는 근원적 의미에 좀 더 충실하게 아카이브를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예술기록관리에서의 아카이브는 그 보존의 대상이 되는 원(原)자료들을 일컫기도 하며, 원자료들을 보존하는 공간 및 작업을 의미하기도 한다. 아카이브로 분류될 수 있는 원자료들은 가공되기 전의 1차 자료들을 의미한다. 직접 작성한 서신, 사진 및 필름, 일기 혹은 메모 등이 그 예가 되겠다. 또한 예술기록의 특성상 전시 혹은 공연의 그래픽 자료들, 프로그램, 기록 영상, 작가의 스터디 혹은 스코어, 무대 모형 및 무대 의상 샘플 등도 아카이브로 분류할 수 있겠다. 대상이 되는 자료들을 수집, 분류, 가공, 보존처리, 보관을 하고,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거친 자료의 활용을 위해 이용자 안내문서(Finding Aid)를 만드는 것이 예술기록 관리자, 즉 아키비스트(Archivist)의 주 업무라고 볼 수 있다. 예술아카이브는 대상이 되는 기록물의 저장 매체가 다양하여 그 특성을 반영하여 영구 보관을 위한 보존처리를 진행하여야 하며, 보관 환경을 각 매체별 특성에 맞추어 주어야 한다는 어려움이 뒤따른다. 하지만 예술 아카이브의 매력은 작품이 그 자체로 가지는 의미를 넘어서는 배경 정보를 습득할 수 있기도 하며, 미학적으로 아름다운 자료들을 다룰 수 있으며, 무엇보다 일반적으로 쉽게 접할 수 없는 작가들의 이면을 볼 수 있는 기록들이라는 점들을 들 수 있다.


이러한 기록들은 어떻게 활용될까? 얼마 전 신문기사를 통해 독립운동을 하던 형의 기록을 지역 역사가의 저술을 통해 발견하고, 관련 정보를 조사하게 되었고, 형이 죽고 나서 반세기나 지나서야 독립 유공자 신청을 할 수 있는 근거자료를 확보했다는 이야기를 읽은 기억이 난다. 이렇듯, 일반적으로 잘 알려져서 많은 수의 출판물로 이미 공개된 정보들이 아니라, 특정 인물 혹은 사건에 관한 잘 알려지지 않은 원자료들을 찾아볼 수 있는 곳이 바로 아카이브이다. 예술 아카이브의 경우 문화예술 기관이 운영 과정에서 생성한 기록물을 다루는 기관기록 아카이브와 각 개인들이 작업을 통해 혹은 일상에서 유기적으로 생성한 기록물을 다루는 개인 아카이브로 크게 구분할 수 있으며, 이 두 종류의 아카이브 모두 전문 연구자들이 학술적 저술을 위해 조사하는 대상물들이 되는 동시에, 일반 대중들의 소소한 호기심의 답이 될 수 있기도 하다.



예술아카이브는 예술사의 기초자료이다

국내에서의 예술기록에 대한 관심은 최근 10여 년 사이에 점진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듯 하다. 현장 종사자들 사이에서 기록을 수집하고 보존하는 작업에 대한 필요성이 제기되었고, 1999년 '한국미술기록보존소'가 설립되고 미술 분야의 원자료를 수집 보관하는 작업이 시작되었다. 문서 자료를 수집하고 보관하는 작업 이외에 문서상 기록으로 남아 있지 않은 역사를 구술로 채집하여 기록하는 구술사 채록 작업도 비슷한 시기에 시작되어 현재 지속적으로 추진되고 있다. 이제 막 걸음을 떼는 대한민국 예술 아카이브의 올바른 구축과 활용을 위해서는 예술 아카이브의 특성과 개념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과제를 전문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인력의 양성이 필요하며, 구축된 예술 아카이브를 활용하는 저변이 확대되어야 할 것이다. 예술 아카이브는 대한민국 예술사의 밑거름이 될 수 있는 기초 사료이며, 따라서 주관적인 기록의 선택 및 취합이 아닌 객관성을 지닌 사실의 수집 및 관리가 그 주된 과제 영역이다. 이를 활용하는 것 역시 이러한 아카이브의 기본 개념에 대한 근본적 이해를 바탕으로 이루어져야 하며, 그 기초를 탄탄히 이해하고 있다면 예술 작업의 여러 방식 중 하나로서의 아카이브 영역까지의 확장도 더욱 활발하게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예술 아카이브 구축의 효과는 단기적으로 확인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를 추진하는 기관이나 담당자들은 다음 세대를 위한 사명감을 가지고 아카이브 구축을 지원하고 수행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우리 세대의 노력은 대한민국 문화예술 연구의 기초가 될 것이며, 나아가 대중들의 문화예술 이해 수준을 한 단계 상승시킬 수 있는 초석이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박상애(1974-) 연세대 정치학과 국제통상전공 석사. 현 백남준아트센터 아키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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