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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건강한 ‘미술계 문화 노동자’ 육성을 위해

류동현

얼마 전 모 일간지에 작은 칼럼을 쓴 적이 있다. 우리 미술계에서 일하는 큐레이터에 대한 몇 가지 오해와 그들의 고충을 전한 글이었다. 칼럼을 읽은 미술계 지인들 몇몇이 문자 메시지를 보내왔다. 대부분 큐레이터들이었는데, ‘150-200만원의 평균 임금을 받는다’는 내용에 대해 “너무 많이 부풀린 것 아니냐”는 자조적인 반응을 보였고, 그중 몇 명은 미술관이나 문화재단에 속해 있는 큐레이터들의 연봉은 그래도 그보단 조금 더 높다며 변명 아닌 변명을 하기도 했다. 물론 맡고 있는 주된 업무에 따라, 직책에 따라 어느 정도 차이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그 글을 쓴 의도는, 타 분야에 비해 확연한 ‘고학력 저임금’ 지대인 미술계를 알리고, 그 열악한 환경에서도 고군분투하는 미술계 사람들을 격려하려는 것이었다.


미술계는 크게 작품을 생산하는 작가, 작품을 소장·감상하는 컬렉터와 관객, 이 둘을 소개·연결하는 다양한 미술계 종사자(혹자는 이들을 ‘미술계 문화 노동자’라고 지칭했는데, 꽤 타당하다는 생각이 든다.)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이중 ‘미술계 문화 노동자’는 미술관과 갤러리에서 근무하는 큐레이터·갤러리스트·전시 테크니션·전시장 디자이너·도록 디자이너·평론가·칼럼니스트·미술담당 기자 등등 다양한 직종을 아우른다. 점점 분업화, 전문화되어 가면서 관련 직종의 사람 수도 크게 늘었다. 한마디로 예전에 비해 미술판이 커졌다. 하지만 이들의 근무여건은 우리가 흔히 보는 TV 드라마의 화려한 모습과는 전혀 다르다. 얼마 전 어느 배고픈 영화 시나리오 작가의 죽음으로 촉발된 ‘예술인 복지 지원법’에 대한 논의가 큰 이슈가 되었다. 숨진 시나리오 작가의 이름을 따 ‘최고은 법’이라고 불린 이 ‘예술인 복지 지원법’의 공청회에는 그동안 홀로 삭여야 했던 예술인들의 울분과 한스러움이 봇물 터지듯 터져 나왔다. 이를 지켜보면서 우리나라에서 예술을 하며 살아간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다시 한 번 뼈저리게 느꼈다. 예술가뿐만 아니라 예술과 관련된 직종의 사람들에게 ‘복지’는 다른 나라 이야기였다. 마음 같아서는 한시 바삐 뭔가 대책이 마련되었으면 생각한다. 하지만 한편으론 특별히 예술가라고 해서 국가의 세금을 지원받는 것은 국민적인 공감대가 이루어지지 않은 현실에서 형평성과 같은 논란의 여지가 있다. ‘예술가’라고 하는 기준도 문제가 될 수 있다. 따라서 예술인에 대한 복지 지원법은 좀 더 신중하게 접근해야 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미술계 문화 노동자’들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필자가 미술계에 첫발을 디딘 10여 년 전과 별반 변화가 없음을 알고 새삼 놀랄 때가 많다. 실제로 미술관(은 조금 낫지만)이나 미술전문 잡지사, 갤러리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임금을 보면 앞에서 예를 든 것보다 더 열악한 경우가 허다하다. 물론 이렇게 경제적인 면만을 따지는 태도는 문제가 있다고 하겠지만, 전문지식을 갖춘 능력 있는 일꾼을 ‘부리기 위해서는’ 그에 맞는 처우가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상황이 열악하다 보니, 우리 미술계에서 젊은 평론가나 큐레이터를 만나기가 매우 힘들다. 그 중에서 활발한 활동을 보이는 이들만을 손꼽아도 금방 수를 셀 정도다. 관련 학과를 졸업한 뒤 청운의 꿈을 품고 미술계에 들어선 이들 중에서도 변함없는 열악한 환경에 질려 아예 타 분야로 떠나버리는 사람들도 많다. 이런 모습을 보면 같은 미술인으로서 마음이 아프다. 미술계의 발전을 위해서는 재능 있는 작가도 중요하지만, 그들을 발굴하고 지지하며 함께 일해 갈 성실하고 능력 있는 문화 노동자들도 필요한 법이다. 그동안 미술계가 젊은 작가들을 위한 시스템은 다방면으로 마련해 왔지만, 그에 비해 평론가나 큐레이터를 육성하고 지원하는 시스템을 마련하는 데에는 많이 소홀하지 않았는지 반성해야 할 것 같다.


실리콘벨리의 인재지원 육성시스템

얼마 전 이런 문제들에 대해 몇 명의 큐레이터들과 이야기를 나누던 중 어느 독립 전시기획자가 흥미로운 제안을 했다. 실리콘밸리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엔젤(Angel) 시스템’을 우리 미술계에 도입하면 어떨까 하는 이야기였다. 즉 실리콘벨리에서는 수많은 벤처 기업들이 설립되지만 그중에 백에 98-99개는 망한다고 한다. 살아남는 건 언제나 극소수다. 이런 상황에서 ‘엔젤’이 나타나 젊은 벤처 창업자들에게 투자한다. 성공하면 다행이고 망해도 어쩔 수 없다는 그야말로 통 큰 후원이다. 말 그대로 ‘뒷끝 없는 천사’다. 처음에는 변호사나 의사와 같은 전문직종의 사람들이 엔젤이 되었으나, 지금은 성공한 벤처 기업인이 젊은 벤처인들을 후원하는 엔젤 역을 맡고 있다. 드디어 시스템이 자생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세계적으로 성공한 빌 게이츠나 손정의 역시 이런 엔젤의 수혜를 받았고, 지금은 그들 자신이 엔젤로 활동하고 있다. 또한 망한 벤처 기업인들은 좌절해서 바로 업종을 변경하는 것이 아니라, 더 높은 연봉을 받고 다른 회사에 영입된다고 한다. 왜냐하면 그들이 겪은 실패의 ‘경험’과 성공을 향한 ‘열정’이 오히려 큰 장점으로 인정되기 때문이다. 이런 자생 시스템이 우리 미술계에도 적용이 되면 얼마나 좋겠느냐는 거다. 엔젤 시스템과 멘토링을 통해 젊고 건강한 ‘미술계 문화 노동자들’을 끊임없이 육성하고 지원하는 것이다. 이런 과정을 거쳐 미술계의 인력구조가 점점 더 단단해지지 않을까?


우리 미술계의 구조를 튼튼히 하고 수준을 높이기 위해서 각 분야에서 묵묵히 일하는 숨은 일꾼들-‘미술계 문화 노동자’들에게 이제라도 눈을 돌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능력 있는 인재들이 더 많이 미술계에 들어와 열심히 일할 수 있도록 제대로 된 환경을 만들어야만 우리 미술계가 한 단계 더 도약할 수 있을 것이다. ‘미술계 문화 노동자’들을 저임금으로 고용하여 소모품처럼 쉽게 사용하고 대체해 버리는 나쁜 풍토도 바로잡아야 할 것이다. 능력 있는 이들이 자신의 분야에서 오랫동안 전문성을 쌓고 더욱 강화·발전해 나갈 수 있도록 최대한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 뭐니뭐니해도 ‘사람’이 제일 중요하기 때문이다.



- 류동현(1973- ) 서울대 고고미술사 학사. 월간미술 기자, 마로니에 북스 편집부 기획팀장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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