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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메세나 또는 마에케나스의 유산

김노암

문화예술에 관심이 있는 사람치고 ‘메세나(Mecenat)’활동에 대해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기업의 예술·문화·과학에 대한 후원과 지원을 의미하는 ‘메세나’는 경제발전과 규모가 문화예술에 관심을 돌릴 정도로 생계문제가 해결된 국가들에서 나타난다. 미국·일본·유럽 등에서는 오래전부터 기업 이윤의 사회 환원과 기업이미지 제고를 위해 기업인이 참여하는 메세나협의회를 조직해 각종 문화예술활동을 지원해왔다. 우리나라도 88올림픽 이후 문화향유에 대한 요구의 증가와 비례해 문화예술에 대한 관심과 지원이 가파르게 성장 확산되기 시작한다. 우리나라에서는 1994년 4월 기업메세나협의회가 창립되어 200여 개 주요기업이 회원사로 참여하고 있다. 다른 나라를 살펴보면 영국(Arts & Business), 오스트리아(Austrian Business Committee for the Arts), 독일(Arbeitkreis Kultursponrsoring), 미국(BCA), 일본(Kigyo Mecenat Kyogikai) 등 세계 각국에는 많은 메세나활동이 이루어지고 있다


메세나의 개념과 유래

‘메세나’는 고대 로마의 가이우스 클리니우스 마에케나스(Gaius Clinius Maecenas B.C.70-8)의 이름에서 나온 불어이다. 서구사회에서 기업들의 문화예술 지원활동은 마에케나스의 ‘조건 없는 후원(Patronage)’에서 기원한다. 마에케나스, 그는 로마의 대귀족출신의 외교관으로 황제 아우구스투스(Augustus)의 친구이자 자문이었다. 그는 당시 문화계를 이끌었던 호라티우스(Quintus Horatius Flaccus), 베르길리우스(Publius Vergilius Maro), 프로페르티우스(Sextus Aurelius Propertius) 등 시인과 문인들의 열렬한 후원자로, 당시로서는 매우 이례적이라 할 정도로 예술 활동을 지원하였다. 그는 애호차원을 넘어서 로마의 예술가들이 작품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재정적 지원과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마에케나스는 정치가이자 외교관으로서 문화예술이 거대한 제국의 결속과 운영에 있어서 매우 유용한 수단임을 인식한 사람이라고 볼 수 있다. 마치 20세기 초 이탈리아의 사상가 안토니오 그람시(Antonio Gramsci)가 문화예술이 정치경제적 이데올로기의 강력한 수단임을 인식한 것처럼.


이후 문예보호운동에 적극적이었던 마에케나스에서 유래한 ‘메세나’는 문화예술에 대한 지원활동과 후원자를 뜻하게 되었다. 메세나의 개념은 이타(利他)주의적 목적으로 문화 및 사회의 여러 분야를 지원하는 것으로, 좋은 일을 하고 만족하는 것 외에 어떠한 구체적 반대급부에 대한 기대 없이 수행되는 활동으로 정의할 수 있다. 메세나활동을 기업만이 전유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한 사회에서 일정한 규모의 부가 축적되고 효과적인 수준의 사회공헌이나 예술지원활동이 가능하려면 정부나 기업과 같은 큰 주체들이어야 한다. 메세나활동은 개인 또는 단체를 대상으로 할 수 있으며 특성상 그 규모를 파악하기 매우 어렵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후원자나 후원기업은 자신의 이름이 후원활동과 연관되어 알려지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하기 때문이다. 오늘날 대부분의 ‘메세나’ 활동은 대학, 병원 등의 재단이나 자선, 연구 등의 기금이라는 제도를 통해 이루어진다. 재단과 기금이라는 제도적 형태로 이루어지는 메세나 활동은 인간이 만들어 낸 가장 진화된 형태의 이타주의이며 그 유전적 전승을 위한 장치이기도 하다. 확대해 보면 태풍이나 집중호우와 같은 자연재해가 발생하면 개인을 포함한 기업들의 기부금 또는 성금을 통한 활동을 보게 된다.


기업의 경우 메세나활동은 기업 이윤을 사회로 환원하는 사회 공헌의 의미를 가지며, 조건 없는 지원을 통해 문화·예술의 발전을 도모하여 삶의 질을 한층 높이는 데에 의의가 있다. 근래에는 문화 예술의 이미지를 이용하여 브랜드와 기업의 이미지를 제고하는 전략적인 마케팅 활동으로도 전개되고 있다. 예술과 문화를 통한 새로운 첨단 마케팅전략으로 인식이 변하면서 메세나활동을 미래의 기업의 가치를 극대화하고 안정적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한다는 인식을 공유하고 있다. 이러한 인식의 확산은 기업과 예술계가 일방적인 후원관계가 아니라 상호 호혜적인 파트너라는 시각과 새로운 문화와 기업의 미래가치를 창출한다는 생각을 많은 기업들이 공유하고 실천하고 있다. 그런데 주위에서 기업은 물론 개인들의 기부행위에 대해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것을 자주 보게 되는데, 우리 사회의 재벌과 대기업에 대한 윤리적 불신풍조와 반기업 정서의 영향이 크다. 그런데 실제 이윤추구를 목표로 하는 기업들에 대해 이상적인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와 같은 높은 수준의 윤리적 잣대를 대는 것은 쉽지 않다. 거기에 문화예술에 대한 고도의 인식과 윤리적 또는 미적 가치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다만 공동체나 사회공헌에 대한 평균적인 수준의 인식과 학습, 일반적인 수준의 준법성과 윤리성에 부합하기만 하면 충분하다. 강제로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 그러므로 자발적 메세나활동에 적극적인 기업이나 개인은 사회 전체의 격려와 찬사가 주어져야 한다.


한편 사는 게 다 거기서 거기고, 또 좋은 게 좋은 것이니 당장 눈앞의 이익보다 시민들이 함께 이익을 공유할 수 있는 활동에 동참하는 데 동의하고 일조할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정비하고 지원할 필요도 있다. 선의의 발로인 기부금 또는 성금을 제공하는 경우 윤리적 문제와는 별개로 세금 감면과 같은 실질적이며 구체적인 혜택을 주어 장려해야 한다. 그런 제도적 환경 속에서 우리는 공동체 의식과 사회적 책임의식의 예를 더 자주 접할 수 있게 된다.

우리 사회는 문화예술의 창작과 감상활동이 취사선택을 넘어서 시민의 기본권이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앞으로 메세나 활동의 성공적인 이식과 성숙을 위해서는 기업 스스로의 인식전환과 변화와 동시에 개인과 정부 등 사회 공동체를 이루는 모든 이들의 유기적인 상호인정과 협력문화가 요구된다.



- 김노암(1968- ) 홍익대 미학 석사. 사비나갤러리 큐레이터, KT&G 복합문화센터 상상마당 전시감독 역임. 현 아트스페이스 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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