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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한국미술의 위상

유근오

11월은 G20 정상회의로 인하여 서울이 잠시나마 들썩거렸다. 이와 맞물려 국제경영연구원(IMD), 세계경제포럼(WEF), 그리고 중국사회과학원의 국가 경쟁력 순위가 화제의 도마 위에 올랐다. 앞선 두 기관의 발표에 따르자면 우리나라의 국가 경쟁력 순위는 세계 20위에서 30위 사이를 오르내리는 것으로 되어 있다. 반면 중국 사회과학원의 보고서는 2010년 우리의 국가 경쟁력을 세계 4위로 평가했다. 이는 평가항목의 차이에 기인하는 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서구 편향적 평가에 대한 아시아적 가치의 반영이거나 세계 2위 경제대국으로서의 정치적 헤게모니를 획득하고자 하는 일면도 있다는 분석이다. 어찌 되었든 필자가 미술칼럼에서 국가 경쟁력 운운하는 것은 경제의 경쟁력만큼 미술에서도 그것이 가능한가(예술을 구체적 수치로 계량화하는 것은 부적절하지만)하는 것이며, 그럼에도 나름대로 가늠해보고자 하는 것은 미술이 이미 산업이자 재화요, 국가의 문화 경쟁상품의 속성을 띄어가고 있으며 적어도 우리 미술의 현주소를 탐색하는 방법 중의 하나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마침 현대미술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작가 중 한 사람으로 평가받고 있는 백남준의 대규모 회고전이 4년마다 열리는 ‘콰드리엔날레(Quadriennale)’의 일환으로 독일 뒤셀도르프의 K21 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그를 최고의 경쟁력을 가진 대한민국의 대표작가라는 데 이견을 다는 ‘우리나라’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하지만 외국의 전문가들에게도 이런 국적분류가 가능한가에 대해서는 의문부호를 달 수 밖에 없다. 실례로 필자와 프랑스 평론가 앙리 드바이외와의 대담에서 이런 분류방식이 문제시되었다. 필자는 한국의 현대미술의 대표적 작가 1세대로서 백남준과 이우환 등을 거론하였으나 그의 반응은 의외였다. 백남준은 미국이나 독일작가이며 이우환은 일본작가로 분류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작품의 정신적 맥락에 이의를 제기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한국인은 너무 태생과 국적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으며 작가가 성장하고 활동한 나라의 풍토나 문화적 토대를 무시한다는 취지의 언사였다. 실제로 몇몇 세계 유수의 미술 전문잡지들도 그들을 한국작가로 분류하지는 않는다. 우리는 예술적 성과나 수상 등에서도 너무 아전인수 격의 해석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예컨대 제 65회 베니스비엔날레에서 백남준 개인이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것으로 우리 언론매체들은 보도하고 있으나 실제로는 백남준과 한스하케를 초대 전시한 독일관에 수여된 ‘최고 독립관상’이었다. 이 상은 작가가 수상주체라기보다는 탁월한 전시를 기획한 독일관에게 주어진 것으로 보아야 타당하다. 당시 작가에게 주어진 황금사자상은 회화 부문에 리차드 해밀턴과 안토니 타피에스가 공동 수상하였으며, 조각 부문은 로버트 윌슨이 수상하였다. 또한 작금에 몇몇 젊은 작가들이 해외 비엔날레와 아트페어 또는 경매를 통하여 세계적 작가로 부상하는 듯한 보도를 자주 접하면서 한국미술의 국제적 입지를 체감하지만 한편으로 그 진위에 의혹을 품게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한 평가는 지극히 일회적이거나 일부 상업 화랑의 입김에 의해 과대 포장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작품의 질적 평가로는 적절치 않지만 경매를 통한 미술시장 분석회사인 프랑스의 아트프라이스닷컴에서 발표하는 최고의 작가 500인이나, 가격지표와 경매가격 등을 무시하고 주요 미술관에서의 개인전과 단체전, 미술 전문지에서의 노출빈도, 비엔날레와 트리엔날레의 참여도 등을 참고하여 매년 최고의 예술가 100인과 부상하는 작가 100인을 선정 발표하는 독일 캐피탈지의 쿤스트콤파스에 우리 작가들의 숫자와 순위는 아직 미미하다고 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지역적인 것이 전지구적인 것이 될 수 있다

결국 국제적 경쟁력은 그리 많지 않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서구의 평가와 순위가 곧 예술의 질적 바로미터가 될 수는 없으며, 우리미술이 글로벌화 하는데 필요불가분의 고려사항에 속한다고 할 수도 없다. 표현의 고유성은 서구 중심적인 평가나 줄 세우기에 의해 만들어지는 피조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의외로 과도하게 세계적 흐름이나 호의적 평가를 쫓다보면 작품의 진의와 가치의 다양성을 상실하면서, 후일 약이 아니라 독이 될 수도 있음이다. 미술작품이 너무 재화 축적의 수단으로 치닫는 환경에서 창작이 가능한가라는 혹자의 탄식과 우려는 정체성과 진정성을 가진 작가를 소망하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여전히 미술의 현장에서는 지역의 시대적 정신이나 정체성을 구현하고자 하는 작가들을 갈구하고 있으며, 날카로운 시각으로 탐색하고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국제적 평가와 경계를 짓고자 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지극히 개인적이고 지역적인 것이 전지구적인 것이 될 수도 있음을 말하려 함이다. 서구 미술계가 서도호, 김아타, 김수자 등을 주목하고 평가하는 것도 이런 이유이다. 이들은 드넓은 세계에 시선을 던지고 있지만 동양적 감수성과 정체성이 작품 속에 녹녹히 배여있기에 더더욱 주요 작가로 부상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미술의 국제적 위상은 그리 탄탄하다고 볼 수는 없다. 그렇더라도 아전인수식 해석과 하나의 전시나 사건에 일희일비하기보다는 조금 더 깊고 넓은 시각으로 세계를 바라보는 것이 필요하다.



유근오(1958- ) 프랑스 파리1대학 미술사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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