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컬럼


  • 트위터
  • 인스타그램1604
  • 유튜브20240110

연재컬럼

인쇄 스크랩 URL 트위터 페이스북 목록

(64)조형물 유감

고충환

길을 가다 보면 각종 조형물들을 볼 수가 있다.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지만, 때로 이건 아닌데 싶은 경우도 적지 않다. 조형물의 수준은 차치하고라도 환경과 어울리지 않는 조형물이 있는가 하면, 사람들의 왕래가 잦아 그렇지 않아도 복잡한 가로를 더 복잡하게 만드는 조형물도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다양성이 결여된, 어슷비슷한 조형물들. 환경과 따로 노는 생뚱한 느낌. 가뜩이나 여유가 없는 공간 속에 억지로 집어넣어진 느낌. 그리고 전형적인 느낌. 특히, 조형물엔 뭔가 전형적인 포맷이 있는 것 같다.


현대사회의 맹점이 여럿 있지만, 그 중 가장 결정적인 것으로 자기복제에 따른 개성의 상실을 꼽을 수 있다. 좀 과장해서 말하자면 도시도 똑같고, 공원도 똑같고, 사람들도 똑같고, 사람들의 의식이나 관습마저도 똑같다. 심지어는 일탈이나 튈 때조차도. 마치 하나의 플랜이 평등하게(민주적으로?) 공수되고 수급된 것 같은, 그 자체로 자본주의 공장의 오토메이션 시스템이 그대로 전용된 것 같은 사회, 판박이 같은 사회(효율성의 법칙?) 속에 우리 현대인은 살고 있다. 여기서 예술이 존재하는 이유는 분명해지고 절실해진다. 예술은 판박이 같은 의식을 깨트려 그 속에 다른 종류의 의식을 심는 일이며, 조형물은 판박이 같은 외관을 깨뜨려 그 속에 다른 종류의 외관을 이식하는 일이다. 조형물은 말하자면 도시의 풍경을 다양하고 풍요롭게 만들어주는, 도시의 꽃이다. 그럼에도 현실은 그렇지가 않은 것 같다.


조형물의 수준을 운운하기가 조심스럽긴 하지만, 그래도 여하튼 가장 핵심적인 문제며 피할 수 없는 문제다. 주변에 보면 훌륭한 조각가들도 많고 좋은 작품들도 많다. 평소에 그 조각가들의 작품 그대로 조형물로 나와진다면, 혹은 저 형태 저 재질 그대로 크기만 확대된다면 조형물 환경은 눈에 띠게 달라질 수가 있을 터인데, 하고 생각해보곤 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일부 알만한 몇몇 작가들의 경우를 제외하면, 조형물과 작가가 선뜻 매치가 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여기서 일부 조형물만을 전문으로 하는 업체와 비전공자, 그리고 아예 분야가 다른 경우는 열외로 치자. 사실은 이 문제를 짚는 것이 더 중요할 수도 있다. 여하튼.


조형물, 밀도감과 완성도가 절실하다

왜 그럴까. 왜 작품과 조형물과 작가가 매치 되지가 않을까. 작품과 조형물은 그 생리가 다른 것이라서 일까?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지엽적인 부분을 제외한다면, 전혀 다를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데도, 사실은 작품과 조형물을 별개로 받아들이는 것이 현실인 것 같다. 물론 다를 수도 있다. 문제는 조형물치고 작품만큼의 밀도감과 완성도를 유지하는 경우를 찾아보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여기서 단가의 문제가 나온다. 밀도와 완성의 정도를 단가에 맞추는 것이다. 그럴 수 밖에 없고, 그렇게 하는 것이 맞다. 단가가 높으면 그 정도가 올라가고, 단가가 낮으면 그 정도가 내려간다. 단가를 현실화함으로써 그 수준을 끌어올릴 수 있다는 말이다. 그렇다고 해도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가 않는다. 운 좋게 단가가 현실적인 수준으로 책정된 경우에도 차 떼고 포 떼고 나면, 그래서 정작 작가가 손에 쥘 수 있는 돈이 몇 푼 안 된다면 문제(수준)는 원점으로 되돌려진다. 여기서 구조적인 문제가 나온다. 구조를 투명하게 하는 것, 단가를 현실화하는 것, 그리고 가능하다면 작품과 조형물이 일치하는 것이 조형물 문제를 푸는 해법이다.


우리 주변에도 소위 조각공원이 꽤 많이 생겼다. 하지만 생활 속에서 예술의 향기를 맡을 수 있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생각이다. 어디를 가야 조각을 구경할 수 있는 환경이어서는 안된다. 어디를 가든 조각을 구경할 수가 있어야 한다. 주변에는 조각공원보다 훨씬 더 많은 크고 작은 공원들이 있다. 그 공원들마다 조각이 있어야 하고, 한 두 개씩만 있으면 충분하고 족하다. 조각공원을 조성하고 조각을 유치하는 일은 (매번 혹은 번번이) 일회적인 행사에 그치기보다는 상시적인 체제로 가야한다. 그리고 조형물에는 환경조형물과 조각공원 그리고 벽화만 있는 것은 아니다. 여러 형식의 도시 기반 시설물들 역시 분명 조형물들이다. 이를테면 각종 전광판들, 간판들, 건물 자체와 건물 외장들, 그리고 거의 모든 시설물들 등등. 현재 외형상으론 소위 도시디자인의 이름으로 이것들을 아우르고는 있지만, 다분히 행정적이고 전시적인 차원에 머물고 있다는 생각이다. 조형물은 이 모든 시설물들과 유기적인 조화를 이루는, 도시생태학의 밑그림을 그린다는 생각으로 접근해야 한다.



고충환(1961- ) 홍익대 미학과 석사. 조선일보 신춘문예 미술평론 당선(1996), 월간미술대상 학술평론부문 장려상(2006) 수상.


하단 정보

FAMILY SITE

03015 서울 종로구 홍지문1길 4 (홍지동44) 김달진미술연구소 T +82.2.730.6214 F +82.2.730.9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