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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창작스튜디오들에게 묻는다!

백기영

최근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창작센터 건립의 붐을 바라보는 현장의 시각은 이를 추진하는 정부 지자체의 기대와는 달리 우려로 가득 차 있다. 지난 8월 14일 15일 양일에 걸쳐 경기창작센터에서 있었던 창작스튜디오 네트워크 포럼에는 전국에서 이미 건립된 창작스튜디오를 운영하고 있는 실무자, 오픈을 준비하고 있는 지자체 공무원, 지역의 대안공간을 기반으로 하는 프로젝트형 레지던시프로그램 운영자, 재래시장 기반의 레지던시와 예술촌 운영자 40 여 명을 초대하였다. 이 포럼에서는 90년대 후반 국내 대안공간의 오픈과 더불어 공공기관과 민간에서 시작된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대한 기대와 한계를 진단할 수 있었다. 이 포럼에서 다룬 주된 주제는 지금까지 창작지원정책을 진단하고 레지던시의 역할을 모색하는 것이었다.


최근 레지던시의 문제
특히, 90년대 후반 이후, 신진작가들을 발굴하여 창작결과를 발표할 기회를 주면서 주목받기 시작했던 대안공간들이 최근 레지던시에 주목하면서 창작지원은 이제 단순한 결과 위주의 지원에 머물러 있을 수 없다. 창작스튜디오 지원정책은 예술가의 사회적 위상에 관한 재고에서부터 예술가 사회복지제도로 확대되고 있다. 하지만 창작스튜디오들은 단순히 현상만으로 발견할 수 없는 복잡한 문제들을 안고 있는데, 첫째, 관이 주도하는 레지던시들은 예술가들이 창작을 통해 지역문화의 정체성을 형성하는데 일조하기를 바란다. 최근 국내 레지던시에 참여하는 외국작가들에게 요구되는 지역 컨텍스트에 대한 부담은 때론 가혹한 것이다. 이는 지방정부의 지역성에 대한 과도한 집착에서 비롯된 것이다. 지역을 변화 가능한 삶의 터전으로 이해한다면 지역 또한 유동적이고 변화무쌍한 것이다. 둘째로 과연 레지던시가 예술가들에게 도움이 되는지 물어야 할 것이다. 제도화된 레지던시 공간과 규격화된 프로그램은 과연 태릉선수촌의 국가대표들을 훈련해 대표작가들을 양성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고 그렇게 양성된 작가들의 수동성은 또 어떻게 할 것인가? 셋째, 레지던시는 강력하게 국제교류에 매진한다. 이 제도는 당초부터 국제교류를 위해 생겨났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국제교류에 미숙하다. 국제교류에 관한 열망만 있을 뿐 나의 현실과 교류대상이 무엇을 상호적으로 교류할 수 있는지에 대한 명확한 계획도 없는 내세우기 행정에 머물러 있다. 마지막으로 타분야, 타장르와의 협력에 미숙한 것은 자신의 영역 밖으로 탈주해 본 경험이 전무한 우리 예술계에게 가장 강력히 요청되는 덕목이 아닐까싶다.


창작스튜디오 설립목적에 따른 고민과 네트워크가 절실
창작스튜디오는 예술가의 작업 공간지원에 머물고 있으며 창작을 지원할 수 있는 구체적인 프로그램이 전무한 상태다. 최근에는 창작의 결과만을 지원하던 지금까지의 지원정책에서 예술가 자체나 창작의 과정을 지원하는 레지던시 프로그램 고유의 성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지자체들이 프로그램 운영에서 오류를 거듭하고 있는 실정이다. 게다가 민간 레지던시에 비해 그 규모가 크고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큰 국공립 창작스튜디오들은 국내 작가들의 등용문으로서 과거 공모전이나 수상제도들을 대체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작가선정에 있어 공정성 및 기관의 차별성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특히, 학예사 제도로 운영되고 있는 박물관 미술관과는 달리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운영할 전문 인력도 부족하다. 레지던시를 통해 작가들이 실질적인 도움을 받으려면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과의 만남이 적극적으로 이루어지는 환경의 조성이 필수적인데, 국내 창작스튜디오들은 시각예술분야에 편중되어 있고 실질적으로 제대로 된 학제적 프로그램의 운영을 위한 토대도 부실한 것이 현실이다.

심상용 교수는 “요즈음처럼 과도하게 시장화된 예술이 범람하는 시기에 과연 창작은 존재하는가.”라고 질문한다. 창작은 예술시장의 부가가치 창출을 위한 재화의 생산에 지나지 않은 것이 되어버렸는지도 모른다. 또 혹자는 “서양미술이 아니면 미술이 아니잖아요? 한국미술 같은 건 그냥 그림이지.”라고 유행어로 일침을 가한다. 창작을 회복하기 위한 논쟁의 회복, 상업주의에 대항하는 예술의 정치적 수행성의 회복, 식민화된 우리예술의 양가적 모순을 읽어낼 비판성의 회복을 우리는 과연 레지던시에서 기대해 볼 수 있을까?

이제 창작스튜디오들은 운영주체의 설립목적에 따라 역할을 고민하고 상호협력을 위한 대안을 모색해야 할 때가 되었다. 상호경쟁의 방식이 아니라 작가 상호간, 타 장르간, 학제간, 창작자와 감상자간의 벽을 허물고 협력하며 통섭되는 느슨한 네트워크가 절실하다. 이 네트워크는 제도화되어 있는 레지던시 기관으로 한정되어서는 안되며 제도의 실질적인 수요자인 예술가, 지역주민, 미술관과 대안공간 큐레이터들에게도 열려있어 그간 한국예술의 창작과정에서 결여되었던 동시대 예술비평의 회복, 상호전문성이 교차되는 플랫폼으로서 레지던시 공간의 역할을 확대해 나가야 할 것이다.



- 백기영(1969- ) 홍익대 회화과. 경기창작센터 학예팀장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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