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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기부 - 위대한 정신, 아름다운 문화

김현숙

얼마 전 이중섭의 <황소>가 미술경매에서 35억 6천만원에 낙찰되었다. 2007년에 국내 미술품 가격의 최고치를 경신했던 박수근의 <빨래터>에 비하면 10억 가량 낮은 가격이지만 일반인들의 눈높이에서는 어마어마한 가격인지라 어떤 이는 이중섭, 박수근의 작품 가격이 터무니없이 비싸다며 의심스러운 눈길을 보냈고, 피카소를 비롯한 외국 근대 거장들의 작품가가 몇 백 억을 호가하는데 비하면 우리들의 국민작가 작품가가 상대적으로 너무 낮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2010년 런던 크리스티 경매에서 피카소의 청색시대 작품인 <앙헬 페르난데스 데 소토의 초상화>(1903)가 약 620억원에, 이보다 조금 앞서 뉴욕 크리스티에서는 피카소의 <누드, 녹색 잎과 상반신>(1932년)이 약 1,310억원에 팔렸으니 국제 시세로 따지면 결코 비싸다고 할 수도 없다. 그러나 국공립 미술관의 작품구입예산이 삭감되어가는 와중에 작품가의 나홀로 상승이 우려되는 바도 없지 않다. 국립현대미술관의 1년 작품구입 예산이 34억에 불과하니 예산이 대폭 증액된다 한들 이중섭, 박수근, 김환기 등 소위 블루칩 작가들을 비롯하여 이쾌대, 박생광 등 주요 작가들의 대표작 구입 가능성은 점점 희박해져만 가는 것이다. 


뉴욕 MoMA의 소장품 중 대표급을 선별한 『MoMA Higlight』에 수록된 527점 중에는 기증작(작가 및 유족의 기증작 제외)이 356점으로 67.6%에 달하며, 이 기증작들 중에는 반 고흐의 <올리브 나무>, 마티스의 <댄스> 등 세계적 걸작들이 즐비하다. 최근에는 영국 현대미술품 소장가로 국제적 인지도가 높은 찰스 사치(Saatchi)가 2500만 파운드(약 450억원) 상당의 현대미술품 200여점과 자신의 사치 갤러리를 세금 혜택도 사양하고 국가에 기증, 사치 콜랙션이‘런던 현대미술관’이라는 이름의 공공미술관으로 전환될 것이라는 소식이 전해졌다. 치솟는 작품가를 미술관 예산으로 감당하기 불가능한 것은 외국 미술관의 경우도 마찬가지여서 소장품이 탄탄할수록 양질의 기증품에 의존하는 비율이 높다. 미술계의 상식에 속하는 이런 정도의 얘기가 생소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우리의 상황과 너무 동떨어져있기 때문일 것이다. 조선일보사의 조사에 의하면 2009년 국립현대미술관의 소장품 6,421점 중 기증작이 총 385점으로(작가 및 유족의 기증작 제외) 전체 소장품의 6% 수준에 불과한데, 삼성문화재단과 테트라펙 그룹이 각각 1점씩 기증한 것을 제외하면 개인 기증이다. 그나마 드로잉과 판화가 대부분으로 작가의 대표작이나 한국미술사를 대표할만한 케이스는 거의 없다고 한다. 기부 문화를 통해 그 나라의 문화적 성숙도를 측정할 수 있다고 하는데, 우리의 수준이 확연해지는 대목이다. 

재일교포 하정웅, 부산 공간화랑 신옥진 대표
2009년 문예진흥기금의 기부금이 100억을 초과하는 등 문화예술 분야에서의 기부가 스타트 라인을 통과했다고 하지만 미술품 기증에 관한 한 아직도 초보적 단계에 머물고 있다. 수익사업이 입장료와 문화상품 판매 정도에 그치는 국공립미술관에서 기증(기부) 마케팅 사업의 강화야말로 시급한 사안이 아닐 수 없다. 세금 감면을 비롯하여 다양한 방식의 기증을 유도하고 관리하는 부서나 전문 담당자를 배치하여 업무의 지속성, 체계성, 창의성을 높여야 한다는 원론적 방안조차 무시되는 이유가 무엇인지 참으로 궁금하다. 

미술품 기증을 재화적 가치로 환산하여 마케팅 측면으로만 접근하는 방식도 극복될 부분이다. 예술품은 한 개인의 소유가 아니라 전 국민 나아가서는 전 인류의 공동 소유 임을 실천하는 기증 행위에 대해 사회의 아낌없는 예우와 존경이 수반되어야 할 것이다. 영국에 찰스 사치가 있다면 우리나라에는 수백 점의 작품을 광주시립미술관과 대전시립미술관에 기증한 재일교포 기업인 하정웅, 그리고 경남도립미술관, 부산시립미술관, 밀양박물관 등에 수백점을 기증한 부산 공간화랑의 신옥진 대표가 있다. 해당 미술관에 필요한 작품을 고민하여 수집하고 기증하는 일련의 과정은 사회적 보상과 명예 획득을 목표로 한 일회적, 이벤트적 기증과는 차원을 달리한다. 자신의 생을 기증으로 완성시키는 기증은 또 하나의 위대한 문화이자 위대한 정신의 실존에 다름 아닌 것이다. 

위인의 족적을 찾기 위해서 무덤 근처만 헤맬 일이 아니다. 인간성의 한계를 초월하여 우리 곁에서 겸손하게 실천하는 자들이 살아있는 멘토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사회적 관심을 모으는 작업 또한 이 사회를 풍성하고 아름답게 만드는 일 중의 하나이다. 먼 곳을 가려면 가장 가까운 곳에서, 높은 곳을 가려면 가장 낮은 곳에서 시작하라는 말이 있다. 가깝고 낮은 곳은 보지도 않은 채 저 너머만을 응시하는 몽상은 망상일 뿐이다.


- 김현숙(1958- ) 홍익대 미술사 박사. 정관 김복진 미술이론상 수상.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 역임. 현 L.A뮤지엄 Associate 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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