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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이름 없이 사라져간 별들에 대한 경의

박준헌

우리에게는 서로의 의사나 가치를 소통할 수 있는 언어가 있고, 이것을 기록으로 남길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이러한 능력이 이성의 산물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이성을 통해 문명 그리고 문화라고 말하는 이념ㆍ예술ㆍ도덕ㆍ학문과 같은 정신적 양상들을 구축할 수 있었고, 경이로운 진보를 이룩할 수 있었다. 이는 오직 인간만이 자신의 삶에 자부심을 가질 수 있고 의미를 발견할 수 있음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1860년생부터 1960년생까지 4,909명의 미술인(비창작미술인은 1970년생까지)의 기초 정보를 모은 『대한민국 미술인 인명록I』(이하 인명록)이 발행됐다. 한국 근현대사에서 가장 역동적인 시기라 할 수 있는 이 시기의 미술가들의 활동사항이 수록된 인명록은 여러모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제일학자인 강상중 도쿄대 교수는 이 시기를 “맹렬한 속도로 근대화를 이뤄냈고, 압축적으로 근대를 통과한” 아찔한 시간으로 표현한 바 있다. 예술이 어떤 식으로든 사회와의 인과적 관계를 갖고 있다는 점에서 본다면 한국의 근현대미술 역시 사회적 급변과 맞물려 경이로운 발전을 거듭했고, 이 인명록에 등장하는 미술인들은 그 전례없는 기적의 터널을 헤치고 지나온 이들이다. 보기에 따라서는 이번 인명록이 그 시기의 수많은 예술가들에 대한 단선적인 정보만이 수록된 인명록에 불과할 뿐일 수도 있겠지만 좀더 세밀하게 살펴보면 근현대 시기의 우리 미술을 조감도적으로 검토할 수 있다. 개별적 작가들의 활동들에서 관찰할 수 있는 특징들, 예를들면 출신 지역이나 학교, 주요한 전시회, 공모전 등을 사회적 분위기와 결합해서 검토한다면 우리 미술사에 대한 보다 풍성한 단서들을 발견해 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근대화의 과정에서 발전이라는 미명 아래 극단의 세기를 온 몸으로 견뎌냈지만 우리 미술(역사)에 대한 후대의 편협한 시각으로 인해 이름없이, 기록없이 사라져간 작고 작가들이 대거 보완되고, 최소한이지만 그들의 행적이 기록되었다는 점 역시 눈여겨 볼 부분이다. 그것의 가공과 평가는 다음 연구자들의 몫으로 남겨 놓는다. 


미술인 표준 약력 시스템 구축을 제안한다
이번 인명록 작업을 통해 내가 각성한 것은 불과 한 두 세기 전의 우리 미술사에 대한 편협한 사고와 지식에 얼마나 무지몽매 했는가였다. 인명록은 우선 그러한 자성의 거울로서 우리를 다시 비추고 있다. 우리 미술사에도 수많은 작가들이 나름의 방식과 예술관으로 역사를 묵묵히 견디며 관통했고 많은 작품들을 남겨 놓았다. 개별 작가나 작품에 대한 예술적 성과나 평가는 후속 연구로 미뤄두더라도 각 작가들에 대한 행적이나 기록들을 우선적으로 최대한 모아야 하고 이는 이제 개인 차원을 넘어 범미술계 차원에서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특히 작고작가들의 경우나 월북 및 재외 지역의 작가들의 경우는 더 늦기 전에 그들이 활동했던 자료들을 하나의 표준화된 분류체계 속에서 데이터베이스화 해내는 일은 매우 시급하다. 아울러 지방자치제 이후 급속하고 설립되고 있는 각 지방의 공립미술관들의 설립이 붐을 이루고 있다. 각 지방의 공립미술관들은 설립과 함께 지역 출신 작가들에 대한 상당한 안배가 정치적 차원에서 이뤄지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차제에 이 인명록에 등재된 작가들을 기초로 하여 각 해당 지역에 연고가 있는 작가들을 파악하고, 누락된 작가가 있다면 보완하여 이를 체계화 시킬 수 있고 관련 정보들을 공유할 수 있다면 보다 더 가치가 있을 것이다.

생존 작가들 역시 각자의 약력 정리와 관리에 있어 보다 더 충실을 기해야 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특히 출생지와 출생년도 그리고 한자명은 어설픈 영문 표기에 앞서는 것임은 잊지 말아야 한다. 아울러 현대의 미술전시 유형이 무척이나 다양한 형태로 전개되고 방식, 명칭도 다 제각각이어서 표본이 될 수 있는 롤모델이 없는 것도 큰 문제점이라 할 수 있다. 이번 인명록 발간과 함께 모든 미술인이 공통으로 사용할 수 있는 ‘표준 약력 시스템(가칭)’ 을 마련하는 것도 고려해 보아야 할 것 같다. 우리처럼 인터넷 기반이 훌륭한 환경 속에서 이러한 표준시스템을 잘 구축한다면 모두에게 매우 유용한 자료가 될 것이다.
이전에도 웹 기반의 작가별 데이터베이스화에 중요성을 인지하고 국가적 혹은 미술계 차원에서 이러한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너무 성급하게 결과에만 치중했던 나머지 가장 기본적인 작가들의 약력이나 거기에 쓰이는 명칭, 대상 자체도 통일시키지 못해 일관성이 없고, 업데이트를 통해 다시 2차 정보로 가공되지 못해 무용지물이 된 선례를 볼 수 있다. 이러한 실패를 거울 삼아 이제 다시 원점에서 가장 기본적인 것에서 한국미술의 데이터베이스화가 어디서부터 시작되어야 하고 무엇이 가장 시급한지에 대한 중론을 모아야 할 시점인 것 같다. 역사는 인류가 살아오면서 남긴 인류만의 고유한 발자취의 통시적 기억과 기록이다. 우리 미술의 통시적 기억과 기록의 한 장으로서 『대한민국 미술인 인명록I』이 그 첫발이 되었으면 한다. 그 다음 걸음을 우리는 다시 준비해야 한다.



박준헌(1970-) 중앙대 미술이론 석사. 미술세계 수석기자, 제주도립미술관 개관기념전 전시기획팀장 역임. 현 Art Management Union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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