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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삐뚤빼뚤 발자국을 이어가는 새로운 ‘수묵정신’의 탐색로를 기대하며

변청자

전통미술, 동양화, 한국화 등 오랜시간 지속해 온 미술에 명확한 이름조차 확정하지 못한 채 엄연한 동시대 미술임에도 현대미술 담론 안에 적극적으로 포섭하지 못하고 있다는 자괴감에 고개를 떨구어왔다. 이러한 때에 ‘수묵’이라는 화두를 미술장(Art Field) 안팎에 던지며 출발한 ‘2018전남국제수묵비엔날레’(9.1-10.31)의 시작은 매우 고무적이며 반갑기 그지없다. ‘오늘의 수묵, 어제에 묻고 내일에 답하다’라는 주제로 15개국 266명의 작가가 출품한 312점이 목포(현대 수묵의 재창조, 문화예술회관 일원)와 진도(전통 수묵의 재발견, 운림산방 일원)에 전시되었다. 많은 작품을 한 번에 보는 즐거움도 있었지만 바쁜 걸음으로 하루를 꽉 채워 보기에 너무 많은 작품 수, 그에 비해 부족한 전시장 규모로 인해 ‘수묵 정신’을 가늠해 볼 여유나 여백을 확보하기란 쉽지 않았다. 다행히 순환버스가 이동의 편의를 제공했지만, 진도에서는 분산된 전시장을 연계하는 순환버스나 대중교통 이용이 쉽지 않아 일부 관람을 포기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럼에도 이번 비엔날레에 엄격한 비판의 잣대를 들이밀고 싶지는 않다. 관련 인프라나 전문 인력이 턱없이 부족한 인구 23만의 도시에서 짧은 기간에 준비한 첫 전시임에도 누적관람객이 29만 명을 넘었다는 점보다는 비엔날레로는 전례가 없던 수묵을 대상으로 했다는 것에 큰 박수를 보내면서 비엔날레의 지속 가능성을 되짚어보지 않을 수 없다.




전시 전경


이번 전시와 관련한 가장 심각한 문제는 외형적 성과와 달리 정작 미술장 안에서 별다른 논란이 없다는 점이다. 긍정이든 부정이든 동시대 미술장 안에 위치 지어지는(Positioning) 여타의 비엔날레와 달리 수묵비엔날레는 미술 공론장으로 들어오지 못한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을 하게 되는데, 역설적으로 이것이 바로 수묵비엔날레가 존재해야 하는 이유가 되지 않을까 싶다. 물질과 형식 가치를 중시하는 서구 인식론의 변화와 궤적을 함께 해 온 현대미술이나 실험과 담론이라는 비엔날레의 범주로 들어갈 것이 아니라 삐뚤빼뚤 새길을 내는 것,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바로 수묵비엔날레의 지향점일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수묵비엔날레는 재료와 장르의 함정에 빠지지 말고 ‘수묵정신’에 관해 함께 답을 구하는 논의의 각축장이 되어야 한다. 그 시작이 바로 ‘수묵(SUMUK)’이라는 지칭, 즉 ‘수묵정명운동(水墨正名運動)’일 것이다. 김상철 총감독이 ‘수묵화’가 아닌 ‘수묵’을 강조하는 지점도 바로 여기에 있고, 그래야만 동양/서양, 수묵/채색, 전통/현대와 같은 이분법에서 벗어나 한국미술이 세계미술장에 새로운 화두를 던질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몇 가지 제안을 하고 싶다.

첫째, 비엔날레의 지향점이 선명해야 한다. 이 전시가 여타 비엔날레와의 변별력을 지니려면 ‘수묵’이 그 핵심이어야 한다. 더욱이 수묵을 ‘종이와 먹’이라는 재료에 따른 구별 도구로 사용할 것이 아니라 물질을 넘어서는 정신으로 합의해 나아가는 담론의 장이자 실천의 터가 되어야 한다. 둘째, 수묵문화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 비엔날레의 지속을 위해서는 좋은 작가와 작품의 생산, 건강한 소비, 양자를 순환시키는 매개, 일명 수묵생태계구축이 절실하다. 비엔날레가 그러한 문화생태계의 허브로 자리매김한다면, 목포와 진도는 2년에 한 번씩 방문하는 비엔날레 개최지가 아니라 한국 나아가 세계 동시대 미술의 새로운 지표가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비엔날레 성과 창출 및 배분의 문제이다. 성과란 경제적 가치뿐 아니라 사회문화적 가치를 포괄해야 한다. 외부 방문객을 늘리는 것 이전에 지역민의 삶의 질 향상에 기여해야 하는데, 그 사례를 스페인의 구겐하임뮤지엄에서 찾을 수 있다. 예술과 연동한 도시재생의 가장 모범적 사례 중 하나로, 많은 이들이 독특한 건축물이나 세계적인 전시회에 주목하지만, 더 근원적 힘은 ‘Learning Through Art’의 상시 운용에 있다. 이를 통해 지역사회의 문화예술 인프라를 구축하고 미래 문화 동력 양산을 지속하는 것, 즉 지역민 스스로가 문화예술의 생산자이자 소비자가 되는 것이다.

앞선 제안이 ‘2020 전남국제수묵비엔날레’에서 다 실현될 것을 기대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지역사회와 작가 및 전문가들의 더 많은 제안과 바램을 담아 장기적인 목표를 설정하고, 그 여정의 첫 몇 걸음만을 떼어도 충분하다. 커다란 그림도 한 획으로 시작하듯. 세련되고 세계적인 전형을 복제하는 것이 아니라 전남 목포와 진도의 향취가 묻어나는 새로운 전범을 만들고 그것을 점진적으로 지속할 수 있는 그러한 문화장의 출현을 기대해 본다.


변청자(1966- ) 홍익대 예술학과 학사, 동 대학원 예술학과 석사 및 미술학과(미술비평 전공) 박사 졸업. 아티누스 점장, (사)한국조형디자인학회 사무국장, 공예트렌드페어 기획위원(2011-13) 역임. 현 경기대 서양화·미술경영학과 초빙교수, 목원대 및 가천대 대학원 출강, (주)꼬레알리즘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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