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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백남준의 <다다익선>에 관하여

서진석

필자는 과거 2006년부터 ‘미디어아트 아카이브 네트워크 포럼’이라는 국제행사를 약 5회 진행했었다. 이 포럼은 ZKM(독일), 시카고 비디오 데이터뱅크(미국), OK 비디오 페스티벌(인도네시아), 몬테 비디오(네덜란드), ICC(일본), FACT(영국), 대안공간 루프(한국) 등 유수의 해외 미디어 아트 전문기관들이 모여, 미디어 아트 작업의 복원과 보존, 디지털 매체로의 변환, 이를 위한 국제적 기술 표준화 시스템 개발 등 다양한 주제를 논의하는 자리였다. 이는 또한 사라져가는 아날로그 시대의 미디어아트 작업들을 지속시키기 위한 매우 중요한 포럼이기도 했다. 

이 포럼을 통해 알게 된 흥미로운 점은 전 세계의 각 미디어아트 기관들은 나름의 정책과 비전을 가지고 미디어아트 작업들을 복원, 보존하고 있었다는 것이었고, 이에 관해 대략 3가지 방법적 정책을 취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첫째는 독일의 ZKM 미술관 방식이다. 그들은 미디어 작품의 보존 복원에 있어, 시각적 원본성을 철저히 고수하고 있다. 예를 들면 그들은 수명이 다하고 있는 미디어 작품의 TV들을 대체할 수백, 수천 대의 TV들을 수장고에 보관하고 있었고, 지금도 지속적으로 대체 TV들을 사들이고 있다. 심지어 신형 프로그램으로 호환될 수 있는 구시대 소프트웨어 프로그램들을 많은 비용을 들여서 다시 복원, 제작하고 있다. 모니터나 비디오 플레이어 같은 하드웨어뿐만 아니라 시각으로 인지할 수 없는 소프트웨어조차도 원본성을 지키려 하고 있는 것이다.  

둘째는 일본의 ICC 미술관 방식으로 미디어 작품의 복원 보존에 있어, 창작자의 동의하에 작품의 시각적 원본성을 변형시킬 수 있는 방식이다. 그들은 아예 미디어아트 작품을 소장할 때 구입 계약서와 복원, 보존 설명서 이 두 가지의 서류를 작가와 함께 작성한다. 기술이 발전하며 진화하는 신매체들을 소장 미디어 작품에 적용시키고, 재제작 할 수 있는 권한을 작가로부터 미술관이 위임을 받는 것이다. 예를 들면 브라운관TV는 LCD모니터-LED모니터-OLED모니터로 바꿀 수 있고, DOS는 Window로 변환할 수 있다. 미디어 작품의 시각적 원본성보다는 내면의 개념을 더 중시하는 것이다. 

마지막은 영국의 FACT 미술관 방식으로 미디어 작품의 복원 보존에 있어, 관람객들이 시각적으로 인지할 수 있는 것은 되도록 교체하지 않고 그 외의 것은 모두 교체하는 방식이다. 즉 TV나 비디오 플레이어 등, 외부로 보여지는 하드웨어는 될수록 원본을 유지하고, 노출되지 않는 소프트웨어 프로그램들은 변환시킨다는 것이다. 심지어 원본성이 어느 정도 그럴듯해 보이면 TV의 케이스는 그대로 두고 내부의 브라운관을 평면 모니터로 교체하여 대중들이 작품의 원본성을 의심치 않게 한다는 것이다. 

미디어아트의 복원 보존에 있어서, 원본성, 경제성, 안정성, 지속성은 4가지 중요한 원칙이다. 원본성은 작품의 오리지널리티에 얼마만큼 충실하느냐이고, 경제성은 복원 보존하는데 들어가는 경제적 비용에 관한 문제이다. 안정성은 복원에 사용하는 미디어 매체가 얼마큼 안정적으로 가동되며 유지되는가를 말한다. 예를 들면 CRT모니터 보다는 LED모니터가, 하드 드라이브보다는 메모리 드라이브가 발열이나 충격에 더 안정적이다. 또한 지속성은 미디어 매체의 사용 변환주기를 이야기한다. 예를 들면 VHS시스템은 약40년 사용됐었고 DVD시스템은 약 20년, 그리고 이제는 DviX시스템으로 바뀌었다. 블루레이(Blu-ray)는 잠깐 사용되었다가 풀HD에 밀려 국제 표준이 되지 못하고 있다. 기왕이면 기술적으로 가장 오래 지속될 수 있고 또한 국제적으로 오랫동안 범용화될 수 있는 표준 미디어 매체를 사용하는 것이 작품 보존의 지속성을 높일 수 있다.   

자! 이제 국립현대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백남준의 <다다익선>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다들 아시다시피 <다다익선>의 TV들은 수명을 다해 일부는 꺼져있었고 지금은 안전의 문제로 아예 작품의 전원을 내려버린 상태이다. 앞으로 이 작업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위의 경험들을 토대로 하면 선택지는 네 가지밖에 없다.

첫째는 원본성에 가장 충실하고 경제성, 안정성, 지속성은 포기하는 것이다. 즉 똑같은 브라운관 TV 모니터를 다시 사들여 전면 보수 복원하는 방법이다. 아직은 브라운관 모니터를 구할 수 있다. 여분의 백업 모니터도 구입해놓으면 지속성을 더 높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브라운관 모니터의 수명은 길게 봐야 10년을 넘질 못한다. 또한 경제적 비용은 다른 해법들 보다 가장 많이들 것이며 안정성도 상대적으로 낮을 것이다.

둘째는 원본성은 다소 포기하더라도 경제성, 안정성, 지속성을 높이는 것이다. 
즉 LED모니터로의 전면 교체 방법이다. 원본성은 훼손되지만 유지 소비전력도 매우 낮고 상대적 모니터의 수명도 길다. 

셋째는 첫째와 둘째의 혼합방법으로 브라운관 TV의 케이스는 그대로 사용하고, 내부의 튜브 브라운관만 LED 모니터로 교체하는 방법이다. 둘째 해법보다는 경제적 비용은 다소 상승하지만 원본성은 그나마 비슷해 보일 것이다.

넷째는 원본성, 경제성, 안정성, 지속성을 다 충족해줄 수 있는 신 기술 매체가 상용화될 때까지 기다리는 방법이다, 예를 들어 OLED(필름) TV가 상용화된다면 브라운관 앞에 필름 TV를 접착하여 작품 보수를 간단하게 할 수가 있다. 심지어 가까운 미래에는 더 간편한 스프레이 TV가 출시될 수도 있다. 기술의 발달은 가속화되어가고 있기 때문에 기술 매체의 변환 시에 원본의 왜곡이나 경제적 비용은 점점 줄어 들어갈 것이다. (10년 전 VHS 영상을 디지털 데이터로 변환하는데 10만 원이 들었지만 지금은 1만 원이고 화질은 더 좋아졌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이 네 번째 해법은 마치 386컴퓨터가 사용될 때 486컴퓨터를 기다리고, 486컴퓨터가 상용화되면 펜티엄급을 기다리는…. 결국은 컴퓨터를 제대로 활용 못 하게 되는 어리석은 짓이라 생각한다. 

결론으로 가자! 필자는 위의 해법 중 첫 번째를 제안하고 싶다. 경제적 비용은 많이 들겠지만 일단 원본성에 충실하자. 추후 10년 뒤 더 좋은 신 기술 매체가 발명되고 상용화되면 그때 다시 변환 교체하여 안정성과 지속성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원본성에 충실한 이 방법을 선택해도 소요되는 비용은 아무리 높게 잡아도 30억 내외가 될 것이다. 무라카미 다카시의 작품 하나에도 미치지 못하는 금액이다. 낭설이겠지만 항간에 백남준의 <다다익선>을 해체하고 다큐멘터리로 대체할 수도 있다는 말도 안 되는 얘기가 나돌았다. 그것은 마치 피카소의 <게르니카>를 해체하고 사진으로 대체하겠다는 얘기와 다를 바 없다. 

21세기 새로운 미래를 상징하는 미술사적 기념비를 가질 수 있는 것은 그 누구도 누릴 수 없는 엄청난 축복이다. 우리는 역사를 지키고 보존해야 한다. <다다익선>은 앞으로도 우리와 함께 아니 세계인과 함께 영원할 것이다.


- 서진석 백남준아트센터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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