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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중년의 보릿고개

박천남

최근 보도에 따르면 세계적인 불황에도 불구하고 한국경제는 지난해에 이어 꾸준한 성장세를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반가운 일이긴 하지만, 피부로 체감하는 실물경제와는 분명한 차이를 보이는 이러한 수상한 경제성장, 즉‘고용 없는 성장’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다른 부문도 그러하겠지만, 미술은 경제상황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경제사정의 변화는 비단 미술시장뿐만 아니라 미술문화 전반에 걸쳐 영향을 미친다. 경제가 어려울 때면 미술은 가장 크게, 직접적으로, 우선 타격을 받는다. 형편이 나아지면 그와는 반대의 어쩌면 가장 적게 또 느리게 지원과 혜택이 주어진다. 다소의 차이는 있겠지만, 국가건, 기업이건, 개인의 경우이건 대부분 비슷하다.


이런저런 불황의 기운과 함께 최근 몇 년 동안 벌어진 몇몇 사건들로 미술시장은 급속하게 위축 되었다. 운영 및 거래 규모가 급격하게 줄었고 크고 작은 전시공간과 미술관이 문을 닫거나 개점휴업 상태인 경우도 생겼다. 국가경제는 성장세를 보이지만, 미술현장 여기저기에서는 여전히 어렵다고들 한다. 반면 특정 연령대의 작가와 일정 형식의 작업들을 대상으로 한 이런저런 프로그램들로 대한민국 미술계는 전례 없는 호황을 보인다. 기이한 현상이다. 새해 들어 국공립을 비롯한 기업문화재단과 국·공사립미술관/갤러리, 국·공사립창작스튜디오 등이 제법 군침 도는 넉넉한 지원프로그램을 앞 다투어 내어 놓고 있다. 현물과 현금등 물질적 지원은 물론, 미술관외부의 전시공간을 임대, 지원하기도 한다. 몇몇 지자체와 일부대학들은 일정 선정작가와 학생들을 국내외에 직접송출 할 수 있는 전시공간과 스튜디오를 마련하여 놓고 프로그램 홍보에 열심이다. 최근에는 미술월간지들도 젊은 작가들을 대상으로한 공모를 시행하고 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국내외 전시, 레지던시 지원프로그램 등도 꾸준하다. 경제상황에 크게 흔들리지 않고 위축되지 않으니 환영할 만하다. 절기는 한 겨울이지만, 미술동네가 후끈 달아 오르고 있다. 연초부터 다양한 공모, 지원프로그램과 그 결과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잠자고 있는 중견·중진 미술인들 깨우기

물론 젊은 작가 울리는 수상한 공모와 뒷북 때리는 지원도 있다. 그러나 분명 미술계 전체로 보아‘건강한’지원책은 환영할 만하다. 문제는 어느 한쪽에 집중되어 있다는 점이다. 21세기 대한민국은 특정 연령대, 특정 경향에 대한 지원으로 넘쳐난다. 오해 없으시길 바란다. 젊은 작가 세상이다. 시장이건, 국공사립미술관 전시건, 창작스튜디오건 젊은 작가들로 넘쳐난다. 지역과 출신학교 등은 이제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불과 10여 년 전과 비교해도 격세지감이다. 미술지형이 빠르게 변하고 있다. 몇몇 학교와 집단, 시장이 견인하던 미술동네가 지원/공모프로그램을 따라 다시 재편되고 있다. 유행처럼 번지는 지원/공모책은 단순 구휼정책이 아니다. 따라서 이러한 지원/공모프로그램이 공정하고 균형 있는 투명한, 건강한 구조로 가야 함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물론 지원/공모 대상에 애써 연령 제한을 두지 않는 곳도 있다. 후발주자로서 특화, 틈새 전략이기도 하고 냉정한 시류 판단에 따른 현명한 결정이기도 하다. 주지하다시피 이러한 시도는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또한 중견·중진을 포함한 지원/공모책에는 현실적으로, 나이가 든, 지명도가 있는, 어느 정도 얼굴과 이름이 알려진 작가들이 지원을 꺼리는 것도 사실이다. 예고나 미대 출강을 통해, 혹은 화실에서 그림을 가르친 제자들과 함께 경쟁하기란 당연 불편한 일일 것이다. 비단 이러한 이유에서만은 아닐 것이다. 언젠가 모 공모전에 이름을 대면 알만한 교수작가가 지원하여 이슈가 되었던 적이 있다. 세상이 빠르게 변하면서 미술 지형도 빠르게 변하고 있지만, 작가에 대한 지원 양상도 빠르게 변하고 있다. 몇몇 작고작가, 원로작가, 유명작가 중심으로 돌아가던 미술동네가 평균적으로 젊어지는 것은 분명 반가운 일이다. 문제는 균형이다. 대한민국의관/민간지원프로그램은 균형을 잃고 있다.


허리가 곧추서야 몸을 바로 세울 수 있다. 한 나라의 미술이 건강하게, 그리고 바로 서려면 척추, 허리세대, 즉 중견·중진작가들의 역할과 이들에 대한 비상한 관심이 중요하고도 필요하다. 대한민국 미술계는 온통 젊은 작가, 특정 경향에 경도되어 있다. 특유의 쏠림 현상은 미술계도 예외가 아닌 셈이다. 균형 잃은 호황 속에 아직 한창 나이인 40-50대 중견·중진작가들이 설자리를 잃고 있다. 상대적으로 위축되어 있다. 크게는 미술시장에서, 작게는 이런저런 지원과 기획전시, 대중적인 관심으로부터 밀려나 있다. 보릿고개... 가히 허리세대인 중견·중진작가들의 춘궁기(春窮期)라 할 만하다. 자주 보지 않게 되고 자주 소개 되지 않으니 잊혀져갈 수밖에 없다. 외형적으로 미술동네 덩치는 커지고 있지만, 체력은 떨어지고 있다. 허리강화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중견·중진작가 스스로의 뼈를 깎는 훈련도 필요하다. 대한민국 미술의 진정한 내공은 허리로부터 나온다. 잠자고 있는 중견·중진 미술인들을 깨워 주어야 한다. 스스로도 다시 깨어나야 한다. 호랑이해, 대한민국의 중견·중진작가들이여 새롭게 포효할 지어다.



박천남(1961- ) 홍익대 미학 박사. 현 한국큐레이터협회 부회장, 성곡미술관 학예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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