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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메타비평으로서의 회화 - 김주경의 <오지호>(1937)

홍지석


김주경, 오지호, 1937

『오지호·김주경 二人畵集』 (한성도서주식회사, 1938) 수록


김주경이 1937년에 제작한 <오지호>는 20호 크기의 유화 작품이다. 컬러 도판의 생생함 때문에 원작이 남아있을 거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지금 원작의 유존 여부는 불확실한 상태다. 컬러 도판이 남아있는 것은 도판이 근대 최초의 원색화집인  『오지호·김주경 이인화집(二人畵集)』(한성도서주식회사, 1938)에 포함된 덕분이다. 『이인화집』은 근대 최초의 원색화집이자 “화집출판의 효시”(김용준)로서 이미 당대에 “조선 초유의 성사”(동아일보)로 주목받았던 역사적 텍스트다. 1938년 11월 황금정 아서원에서 열린 출판기념회에 미술계와 문단 인사 40여 명이 몰려 성황을 이룰 정도였다. 이 역사적 텍스트에 두 화가는 각각 지난 십 년간 자신이 제작한 역작 10점을 골라 실었다. <오지호>는 김주경이 화집에 담은 10점의 회화작품 가운데 맨 끝, 열 번째로 배치된 작품이다. 


1902년 충북 진천에서 태어난 김주경은 도쿄미술학교 도화사범과를 졸업했고, 1905년 전남 화순에서 태어난 오지호는 도쿄미술학교 서양화과를 졸업했다. 나이도 고향도 전공(?)도 달랐지만 둘 사이의 관계는 매우 각별했다. 두 화가는 ‘녹향회’ 활동을 함께 했을뿐더러 1935년 여름에는 함께 만주여행을 다녀올 정도로 돈독한 관계였다. 두 사람은 서로를 ‘오형’ ‘김형’으로 불렀다. 게다가 두 화가는 모두 일광(日光)을 중시하면서 자연풍경을 그렸기 때문에 화풍도 매우 유사해 보인다. 따라서 오늘날 많은 미술사가가 오지호와 김주경을 한데 묶어 1930년대의 ‘인상파적 경향’으로 서술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이미 당대부터 두 화가의 차이에 주목한 논자들이 있었다. 일례로 유진오(1938)는 “양인(兩人)의 콤비와 대조가 매우 흥미를 끈다”면서 오지호를 “허심탄회하게 대상 속으로 자신을 몰입시켜 끈기 있게 그 정체를 탐색하는” 리얼리스트로, 김주경을 “대상은 이데의 제조물이라 화면의 분방한 구성과 붓질”을 구가하는 로맨티스트로 평했다. <오지호>는 자연 풍경 속에서 작업하는 오지호를 보여준다. 그런 까닭에 이 작품은 화가 오지호에 대한 화가 김주경의 이해나 판단을 품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오지호>를 회화의 형식을 취한 일종의 메타비평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작품 속에서 오지호는 캔버스를 앞에 두고 만춘(晩春)의 화개(花開)에 몰입하고 있다. 오지호는 화집에 실은 평문에서 전일(全一)의 상태를 강조했다. 즉 “생명을 느끼는 것”은 “자기의 생명을 가지고 직접 대상의 생명에 접촉해서 대상과 일체가 되는 것”이고 “일체가 되어가지고 사는 것”이라는 것이다. 



김주경, 가을의 자화상, 1936

『오지호·김주경 二人畵集』 (한성도서주식회사, 1938) 수록


<오지호>에 덧붙인 설명글에서 김주경은 “한 봄을 일광(日光)에 쪼인 오형의 얼굴과 실내에 가득한 (오지호의) 신작 화경(花景)과는 틀림없는 동족”이라 썼다. 이 해석은 <오지호>에서 -마치 카멜레온처럼- 풍경과 동일한 색을 공유하며 풍경과 하나 된 오지호의 모습으로 가시화됐다. 반면 김주경은 항상 오지호의 뒤에서 그렸다. 만개한 복숭아꽃, 오얏꽃, 에메랄드의 싹들에 몰두하는 오지호는 “말소리가 가끔 오고갈 때 이외에는 뒤에서 그리고 있는 김형의 존재를 잊을” 때가 많았다. 반면 김주경은 오지호처럼 대상에 가까이 다가가지 않았다. 그에게는 “생명이 극도로 억압된 현실” 속에서 그 현실을 “생명의 자연상으로 끌어올리는 것”이 좀 더 중요했기 때문이다. 황폐한 가을 산에 맑은 푸른색을 더하여 생명의 선율을 자아낸 <가을의 자화상>(1936)을 보라! 이런 차이는 두 화가의 삶의 태도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오지호는 가급적 자연과 더불어 살기를 원했던 반면 김주경은 줄곧 도시에서 살았던 것이다. 두 화가는 빈번히 상대방을 자기가 서 있는 자리로 불렀다. 오지호가 부르자 시골로 내려간 김주경은 만춘의 풍경을 두고 “벌써 이렇게 만발인가”라고 말했다. 그러자 오지호는 이렇게 말했다. “아니 벌써 라니! 어째 이리 인식 부족인가” 김주경도 지지 않았다. “그야 자네가 인식부족이지, 농부하고 화가하고 같을 수가 있는가”.



홍지석(1975- ) 홍익대 예술학과, 동 대학원 예술학과 석사, 미술학과 박사. 단국대, 성신여대, 목원대 강사, 단국대 부설 한국문화기술연구소 연구교수(2008-17) 역임. 제4회 정현웅 연구기금 신진연구 부문 수상(2014). 『해방기 북한문학예술의 형성과 전개』(역락, 2012, 공저), 『동아시아예술담론의 계보』(너머북스, 2016, 공저), 『답사의 맛』(모요사, 2017) 등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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