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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문화발전소로서의 미술관

이준

20세기 후반 이후 세계 주요도시들이 발전소 등 낡은 건물을 새로운 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하려는 노력들이 지속되고 있다. 런던의 테이트 모던이나 시드니의 파워하우스 박물관과 토론토의 파워플랜트, 그리고 제분소의 곡물창고를 개조한 게이츠헤드의 발틱현대미술센터는 지역의 낙후된 건물을 미술관, 전시공간으로 재탄생시켜 도심에 활력을 불어 넣은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최근 국내에서도 이와 같은 사례들이 나타나고 있어 주목된다. 인천 개항기의 근대식 건물을 개조하여 새로운 문화예술 공간으로 재탄생시킨 인천아트플랫폼이라든가 대구시가 노후화된 산업시설인 옛 담배제조창(현 KT&G)의 일부를 전시공간으로 리모델링 한 사례가 그러한 경우이다. 



사회학자 다니엘 벨(Daniel Bell)은 후기 산업사회, 정보사회에 있어서는 산업적인 상품생산보다는 오히려 지식과 서비스가 중심이 되는 사회로 변모하게 된다고 지적한 바 있다. 지난 19세기와 20세기에 있어서 발전소는 산업사회의 근간을 이루는 동력이자, 성장엔진 역할을 충실히 실행해왔다. 이 시기에 발전소는 전력공급이라는 실질적인 기능 이외에도 상품생산을 통해 일상의 문화와 삶의 질을 향상하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하지만 산업사회에서 후기 산업사회, 지식정보사회로 사회구조가 급격히 변화하면서 발전소의 기능은 점차 쇠퇴하고 사회가 필요로 하는 새로운 역할 모델이 필요하게 되었다. 테이트 모던은 이 같은 상황에서 낡은 화력발전소를 개조하여 런던의 낙후된 지역을 회생시키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을 뿐만 아니라, 도심 속의 활력을 불어 넣는 새로운 문화공간으로서 성공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발전소의 기본구조를 유지한 터빈 홀에서 개최되는 유니레버 시리즈(The Unilever Series)는 탁월한 작가 선정 및 파격적인 공간연출로 관람객들에게 강력한 인상을 심어주면서 영국현대미술을 견인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테이트 모던은 시대나 사조 등 기존의 상설전시방식을 탈피하여 주제중심의 연출방식으로 전환하고, 젊은 관객들을 미술관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미술과 음악의 결합 등 다양한 문화행사를 시행하여 문화와 젊음이 살아 숨쉬는 공간으로 변화하고 있다. 산업사회에서 발전소가 에너지를 제공하여 물질적 풍요의 상징인 상품생산의 기반을 마련하였다면, 현대의 미술관은 정신적 가치인 지식정보와 문화적인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후기 산업사회의 문화를 대변한다고 할 수 있다. 오늘날 미술관들은 다양한 미디어 및 스펙터클한 영화산업 등 여타의 문화산업과도 경쟁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만남과 휴식의 장소이든, 미적 감상과 교육의 공간이든, 미술관이 사회 속에서 생산적인 에너지를 제공하지 못하면 문화기관으로서 생존하기가 어렵게 되었다.


사실 오랫동안 현대의 미술관들은 현대미술의 특수성과 전문성을 강조하면서 일반 대중들과의 소통을 간과해왔다. 이제는 미술관장들도 관람객 감소로 인한 미술관의 경영악화를 방지하기 위한 노력들을 다양하게 하고 있다. 갈수록 경쟁이 치열해지는 문화산업의 환경 속에서 관람객을 외면한 미술관이란 더 이상 설자리가 없기 때문이다. 미술관은 일상 속의 공간이지만 색다른 경험을 필요로 하는 장소로써 사회교육의 장이자, 때론 휴식과 이완이 필요한 장소이며, 동시에 새로운 자극과 활력을 제공하는 곳으로 점차 변모해야만 한다. 문화발전소로서의 미술관이란 그런 의미에서 작가나 관람객 모두에게 새로운 에너지를 공급하는 삶의 충전소, 활력 있는 미술관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환경변화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1990년대 이후 건립된 시, 도 단위의 공공미술관 역시 문화발전소라는 개념을 염두에 두고 미술관 운영프로그램의 적극적인 리모델링을 할 필요가 있다. 예외가 있기 하지만 현 단계 우리의 미술관 문화는 소장품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채 미술관 건립이라는  문화 인프라의 구축단계를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의 경우는 짧지 않은 역사를 갖고 있지만 미술관 건립이후 소장품의 구축과 전시 및 운영프로그램에 있어서 시대의 변화에 적극 대응하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최근 국립현대미술관은 옛 기무사 터를 서울관 부지로 확정하여 과천과 함께 서울 도심에 새로운 미술관을 건립하는 계획을 차질없이 수행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나는 국립현대미술관이 지향해야할 중요한 핵심 키워드중의 하나가 문화발전소라고 생각한다. 우리사회도 21세기 문화의 시대를 맞이하여 산업발전소, 경제발전소에서 문화발전소에로의 전환을 꾀할 때가 온 것이다.



이준(1959- ) 홍익대 미술학 박사. 금호미술관 큐레이터, 호암미술관 현대미술부장 역임. 현 삼성미술관 리움 부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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