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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5)미술교육에 대한 ‘단편적’ 기억

김정락

밀로의 비너스, 프랑스 루브르박물관 소장
비너스의 두상은 입시소묘를 위한 기본 석고상 중 하나이다.

실기시험장에서
필자는 80년대에 미술대학을 다녔다. 당시에 미술대학의 입시는 공통적으로 석고모형을 소묘로 재현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많은 입학생이 짧게는 1-2년, 길게는 6년 이상 아그리파며 줄리앙과 같은 서양 고대나 르네상스의 조각품을 복제한 석고상들을 정확하게 묘사하는 데에 심혈을 기울였다. 그렇게 긴 연습의 결과는 정작 당일의 실기시험에서 단 3-4시간 안에 결정되었다. 이 짧은 시험을 위해 개인 화실과 미술학원에서 수많은 미대 지망생들이 석고상을 그리고 또 그렸다. 얼마나 많은 일제 톰보우(Tombow) 4B연필과 켄트지를 사용했던가? 실상 2년 정도 석고 소묘를 그렸다면 대개는 석고상을 보지도 않고도 그릴 수 있게 되었고, 심지어는 한 석고상의 모든 면을 그렇게 외워버려서 실기시험장에서 어떤 자리를 배치받아도 자신이 원하고 자신 있어 하는 측면을 그려낼 수 있을 정도였다. 소묘의 평가 기준이 되었던 정확한 관찰과 묘사력은 공식처럼 암기되는 것으로 바뀌었다. 대개의 수험생은 석고상을 보지도 않고 그렸다. 실기시험장에서의 풍경은 그런 결과를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실기실의 풍경
그런데 정작 대학에 들어와서 교수님들에게 처음 들었던 말은 지금까지 해 왔던 석고 소묘를 잊으라는 것이었다. 이것은 마치 그간 입시를 위해 열심히 외우고 풀었던 공식을 모두 버리라는 것과 같았다. 그래서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하는 줄 알았다. 첫 학기 첫 강의의 설렘을 안고 들어간 실기실에서 정작 교수님은 몇 마디 인사와 간단한 과제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가버렸다. 어느 순간부터 출석은 조교가 와서 불렀고, 교수님을 다시 만난 건 거의 종강에 다다라서였다. 80년대의 실기실에서 학생들은 60 혹은 70년대에 학교를 다녔던 교수나 강사들을 선생님으로 맞았다.
그렇게 실기실의 풍경은 세대를 건너 유지되고 있었다. 그런 실기실에서 학생들은 묵묵히 과제전이나 성적을 평가받기 위해 작품을 그리고 만들었다. 그 와중에 발생한 것이 교수와 학생 간의 무관심이나 편애였다. 때때로 학생들의 곁을 지켜주는 이도 있었지만, 미술 실기에 있어 지도를 받는다는 것은 거의 방목에 가깝거나, 아니면 교수들의 스타일과 자신의 조형관을 학생들에게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식이었다. 그나마 전자의 경우가 더 교육적이었다는 씁쓸한 기억이 남아있다. 그래서 오랫동안 미술교육제도 내에서 수많은 미술학도는 독학을 하든지 아니면 피드백 없는 교육에서 지쳐 나가버리든지 하는 수밖에 없었다.

현재-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에게 경이로운 것은 이러한 교육제도 안에서 한국의 현대미술이 활발하게 그리고 동시대 국제미술에 부응하는 결실을 내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결과들은 언급했던 미술교육제도가 불러온 것은 아닌 것 같다. 과거의 미술교육이 어떤 의미나 영향력을 미치지 않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것이 오늘날 현상의 결정적 근거라고는 보기 어렵다. 오히려 작가들의 각개전투와 같은 개인적 노력이 이 상황을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문제는 현재까지 미술교육이 차지하고 있는 우리나라 미술계 내의 몫과 영향력이다. 그것이 투입된 경제적 비용을 추산해 보아도 그렇다. 정확한 통계에 의존하지 않더라도 한국 현대 미술의 발전에 직접적인 부문인 전시, 작가지원, 작품구매와 미술시장 등등에 투입된 비용과 비교해도 미술교육에 투자된 비용이 압도적인 것은 확실하다. 미술교육도 입시제도와 커리큘럼의 변화를 통해 발전해 온 것은 맞다.
그러나 여전히 미술 입시학원이나 미술대학에 지불되는 비용은 미술계 전체의 비용에 비추어도 너무 비대하다. 그 막대한 비용들이 미술교육 이후에 사용되었으면 얼마나 좋았겠는가? 미술대학을 나와서 어떤 방식이든 미술계에 종사하는 인원은 매우 한정적이다. 그리고 그 한정된 인원 중에서 미술로 생계를 유지하는 경우도 매우 드물다. 요즘 유행하는 말인 ‘헬조선’은 미술대학을 졸업한 이들에게는 이미 오래전부터 유사한 형태로 경험했던 현실이다. 그 비용을 줄이기는 힘들겠지만, 적어도 미술교육의 담당자들은 이제라도 그들이 벌어들이는 비용만큼 교육의 질과 의미를 깊게 생각해 보아야 한다. 이 말은 다름 아닌 미술교육에 종사하고 있는 필자에게 향하는 것이기도 하다.


- 김정락(1965- ) 서울대 미술대학, 독일 프라이부르크대학 미술사 석·박사. 카이스트 대우교수, 서울여대 겸임교수, 김종영미술관 학예실장 역임.『 미술의 불복종』(서해문집, 2007),『 장욱진』(서울대학교미술관 , 2010),『 Diaspora Korean Nomadism』(한림, 2011) 외 다수 지음.『 로카이유와 로코코 자연주의』(서양미술사학회, 2012) 외 다수 논문 저술. 현 한국방송통신대 문화교양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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