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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2)큐레이토리얼 실천: 끊임없는 질문의 과정으로부터

김성우

Irit ROGOFF, Deepa NAIK, 아카데미_다르게 소리내기 ⓒ반아베미술관


1990년대 이후 큐레이팅은 동시대 시각예술의 주요한 화두로 부각되었다. 시각문화의 생산과 매개자로서 큐레이터의 역할이 주목받으면서 큐레이팅학에 대한 학문적 정립과 독자적 역사화는 서구를 중심으로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고, 동시대 예술지형도에서 담론생산의 주체로서 큐레이터, 그리고 그들의 큐레이토리얼 실천방식의 문제는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이슈가 되어가고 있다. 큐레이팅이란 시각예술의 발표, 즉 단순히 전시 등의 형태로 작품을 선보이는 것에 국한된 것만은 아니다. 큐레이팅이란 무엇인가, 무엇을 추구해야 하는가, 큐레이팅 실천의 지속을 위해 어떠한 지식이 활용되고 동시에 어떠한 담론과 역사가 큐레이토리얼이란 이름 안에서 그 지식과 함께 작동할 수 있는가와 같은 고민이 선행되며, 끊임없이 규정되고 다시 또 갱신되어 가고 있다. 결국, 큐레이토리얼이란 큐레이팅을 둘러싼 담론을 내부로부터 고민하고, 그것으로부터 외부에 존재하는 일군의 지식과 결합하여 담론을 생성하기 위한 끊임없는 질문의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이와 관련하여 이론가이자 큐레이터이며, 영국 골드스미스대의 Curatorial·Knowledge 프로그램 교수인 이릿 로고프(Irit ROGOFF)의 큐레이토리얼에 대한 언급을 살펴보자. 그녀는 ‘큐레이토리얼’이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매듭이 풀리듯 끊임없는 질문이 샘솟는 과정이며, 그로부터 비롯된 것을 구현하는 데 중점을 두는 것이 아니라, 그 질문의 과정에 집중하는 비판적 사고라고 규정한 바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생각했을 때, 결국 동시대의 큐레이토리얼 실천, 큐레이팅이 추구해야 하는 지점은 예정된 목적을 지향하거나 저자의 언어를 생성하기 위한 큐레이션과는 차이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녀가 참여했던 네덜란드의 반아베미술관의 ‘A.C.A.D.E.M.Y’(2006) 프로젝트를 보면 그것은 더욱 명확해진다. 이 프로젝트는 ‘미술관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라는 질문으로부터 시작하여, 미술관의 전시와 교육의 행위를 넘어 어떠한 배움의 형태가 발생할 수 있는가에 대한 것이었다. 이것은 제도 비판이나 미술관이 처한 현재 상황으로부터 한 발짝 더 나아가 미술관에 내재한, 그렇지만 쉽게 그려볼 수 없었던 어떤 가능성을 찾기 위한 연속된 질문의 과정 그 자체로 볼 수 있다. 이 프로젝트는 내재된 잠재성과 그것의 실현 사이에서 팽팽한 질문의 과정을 수행하며, ‘무엇을 알아야 할 필요가 있는가?’와 ‘무엇을 알고 싶어 하는가?’ 사이에 스스로를 위치시키고 긴장의 관계를 형성하고자 하였다. 그리고 여기서 한 가지 더 추가해야 할, 또는 마땅히 질문해야 할 또 하나의 중요한 지점이 있다. 왜 그러한 질문을, 왜 그 시점에 논의해야만 하는 것인가에 대한 또 다른 내·외부적 비판과 질문이 존재해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큐레이토리얼 실천이란 내부적으로 이뤄지는 자가진단의 과정을 거치고 그것으로부터 시의성을 확보한 어떤 아이디어를 수면으로 끌어내어 서로의 아이디어를 비교·교환하는 장을 세우는 것이다.

근래에 들어 SNS 등의 매체를 통해 어느 때보다 큐레이터의 역할이 중요한 시점이라는 얘기를 종종 접하고 있다. 거기에는 분명히 많은 함의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한국미술계에서 일어나고 일련의 현상에 대한 긍정적인 반응에서 누군가의 입 밖으로 나온 것은 아닌 것 같다. 근래에 자주 보이는 형식적 세련됨과 감각적으로 잘 다듬어진 형태의 전시가 아니어서, 또는 근래에 자주 회자되는 주제에서 빗겨나 낡은 주제의식에 사로잡혀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기 때문 등 그 이유는 다양할 것이다. 그러나 ‘근래’라는 말이 갖는 유행에 편승하기 이전에, 이러한 상황일수록 큐레이터는 전시나 프로젝트와 같은 특정 시공간을 점유하는 이벤트에 대해 내외부적으로 점검하고, 무엇을, 어떻게, ‘왜, 그리고 지금’ 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자신에게 던지고, 그것을 공론의 장으로 과감히 끌어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큐레이터가 수행하는 이 질문의 과정으로부터 가장 중요한 의미가 발생하는 지점을 짚으며 이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큐레이터의 실천은 내적으로 선행됐던 질문이 외부로 전이되는 순간 그 의미를 획득하게 되며, 그로부터 연쇄적으로 발생하는 그다음의 질문에 의해 확장된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큐레이터가 수행하는 질문의 과정, 그 큐레이토리얼의 실천에서 발생하는 잠시의 시공간에 기꺼이 동참하여 눈과 귀를 열고 함께 한다면 의미는 또 다른 의미를 파생하고, 그렇게 가치는 또 다른 가치를 낳을 것이다.


- 김성우(1981- ) 영국 골드스미스대 큐레이팅학 수학. 부산비엔날레(2010), 공간화랑 재직. 아마도예술공간 전시 ‘PLATFORM b.’, ‘누구의 것도 아닌 공간’ 등 기획. 현 아마도예술공간 책임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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