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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뉴욕의 한인미술가들

곽자인


2014년 뉴욕주재 한국문화원에서 열린 알재단의 아카이브 전시 ‘Shades of Time’



뉴욕이 세계미술의 중심지로 자리매김한지도 반세기가 훌쩍 넘었다. 예술가라면 누구나 동경하는 무대인 만큼 다양한 배경의 작가들이 모이고 풍성한 아트씬이 형성되지만, 경쟁의 치열함 또한 상상을 뛰어넘는다. 뉴욕뿐 아니라 국제무대에서 활발히 활동 중인 중견작가 황란은 “뉴욕에서의 작품활동은 끊임없는 투쟁”이라 말한다. 기본적인 삶의 영위, 작품에 대한 고민, 비주류 작가로서 필연적으로 맞이할 수밖에 없는 차별과 주류 미술계로의 높은 진입 장벽을 매일 피부로 느끼면서도 뉴욕에서 뚝심있게 작품활동을 지속해 나가기는 쉽지 않다는 이야기였다. 이같은 어려움이 한인작가들에게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지만, 비슷한 문화권, 언어권에서 뉴욕에 진출하는 외국인 작가들에 비하면 실제로 겪는 어려움은 한인작가들에게 더 크게 다가온다.


가장 기본적인 뉴욕에서의 활동에 필요한 비자 문제를 해결하는 일조차도 불과 몇 년 전과 비교해 상당히 어려워졌다. 제출해야 하는 서류의 양도 방대할뿐더러 많은 미술계 인사들의 도움을 필요로 하고, 이 모든 준비를 마치더라도 까다로운 심사 때문에 지속적인 작품활동에 어려움이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흔히 ‘아티스트 비자’라 불리는 O-1을 취득한다 해도, 가질 수 있는 직업의 종류가 극히 제한적이므로 생업을 갖고 작품활동을 병행해야 하는 작가들의 경우 이중고를 겪게 된다. 


한인작가들 간의 정보교환을 위한 네트워크도 아직은 부족한 실정이다. 정부지원의 각종 문화사업과 자발적인 노력을 바탕으로 장르를 초월한 워크샵과 강연회 등을 자주 진행하는 타이완계 작가들과 미국 중국인박물관을 중심으로 네트워크를 형성해 온 중국계 미술인들은 이미 주류 미술계에서 중요한 위치에 올라섰다. 반면 한인 미술인 커뮤니티가 실질적으로 영향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정보를 제공하고 전시기회를 창출할만한 미술행정가와 큐레이터, 미술사학자가 필요한데 아직까지는 그 수가 많지 않다. 


또한, 넘쳐나는 한인작가들의 숫자에 비해 한인 컬렉터들이 전무하다시피 한 것도 하나의 어려움이다. 철저한 시장경제에 따라 움직이는 뉴욕의 미술계에서 상품성이 떨어지는 작가를 위한 개인전을 열어줄 만한 갤러리는 많지 않다. 가족이나 친구의 작품을 구입할때도 갤러리를 통해 거래하며 작가의 커리어를 위해 서로가 컬렉터가 되어주는 유태계 미술인들을 보면, 한 명의 영향력 있는 문화예술인을 배출해내기 위해서는 커뮤니티 전체의 노력과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며 아쉬움이 느껴지는 부분이다. 


하지만 이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한인 작가들이 날개를 펼칠 수 있는 여건이 조금씩 완성되어 가고 있다. 가장 고무적인 변화는 한인 작가들이 만드는 다양한 스타일의 작품이 그 자체로 평가받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전까지는 아시안 작가에게 노동집약적, 집단주의 문화의 영향이 드러나거나 역사와 정체성에 관한 고민을 담고 있는 작품을 기대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큰 역사적 부침 없이 미국사회와 비슷한 환경 속에서 자아를 확립한 젊은 한인 작가들이 뉴욕에서 작품활동을 시작하면서 문화적 특수성보다는 보편적인 시대정신을 다룬 작품들도 함께 주목받게 됐다. 동양적 요소를 작품 전면에 드러내지 않고도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사진, 퍼포먼스, 영상 분야의 한인작가들이 늘어난 것은 한인작가들이 보다 넓은 무대에서 활약하고 있다는 증거로 보인다.


한인사회 전반의 문화적 성장도 반가운 일이다. 경제적 안정을 이룩한 이민 1세대와 그들이 마련한 경제적 풍요 안에서 미국 내의 주요 위치에 오른 한국계 미국인들이 문화예술 전반에 대한 관심과 후원, 그리고 미술교육의 중요성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아직은 소수이지만, 한인 독지가들이 다양한 연령대와 경력의 미술가들이 작품제작과 전시기획을 할 수 있도록 금전적인 지원을 함은 물론, 장기적인 비전을 가지고 미술사학자나 미술행정가를 양성하는 일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한인 미술계가 더 풍성해지리란 희망을 품게 하는 긍정적인 변화다.


뉴욕이라는 큰 무대에서 이방인 미술가로 살기란 녹록지 않다. 하지만 한인작가들의 끊임없는 도전과 커뮤니티의 점진적인 후원이 서서히 결실을 맺어나가는 것을 지켜보며 머지않은 미래에 뉴욕의 갤러리와 뮤지엄에서 더 많은 한국의 이름들을 볼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곽자인(1985- ) 오번대 심리학 전공, 프랫대 회화 전공 석사. 현 뉴욕 알재단 프로그램코디네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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