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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삶을 투영하는 예술로서의 한국화를 위한 제언

김백균

오늘날 우리에게 한국화의 모습은 이례적이게도 화단의 적자가 아닌 서자로 비쳐진다. 고등학교까지 공교육을 받은 학생들에게 겸재 정선이나 김홍도는 다빈치나 피카소보다도 생소하고 비단, 종이에 그려진 수묵화 또는 채색화는 유화보다 생경하다. 상황이 이렇게 된 저간의 사정이야 한 마디 말로 이루다 표현할 수 없는 근대이 후 서세동점에 기인한다할지라도, 현대시나 현대소설처럼 우리말의 형식을 잘 보존하고 발전시켜 온 근현대문학의 성취와 비교하면 아무래도 많은 아쉬움이 남는다. 한국화는 근대 이전부터 우리의 삶의 모습과 의식을 표현해왔던 그림 방식을 일컫는다. 물론 한국화가 근대 이전부터 이미 우리에게 익숙했던 조형언어라고 할지라도 한국화라는 이름을 얻게 되는 것은 근대적 사건이다. 한국화 또는 동양화는 서양화와 상대적 관계로부터 출현하였다. 그러므로 오늘날 한국화를 둘러싼 담론 또한 근대라는 틀 속에서 이루어지며, 그 담론의 경계는 크게 전통의 계승과 그 혁신의 문제로 구분해 볼 수 있다. 전통의 계승이란 정체성과 관련된 종적담론을 형성하며, 혁신의 문제는 시대정신과 관련된 횡적담론을 이룬다. 또 정체성의 문제는 정신과 형식이라는 두가지 관점에서 논의되고, 시대정신은 근대성의 문제와 결부되어 외래문명의 유입과 자생성이라는 두 가지 관점을 지닌다. 형식은 또 질료와 장르의 문제를 내포한다. 이러한 각각의 문제들이 독립된 것이 아니라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커다란 한국화 정체성의 담론을 형성한다. 따라서 이중 일부분의 문제만으로 한국화를 설명하려고 할때 한국화에 대한 총체적 이해가 결여된다. 그 동안 한국화를 둘러싼 여러 담론이 불충분하게 여겨졌다면 바로 이 점에 기인했을 것이다.


흥미로운 것중의 하나는 근 한세기가량 이루어진 그 수많은 한국화 정체성 담론 내지는 논쟁이 비록 미술이론에 종사하는 학자들의 입을 통해 전개된다 할지라도 실제 창작을 담당하는 작가들에게 더욱 절실한 것이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담론의 중심에는 언제나 새로운 창작을 위한 조언이라는 드러나지 않는 의도가 숨어 있었다. 그러나 실제로 이루어진 담론은 하나의 문화현상을 설명하고 이해하는 방식으로 전개된 것이 아니라 어떠한 이념적 이상을 설정하고 그 것을 추구하는 방식을 선호하는 모습으로 진행되었다. 그 까닭은 한국화란 마땅히 어떠한 모습이어야 한다는 포맷을 설정하고 진행되었기 때문이고, 어떠한 방향을 설정하고 그 방향으로나갈 것을 요구하는 배경에는 수많은 한국화 담론의 요소 중 자신이 설정한 몇 가지 요소에 치중하여 총체적 시야를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는 사이 우리의 삶의 양태는 서구화되고 한국화는 삶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였으며, 한국화는 우리의 삶을 대변하는 대표양식이 되기보다는 미술계에서 소수로 전락하는 상황을 맞이하게 되었다. 상황이 이처럼 절박해지자 몇몇 의식있는 한국화작가들은 다시 한국화의 문제점을 진단하게 되고 전통과 혁신 사이에서 끝없는 방황을 시작한다. 외부의 상황이 더욱 악화될수록 형식적 전통을 강조하게 되는 것은 이러한 상황의 반작용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는 마치 나오려고 발버둥치면 칠수록 더욱 깊이 빨려들어가는 갯벌처럼 악순환으로 작용할 뿐이다.


한국화의 침체는 작가의 책임

이제 한 발 뒤로 물러서서 보자. 장르의 문제를 떠나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그 것은 바로 예술적 성취다. 어떠한 형식으로 어떠한 문법으로 소통하든 가장 중요한 것은 의사의 전달이다. 만약 어떠한 작품이 지금 현재 우리의 모습을 전형화할 수 있다면 그래서 우리의 삶을 반성하고 우리의 인식의 지평을 열어주었다면 그 언어가 어떠한 것이든 상관없다. 예술적 가치는 형식의 준수에 있는 것이 아니라 어느 누구도 탐험하지 못했던 인간의 정감세계를 드러내는 데 있다. 창작의 영역은 무엇보다도 자유로워야 한다. 새로운 예술적 세계를 창조하는데 있어 어떠한 것도 제약이 되어서는 안된다. 형식이란 감정을 소통하는데 있어 나의 도구(tools)에 불과하다. 우리가 형식적 전통을 중요시 하는 것은 그 속에 언어로써의 공통된 인식이 내재하기 때문이다. 기호가 내포하는 의식을 공유하는 사이에서 우리는 많은 설명을 배제할 수 있다. 그러므로 사회적 의식을 공유하는 전통은 쉽게 벗어 던져 버릴 수 없으며, 이렇게 형성된 사회적 의식은 개인의 의식을 형성하는 데 결정적 기여를 한다. 개인과 사회는 이렇게 형식적 기호와 그 기호가 만들어 낸사회적 의식에 의해서로 유기적으로 맺어져 있다. 오늘날 한국화가 침체되었다면 그 것은 전통적 형식이 잘못되어서가 아니라 그러한 조형언어로 훌륭한 예술적 전형을 만들지 못한 작가에 책임이있다.



김백균(1968- ) 중국 베이징대 철학 박사.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특별연구원 역임. 현 중앙대 한국화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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