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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6)미술정책의 방향

홍가이

경제발전 계획 및 운영·행정 등 모든 정책을 중앙에서 통제하여 일괄적으로 운영한 결과, 60년대 초반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 하나였던 한국은 불과 50년 만에 전 세계 10위권의 국제교역국이자 경제대국으로 발전하였다. 이제 한국의 화두는 현대적인 민주국가이자 문화선진국으로 업그레이드되는 것이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산하에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한국콘텐츠진흥원 등 여러 예산집행기관을 거느리며 문화정책을 입안·운영하며, 매년 몇조 단위의 예산을 집행한다. 하지만 경제발전 과정처럼 문화발전은 속도가 붙지 않고 있다. 왜 그럴까? 

우선 정부의 문화정책 입안과정에 투명성이 부족하다. 공공토론을 통해 사회적 합의를 이루는 과정은 생략된 채, 그때마다 소수의 문화전문가가 기획하고 인맥, 학맥, 지연을 통한 정책 입안은 물론 예산 할당과 집행까지 주먹구구식으로 진행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선출된 것도 아니고 전문성도 검증받지 못한 문화권력자들이 음지에서 한국문화정책을 좌지우지한다면 이는 현대적 민주국가로서의 개방적인 선진 현대예술문화의 국제적인 중심지로 도약하는 목적에 위배되는 것이 아닌가. 또 현실적으로도 이러한 정책 입안 및 결과는 참혹한 실패의 연속이 아니었나? ‘디지털’이라는 이름을 붙인 온갖 엉터리 문화콘텐츠프로젝트에 얼마나 많은 혈세가 낭비되었으며, 예산 먼저 따고 보자는 사이비 전문가들이 날뛰는데도 정부 대처는 미흡했다. 영국 케임브리지대 장하준 경제학 교수는 ‘사다리 걷어차기’를 하는 선진국의 위선적이고 은밀한 방해를 어렵게 극복하며 이룩한 한국의 경제발전이 IMF 외환위기를 계기로 영미 패권적 금융자본주의 체제에 자발적으로 종속하였다고 진단한다. 영미 패권적 금융자본주의의 또 다른 이름인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는 다분히 서구 중심부로부터 기획된 조류에 한국의 사회·교육·문화의 모든 분야가 자발적으로 종속되었다. 김영삼 정부는 세계화가 곧 한국의 선진화라는 신(新)식민지적 공식을 자랑스러운 정부문화정책으로 떠벌렸다. 한국의 현대미술도 예외가 될 수는 없었다. 광주비엔날레나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을 비롯해, 얼마나 많은 서구에서 기획된 순회작품전들이 한국으로 쏟아져 들어왔는가. 또 할리우드식 문화콘텐츠나 뉴욕의 링컨센터를 모방한 문화기관을 위한 기획이 전국 방방곡곡으로 퍼져 나갔다. 

한국이 세계적 미술중심지로 업그레이드되려면 무엇보다도 장기적인 안목으로 교육정책이 일관되게 추진되어야 한다. 입시, 교과과정, 졸업생의 취업문제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미술정책에서 다루어져야 한다. 매년 졸업하는 미술대생의 90%가 실업자의 신분이 된다. 미국은 대공황 속에서 청년실업률이 50%에 육박할 때에도 공공프로젝트를 통해 작가들이 생계를 유지하며 작업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잭슨 폴록이 이런 사회복지 프로그램을 통하여 40년대 말 뉴욕 추상표현주의 미술의 거장으로 거듭날 수 있었다. 한참 침체에 빠져 있는 동양화 또한 고답적인 동양화론을 벗어난, 새로운 예술철학의 틀 속에서 담론을 재창출하는 비평가그룹의 교육과 뒷받침을 해야 한다. 90년대 런던에서는 금융자본주의의 패권적 동력의 공식을 현대미술시장에 응용하여 그때까지 파리, 뉴욕, 베를린에 뒤처져 있던 런던을 단숨에 전위예술의 메카로 만들었다. 이것은 피에르 부르디외가 지적했던 것처럼 인위적으로 조작된 전위(Mediated Avant-garde 또는 Manufactured Avant-garde)의 개념이었다. 런던 또한 전위예술로 미술분야에 국제적인 거품을 일으켰던 것이다. 

서구 중심부를 단순히 모방하는 문화정책과 교육 때문에 경제처럼 문화 또한 선진화의 임계점을 넘기지 못하고 있다. 세계각지의 그 많은 국제아트비엔날레에서 레디메이드 공식처럼 범람하는 후기 모더니즘이니, 다문화주의 등등의 현대미술 담론들이 실상은 패권적 국제금융자본주의의 위장된 세계화를 위한 위장된 허구의 담론이란 것을 한국의 문화 엘리트들은 간과하는 것 같다. 친일사관 만큼이나 친금융자본주의에 종속된 세계관도 위험천만이다. 

지금의 역사적 시대정신은 세계적으로 새로운 예술(미술을 포함)을 고대하고 있으며, 한국에서도 그런 예술이 나올 수 있다. 이를 위해 서구 허위의 담론이 아닌 시대가 요구한 새로운 국제적 예술조류의 담론이 한국에서 나와야만 된다. 예술작품보다도 담론이 먼저다. 구글의 알파고를 보고 또 서구의 과학기술에 압도되지 말길. 기술엔 첨단이 있을 수 있지만, 문화에선 첨단이란 말이 적용되지 않는다. 비트겐슈타인은 문화는 삶의 형태이자, 언어게임의 일종이라고 했다.


홍가이(1948-) 미시간대 수학·물리학·철학 박사, 이탈리아 우르비노대 국제기호학과 언어학연구소 학위 취득, MIT 철학박사. 이화여대, 와그너대, 프린스턴대, 케임브리지대 처칠칼리지, MIT 및 한국외국어대 교수 역임. 『현대미술문화비평』(미진사) 및 『Nostoi: Chilcdren of Prometheus』(Space Publication, 1988),  『Hiroshima Elegy』(International Youth Theatre Centre, 1984, Amazon Reprint, 2014) 등 다수 저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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