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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한국 미술대학의 정체성 찾기, 그 변화를 알리는 신호탄

변종필

홍익대 미대의 입시실기고사 폐지 발표를 접하며

얼마전 홍익대가 ‘미대입시 실기고사 폐지’를 발표했다. 올해부터 단계적으로 실기고사를 줄여 2013학년도 부터는 완전히 폐지하겠다는 계획이다. 놀라운 선언이다. 명실상부 50년이 넘도록 우리나라 미술대학을 대표하며, 수많은 미술인을 배출한 산실로부터 터져나온 변화라는 점에서 그 파급효과가 만만치않다. 실제 이 같은 내용이 발표된 직후, 반대와 찬성의 이견이 날카롭게 대립하고 있다. 그럼에도, 현행 실기시험의 한계점이 드러난 이상 홍익대의 입시개혁 의지만큼은 일차 환영하는 분위기이다. 특히 이번 발표가 홍익대가 추구해왔다는 창의적인 입시전략에도, 해를 거듭할수록 주제 및 소재의 제한성, 기법에만 치중하는 이른바 숙달된 기능인을 뽑는 결과로 이어지고, 이 과정에서 사교육의 의존도만 높인 부작용을 낳았다는 자가진단후 내려진 처방이라는 점에 주목하게 된다.


문제는 선발과정이다. 과연 어떻게 선발할 것인가. 아직 구체적인 방안은 없고, 현재로는 실기 비중을 낮추는 대신 미술전문 입학사정관과 미대 전임교수들로 구성한 면접을 강화하여 특기적성, 상상력과 잠재력, 창의성과 같은 미술창작에 반드시 필요한 소질을 평가하는 것에 초점을 두겠다는 정도이다. 이 발표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객관성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시기상조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더욱이 창의성도 중요하지만, 자신이 상상한것을 원하는 대로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것이 미술작가의 필수덕목이라는 입장에서 입시 실기폐지를 우려하기도 한다.


이러한 견해를 전면부정하거나 외면할 수 없다. 다만, 여기서 필자가 지적하고 싶은 것은 국내 미술대학이 대부분 비슷한 입시전형을 치르는 것에서 이미 한계성을 내포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즉, 개인별 예술가적 가능성을 평가하기보다는 하나의 완벽한 모범 답안지를 만드는 식의 정형화되고 도식화된 반복 학습이 미술대학 취지와는 다르게 오히려 창의적 발상을 가로막는 걸림돌이 되었다. 주지하다시피 예술은 어떠한 하나의 형식이나 내용으로 정의할 수 없다. 동시에 예술의 불확실성이 궁극적으로 또 다른 예술적 행위를 이끄는 원동력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따라서 창의력을 지닌 예술가를 선발하는 기준은 대학마다 다를 수 있고, 그에 따른 실기시험 역시 다양한 방법과 내용으로 실행할 수 있다. 예컨대 전통회화, 전통공예를 전수하고 보존하는 대학과 현대미술의 다양성을 추구하고자하는 미술대학은 설립취지부터 다를 수 있다. 따라서 이에 관련한 입시실기는 당연히 차별화 되야한다. 이러한 내용은 새로운 것은 아니라 이미 인식화된 부분이다. 다만 ‘실천 의지와 주관적 판단에 따른 평가를 얼마나 신뢰하고 받아들일 수 있느냐’ 하는 우리의 자세에 달렸을 뿐이다.


미술대학의 역할과 위상의 정립

우리는 심심찮게 대학의 정체성 찾기를 주창해왔다. 그러나 논의와 변화의 폭은 늘 제한적이었다. 솔직히 대학마다 스스로 정체성을 확립하기 보다는 몇몇 대학의 입시 변화에 의존한 채 독창적이며 창의적인 입시제도 마련에 소홀했다. 이 점에서 이번 홍익대의 선언적 발표는 국내미술대학들이 변화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한다는 의미가 있다. 한 사람의 세계적 예술가를 발굴하는 노력보다 미술대학으로서 살아남기위한 경쟁논리가 앞선 현실에서는 미술대학의 발전미래상을 그릴 수 없다. 따라서 현재의 사업적 이익을 떠나 한국미술 발전의 초석을 굳건히 다진다는 마음가짐이 중요하다. 무엇보다 획일화된 평가로부터 오는 부정적인 결과를 충분히 경험했다는 점에서 단지 객관적 대안의 부재를 이유로 변화를 회피해서는 안된다. 


시대에 맞는 가치형성과 객관적인 미적판단기준을 위해 끊임없이 토의하고, 공론화하여 현재보다 한층 발전적인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궁극적으로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창조적 대안은 미술에 대한 국민적 관심과 교육의 위상을 높여주는 연동효과를 가져온다. 프랑스처럼 세계미술을 이끄는 국가일수록 국민의 예술적 지수(Artistic Quotient)가 높은 것은 좋은 실례이다. 결론적으로 미술이 대학을 위한, 입시를 위한 대상이 아니라 ‘미'란, ‘예술'이란 무엇인가의 본질적 물음을 철학하는 창의적 시스템이 앞으로 미술대학의 역할과 위상을 정립해주는 새로운 기준이 되어야한다. 한국미술대학의 정체성찾기의 신호탄이 쏘아올려진 지금, 미술대학의 올바른 성장을 위한 철저한 준비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변종필(1968- ) 경희대 미술사 박사. 조선일보 신춘문예 미술평론부문 당선. 한국미술품감정발전위원회 연구위원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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