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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9)미술교육의 패러다임을 바꾸자

박지영


런던의 한 미술관에서 아빠와 아이가 그림 감상을 하고 있다. 

어린이들은 어릴 적부터 미술관을 수시로 드나들며 미술감상을 생활의 일부로 받아들인다. 


초등학교 미술교육과 관련한 몇 가지 해프닝을 얘기해야겠다. 얼마 전 지인에게서 들은 이야기다. 초등학생인 아이가 미술 시간에 토끼를 그렸다. 그 아이는 초록색 토끼를 그렸다. 선생님이 왜 토끼가 흰색이 아니라 초록색이냐며 아이를 나무랐다. 다시 흰색으로 고쳐 그리라고 했다. 아이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토끼는 풀을 먹으니까 몸도 풀빛이라고 생각했는데…”. 아이는 이후 부모를 따라 미국에 이민을 갔는데 상황은 180도 달라졌다. 아이가 무얼 그리든 선생님은 흥미롭게 봐주고 재미있어 했다. 자신감을 갖은 아이는 향후 미대에 들어갔고, 이후 미국의 유명 컴퓨터 회사의 아트디렉터로 승승장구하고 있다. 그 아이가 한국에 계속 있었다면? 다른 결과가 나왔을 것이다. 

‘반 고흐전’, ‘오르세 미술관전’ 등 해외 유명 작품이 한국에 상륙하면 초등학생 엄마들은 팀을 짜느라 바빠진다. 아이들의 미술감상 교육을 위해서다. 미술관의 도슨트 설명이 성에 차지 않는지 외부 기관의 전문 미술교육 강사를 섭외한다. 교육 과정은 이렇다. 강사는 일단 5-6명으로 팀을 짜서 전시장에 들어가 전시작품을 설명한 뒤, 커피숍에 앉아 관련 작품을 그려보고 이야기 나눈다. 이 ‘특별한’ 미술감상 교육의 비용은 자그마치 6만 원. 돈이 없으면 제대로 된 미술감상도 어려운가 하는 씁쓸함이 든다. 

위에서 언급한 사례들처럼 강산이 몇 번 변한들, 우리나라의 초등학교 미술교육은 엘리트 교육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미술이 영혼의 자유로움을 표현하고 또 이를 마음으로 느끼는 예술임에도 불구하고 늘 ‘정답’이 있다. 토끼는 하얀색으로 그려야 하고, 반 고흐가 인상파라는 배경지식을 알아야 한다. 초등 저학년 때 학교에서 대대적으로 열리는 미술 그리기 대회에서 상을 타려면 강사에게 따로 ‘특훈’을 받아야 한다. 예상 주제를 잡고 강사의 도움을 받아 그림을 몇 날 며칠 똑같이 반복해서 그려본다. 아이의 창조적인 생각이나 개성은 고려대상이 아니다. 누구나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이 초등학교 미술교육 관행에 나는 번번이 좌절했다. 영국 유학 시절 그들의 자유로운 미술교육을 직접 보고 체험했기 때문이다. 미술교육이라고 거창하게 말할 필요도 없다. 그냥 미술을 보고, 느끼고, 감상하면 끝이다. 초등학교 1학년인 아들아이와 반 친구들이 수업시간에 테이트모던미술관을 찾았다. 각자 맘에 드는 그림 앞에 선 아이들은 미술관 바닥에 엎드려 하얀 도화지에 위대한 작가들의 그림을 따라 그렸다. 작업이 끝나자 미술관 직원은 아이들이 고른 그림이 그려져 있는 엽서를 한 장씩 선물로 주며 그림에 관한 뒷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영국 런던의 내셔널갤러리에서는 초등학교 학생들을 위한 미술감상 교육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출처:내셔널갤러리 홈페이지)                

미술관에서 하는 어린이 교육은 이처럼 체계적이고 배려 깊다. 테이트모던미술관을 포함한 런던의 공공미술관은 어린이 미술감상 전문 교육자가 상주하고 있다. 런던의 각 초등학교에서 미리 신청해서 미술관을 방문하면 전문 교육자가 아이들의 시각에서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고 아이들의 의견을 듣는다. 누구보다 어린이 미술감상에 심혈을 기울이는 세계적인 미술관인 내셔널갤러리의 목표는 간단명료하다. ‘아이들이 그림을 생생하게 접하게 해 이를 보고(Look), 생각하고(Think), 상상하기(Imagine)’이다. 굳이 무엇을 주입하려고 하지 않는다. 물론 런던의 각 초등학교에서 수시로 미술관에 방문할 수 있는 것은 영국의 국공립 미술관과 박물관이 입장료가 무료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긴 하다.

영국은 오늘날 창조경제의 선봉에 서있다. 패션, 공연, 영화, 미술, 방송 그리고 심지어 요리산업까지 전 세계로 수출하고 있다. 이들의 콘텐츠가 널리 사랑받는 이유는 창조성에서 기인하지 않을까 싶다. 어렸을 때부터 미술관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며 느끼고, 따라 그려보고,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아이들이 커서 오늘날 영국 창조경제의 주춧돌이 되고 있다. 우리나라도 창조경제를 무조건 외칠 게 아니라 지금이라도 자라나는 어린이들에게 제대로 된 미술감상 교육을 해야 한다. 학교를 벗어나 미술관으로 향하라. 보고 또 보고, 거기서 미술감상의 기쁨을 느끼게 하라. 이것이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바꿀 수 있는 시작점이 되리라 확신한다.


박지영(1973- ) 소더비 인스티튜트 오브 아트 석사, 성신여대 문화예술경영학과 교수. 『아트 비즈니스』(2014), 『런던 비즈니스 산책』(2013), 『런던홀릭』(2009) 저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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