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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7)한국미술을 위해 봉사 할 수 있는 관장을 기다리며

이제훈

한국일보, 2015.06.11 보도

국립현대미술관 관장이 아홉 달째 공석이다. 정형민 전 관장이 비리로 물러난 뒤 추진된 관장직에 대한 공모가 무산되면서 직무대리 체제가 앞으로 얼마나 더 지속될 지 가늠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를 두고 “국립현대미술관은 관장이 없어도 잘 돌아가는 기관인가 보다.”라는 비아냥이 나온다. 공모제로 인한 부작용이니 임명제로 돌아가자는 엉뚱한 주장도 있다. 거기에 외국인 관장을 검토한다니 가관이다. 

문제는 낙하산이다. 정권이 바뀌면 국공립기관의 기관장들이 줄줄이 바뀐다. 집권에 기여한 사람들에게 한 자리씩 떼어주는 관례에 따른 것이다. 그들의 입맛에 맞게 기관을 움직이기 위한 목적도 있다. 국립현대미술관장 자리도 그렇다. 깜냥이 안 되는 인사들이 기웃거리게 만드는 온상이다. 임명제든 공모제든 결과에선 별 차이 없다. 서울대미술관 정형민 관장이 국립현대미술관장으로 자리를 옮긴 것은 공모제 절차를 따르기는 했어도 박근혜 정권과의 인연이 크게 작용했다는 게 일반적인 시선이다. 그의 임기를 늘려주었다가 해임한 것은 직원채용 비리에 따른 문책의 형식을 띠었지만 정권에서 보기에 그를 ‘더 이상 관장으로 두어선 곤란하다.’라는 사정이 있었다고 보는 게 옳다. 문화체육관광부에서 후임자 최효준 전 경기도립미술관장에 대한 임용을 거부한 것도 마찬가지다. 객관적인 인사를 하겠다는 취지로 만든 인사혁신처에서 선발해 통보한 결과를 따르겠다던 문화체육관광부가 “적격자가 없다”며 없었던 일로 한 데는 최 관장이 정권의 입맛에 적격하지 않다는 판단이 작용했다고 본다. 이미 결정이 난 사안을 넉 달이나 질질 끌다가 사퇴형식을 요구하다니 그들의 고민이 얼마나 컸는지 짐작할 만하다. 
 
침몰하는 국립현대미술관을 인양하라
낙하산 임용의 피해는 고스란히 미술계에 돌아온다. 국립현대미술관이 정상적이지 않은게 어제 오늘이 아니지만, 요즘은 더 심각하다. 눈에 띄는 전시가 없다. 전시의 질보다는 챙겨야 할 양이 우선한다. 그 결과로 한해 50여 개의 자잘한 전시가 이어진다.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기획한 전시치고 세계적으로, 아니 한·중·일 3국 사이에서 문제적인 전시라고 꼽힌 적이 한 번이라도 있었는지 자문해 보라. 
 
인력운용도 심각하다. 법인화를 전제로 서울관 학예직을 1년짜리 계약직으로 채움으로써 장기적인 안목보다는 당장 시선을 끄는 전시가 상시화하는 결과를 낳고 있다. 해괴한 것은 과천관과의 학예 및 전시디자인 인력교류를 끊어 통합적인 전시 운용이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꼴이다. 컬렉션에도 영향을 미친다. 체계적인 연구를 바탕으로 한국미술사를 대표하고 빈틈을 메울 작품들을 구비하는 것과 거리가 멀다. 작품선정을 위한 위원회는 거수기 노릇을 한다. 위원 구성에 관장 개인의 입김이 작용해, 컬렉션에 대한 비전을 세워 큰 그림을 그리지 못함은 물론 관장의 친소(親疏) 관계가 작용한 작품을 걸러내지 못한다. 그런 결과가 소장품 전시로 이어지니 당장은 작가, 관객이 피해자이고 길게는 한국미술사적인 불행이다.

국립현대미술관장의 장기공석 사태는 미술인의 자존 문제다. 도대체 정권은 한국미술을 어떻게 보기에 그러는 걸까. 정권은 한국미술인을 어떻게 보기에 그러는 걸까. ‘졸(卒)’로 보기 때문이다. 관장을 두고, 또는 관장 임용방식을 두고 미술인들 사이에서 암투를 벌이는 것은 스스로 ‘졸’임을 인정하는 꼴이다. 참 못났다. 정권 입맛대로 임명해 정권과 운명을 같이하는 관장은 곤란하다. 능력 있고 누구나 자랑스러워하는 관장을 갖고 싶다. 한국미술을 위해 수십 년을 봉사하는 그런 사람. 그러기 위해서는 어찌해야 하는가. 그게 고민해야 할 우리의 문제이며 내부로부터의 개혁도 필요하다. 침몰해가는 국립현대미술관을 인양해야 한다.


이제훈(1960-) 개인전 12회, 동신대 겸임교수, 국립현대미술관 자문위원. Art광주 2013 집행위부위원장 역임, 대한민국미술인상 특별문화공로상 수상 2014. 범미술인행동300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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