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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예술가가 필요할 때

김지연

김기라, 광배프로젝트, 설치장면, 2014, 지리산프로젝트 2014 설치 작품

처리 곤란한 유휴공간이 있는데 이 공간을 활성화시키고 싶을 때, 지역 사람들의 마음을 얻어야 하는데 그들의 경계심을 자극하지 않으면서 다가가는 방법이 필요할 때, 비루하다고 여겨지는 일상에 활력을 불어넣고 싶다고 말하는 돈 있는 사람을 만났을 때, 자금이 필요한데, 지금 자기들의 시스템이나 명분만으로는 국비나 시비를 받을 수 없어 이를 얻기 위한 장치가 필요할 때, 지금까지와는 좀 다른 무언가가, 뭔지 잘은 모르겠지만 새로운 게 필요한데 좀처럼 감이 오지 않을 때, 그 외에 많고도 다양한 목적을 가지고 공무원이나 기업인, 기획자 등의 사람들은 예술=예술가를 찾는다.

그들은 악조건에도 아랑곳 않고, 그 환경에서 가장 잘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실현한다. 지금껏 내가 만나서 함께 일해 본 대부분의 작가들은 늘, 내가 제공한 조건이 민망할 정도의 좋은 작업으로 프로젝트를 이끌어줬다. 그래서 나는 어떤 프로젝트를 제안받을 때면, 혼자 고민하기보다는 작가들에게 전화하고 상의하는 편이다. 그러면 그들은 어김없이 틀에 박힌 나의 생각을 환기시켜주는 아이디어를 흔쾌히 내어준다. 나에게 예술가는 그들 자체가 ‘해법’인 셈이다. (이렇게 적어나가다 보니 나도 모르게 그만, 내가 예술가들을 ‘도구’로 생각하는가 싶어 뜨끔한데, 일단은 공존공생의 방법이라고 생각하련다.) 

'2014 아트쇼부산'을 위해 일했을 때는 장윤성 작가가 그 역할을 해주었다. 천정 낮은 한국 아파트에 걸만한 소품 위주로 진열된 100여 개의 부스만으로는, 매년 세계 유수의 아트페어를 돌아보며 세계 시장의 흐름을 꿰고 있는 컬렉터들을 만족시킬 수 없다. 화랑들이 판매를 고민하느라 선보일 수 없는 작품들, 외국아트페어에 가면 볼 수 있는 규모 있고 포토제닉 한 작품이 필요하다. 짧은 시간에 설치가 가능하면서 공간을 제대로 장악할 수 있어야 하고, 사람들의 시선을 제대로 끌 수 있는 작품을 해주었으면 한다는 제안에 작가는 작품을 모두 세팅한 뒤 운전해서 전시장으로 들여오면 되는 <트럭> 작품을 계획했고, 이 작품은 짧은 지면에 옮기기에는 너무 복잡하고 다양한 반향을 일으키며 '2014 아트쇼부산'의 상징적인 작품이 되었다.

창원조각비엔날레에서 마산 원도심 일대를 중심으로 작업을 풀어갈 때는 심지어 전시 공간 임대부분까지도 그들의 도움을 받았다. 기획단이 아무리 접촉해 봐도 잘 안되던 공간임대 문제가 이원호 작가와 동행하면서부터 풀려나갔다. 우리가 빌리려고 했을 땐 거절당한 공간을 허태원 작가가 빌리기도 했다. 기획단은 작가들 옆에서 그들의 ‘ 임대 노하우’를 지켜보며 감탄했다. 미술의 틀을 넘어,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함께 만나 생명과 평화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며 호기롭게 출발한 지리산프로젝트에 작가들을 불러들였을 때 기획단은 정말 가난했다. 돈이 없으면 일을 말아야 하는데, 기획팀은 뻔뻔하게도 밥과 숙소만 주면서 작가들을 지리산으로 유혹했다. 그렇게 엮인 예술가들은 좋은(?) 마음으로 그곳이 아니면 볼 수 없는 작품들을 선보였고, 추상적으로만 느껴지던 ‘우주예술’이라는 주제를 구체화시켜 주었다. 지리산프로젝트는 작가들의 놀라운 ‘생산력’을 지켜볼 수 있었던 프로젝트였다. 그래서 흥미로웠지만 정말 미안했다. 명분을 내세워 재능을 기부하게 한 것이 불편했다. 웃으며, “다음에는 잘 해주세요.” 라고 말하던 작가들은, 대체 얼마나 많은 곳에서 이런 식의 대화를 나누며 쓴 웃음을 지었을 것인가.

그렇게 작가들과 여러 프로젝트를 만들어가면서 보낸 2014년, 미술계의 제일 무거운 이슈는 예술가의 생존 문제였던 것 같다. 기획자나 기관의 ‘예술가 노동 착취’에 대한 논의가 여러 차례 이루어졌고, 연말에는『왜 예술가는 가난해야 할까』라는 책으로 유명한 경제학자 한스 애빙(Hans Abbing)이 서울에 와서 예술가들에게 열정 페이를 거부하라는 강연을 하고 떠났다. 나 역시 열정 페이를 요구하고, 또 요구받는 일이 많은데, 이것을 끊어내기가 쉽지 않아 마음이 무거워지는 이야기였다. 예술가가 노동 가치에 상응하는 임금을 받는다는 이치가 ‘당연하게’ 작동하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 고민해야 하는 문제이니, 올 한해 마음속에 두고 실천해야 할 과제다.


김지연(1973- ) 국민대 미술이론 박사과정 수료. 가나아트센터 전시기획자, 학고재 기획실장을 거쳐 독립기획자로 활동. 『예술가들의 대화(2012 아트북스) 』저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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